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판 적폐청산 “대법원장·검찰총장·감사원장 다 나가라”

파리/원선우 특파원 2026. 4. 15.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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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만에 정권 찾은 총리 내정자
“前 정부 꼭두각시들 쫓아낼 것”
마저르 페테르(45) 헝가리 총리 내정자 /AP 연합뉴스

마저르 페테르(45) 헝가리 총리 내정자는 13일(현지 시각) 대통령·대법원장·검찰총장·감사원장·언론청장의 즉각 사임을 요구하며 “16년 동안 오르반 빅토르 정권을 섬겨 온 ‘꼭두각시’들이 물러나지 않으면 우리가 쫓아낼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이끄는 신생 정당 티서(Tisza)가 전날 총선에서 전체 199석 중 138석을 얻어 압승한 기세를 몰아 강도 높은 ‘적폐 청산’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마저르는 이날 승리 연설과 기자회견에서 슈요크 터마시 대통령을 향해 “그는 그저 모든 것에 서명하기 위해 임명된 사람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필요 없다”며 사임을 요구했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헝가리에서 대통령은 실권이 없는 명예직으로, 의회에서 선출한다. 다른 인사들을 향해서도 “국가를 약탈하고 헝가리 국민 사이에 증오를 조장한 자들” “약탈하고, 강탈하고, 배신하고, 빚더미에 앉히고, 파멸시킨 자들”로 강도 높게 비판하며 “이제 그 정권은 끝났고, 다시는 누구도 국가를 장악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총리 임기를 재선으로 제한하는 헌법 개정도 추진해 오르반의 ‘징검다리 복귀’를 막고 또 다른 장기 집권 가능성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가디언은 “오르반이 집권한 16년 동안 헝가리의 법치주의가 철저히 훼손됐다”며 “오르반에 충성하는 판사들로 법원을 채우고, 언론의 80%는 정부 대변인이 됐으며, 오르반 측근은 막대한 부로 배를 불렸다”고 했다. 정부·언론이 일방적으로 오르반을 지지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압승한 마저르는 강도 높은 ‘언론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는 선거 기간 편파 보도를 한 국영 TV·라디오 가동을 중단하고 ‘언론독립성위원회’를 설치하겠다며 “기자들은 이제 이력서를 새로 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오르반 정권의 부패에 대한 고강도 수사도 예고했다. ‘국가자산회수청’을 설치해 “나라에서 돈을 훔친 정치적·경제적 범죄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고, 유럽 검찰청에 가입해 오르반 정권이 그간 유럽연합(EU) 지원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EU는 그간 오르반 정권의 친러시아 정책, 법치주의 약화, 부패 등을 이유로 EU 자금을 동결했다. 마저르는 투명성을 높이는 조치를 통해 EU가 동결한 200억유로(약 34조원) 규모 기금을 정상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마저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통화하지 않겠다”고 했다. 두 강대국 정상과 밀착했던 ‘오르반 외교’와는 다른 노선을 걷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그러면서 “미국은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며 좋은 관계가 필요하다”고, “러시아와는 실용적 관계를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어떤 나라도 한 국가에 영토 포기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며 “푸틴 대통령과 대화하게 된다면 우크라이나에서 살육을 끝내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오르반은 총선 직후 패배를 인정했지만 헌법상 임기가 30일가량 남아 있다. 이에 오르반이 순순히 권력을 이양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민주주의연구소의 발린트 마들로비치 연구원은 프랑스 르피가로에 “30일 동안 오르반은 의회 과반을 유지하며 입법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며 “그 기간 헌법을 수정해 헝가리인들의 손발을 묶으려 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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