중동 전쟁 2차 쇼크, 전기 원가 2배 뛴다
100원대 도매가격 200원 넘을 듯
더위 시작되는 5·6월부터 영향

중동발 고유가 충격이 2~3개월 시차를 두고 국내 발전 원가에 반영되는 5~6월, 전력 시장이 전례 없는 복합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예년보다 이른 폭염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전력 구매 원가가 뛰는데 냉방 수요까지 폭증하면, 한전은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역마진 구조에서 손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정부는 ‘전기료 인상’과 ‘한전 재정 악화’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아시아 국가들이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지난 13일 배럴당 106.50달러(싱가포르 현물 기준)를 기록했다.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후 고점(3월23일)인 169.75달러보다는 내렸지만, 전쟁 직전인 2월 27일 68.40달러와 비교하면 30달러 이상 높은 수준이다. 특히 동북아 LNG(액화천연가스) 현물 가격 지표인 JKM은 전쟁 전 10.72달러에서 현재 19.44달러로 곱절 가까이 뛰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이 같은 고유가 국면이 길어진다면, 한전 구매 원가인 전력 도매가격(SMP)은 5월 이후 현재의 2배 수준으로 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였던 2022년에도 국제 LNG 가격이 폭등하면서 SMP가 3배로 치솟았다. 당시 정부는 이를 전기 요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고, 이는 한전의 천문학적 부채와 산업용 전기료 폭등으로 이어졌다.

◇전기료 인상 vs 한전 빚더미… 돌아온 딜레마
국내 전력 시장은 단가가 가장 싼 원자력·석탄 발전을 가장 먼저 투입하고, 연료비가 가장 비싼 LNG 발전을 마지막으로 가동하는 구조다. 한전의 구매 원가 격인 전력 도매 가격(SMP)은 이 ‘마지막 발전원’인 LNG 발전 단가로 결정된다. LNG 가격이 오르면 SMP가 오르고, 한전이 전기를 사들이는 비용도 올라가는 구조다.
우리나라 LNG 도입 물량의 약 80%는 장기계약이고, 이 중 70%는 국제 유가에 연동돼 있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뛰면서 동북아 LNG 현물 가격 지표인 JKM(Japan Korea Marker)은 MMBtu(열량 단위)당 19.44달러로 전쟁 전보다 배 가까이 치솟았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전쟁이 지금 당장 끝난다 해도 고유가는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경우 LNG 도입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김태식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가스공사가 최근 재고 확보를 위해 고가의 현물 시장에서도 상당 물량의 LNG를 매입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중동 전쟁에 따른 고유가 충격파가 국내 전력 도매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시점이 5~6월이라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이른 폭염까지 겹쳐 수요 압력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상청은 올해 5월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을 60%로 예보했다. 14일 경기 양주시는 낮 기온이 한때 29.9도까지 오르는 등 이미 여름 수준의 더위가 나타나고 있다.

◇이른 무더위 습격까지
이란의 공격으로 세계 최대 LNG 생산 거점인 카타르의 라스라판 가스 설비가 타격받은 것도 수급 불안 요인이다. 한국의 카타르산 LNG 수입 비중은 약 15% 수준이다. 라스라판 가스 설비 수리에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유럽 각국이 겨울용 천연가스 재고 비축에 나설 경우, 글로벌 LNG 수급 상황은 더 빡빡해진다. 정용헌 전 아주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SMP가 현재의 2배 수준인 kWh당 200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도 “중동 전쟁에 따른 연료비 상승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계통 보강 비용이 맞물려 전기 요금 인상 압박은 갈수록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력 도매가격이 오르면 정부는 전기 요금을 올리거나, 한전이 ‘전기를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역마진을 감수하도록 두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전기 요금은 웬만하면 지금 변경하지 않으려 한다”면서도 “요금을 유지하면 한전의 손실과 적자 폭이 크게 늘 수 있다”며 고심을 드러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상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정치적 상황이 딜레마를 더 깊게 만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정부는 전기 요금 인상을 억제했다가 한전의 재무 구조가 파탄 났다. 이후 산업용 전기요금이 집중적으로 인상되면서 기업들의 전기료 부담이 단기간에 급등했다. 이번에도 그 같은 악몽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기업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정부, 전력 가격 억제 검토
최근 정부 안팎에서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러·우 전쟁 당시 한시적으로 도입했던 SMP 상한제를 5월부터 재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석유 최고가격제로 정유업계가 손실을 떠안고 있는데, 발전업계가 그다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SMP 상한제 재도입설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도 “비상 상황에 대비해 검토는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인위적인 가격 억제가 오히려 위기를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전력거래소 이사장을 역임한 조영탁 한밭대 교수는 “에너지 취약층은 지원해야겠지만, 석유 가격이나 전기료를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일이 잦아지면 국민은 소비 절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한다”며 “에너지 가격이 급등할 때마다 자원 빈국인 한국의 구조적 문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에너지 안보 수단은 가격 신호를 통한 수요 절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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