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비트 제재, 당국 면밀한 규제 설계 없었다”

금융 당국이 규제 지침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고도 ‘규제에 따르지 않았다’며 업체에 제재를 가했다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14일 본지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9일 금융정보분석원(FIU)이 국내 가상 자산 거래소 업비트에 부과한 6개월 영업 일부 정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FIU는 업비트가 해외 미신고 가상 자산 사업자 19곳과 총 4만4948건의 거래를 중개했다며 작년 2월 영업 일부 정지 제재를 내렸다. 업비트가 이에 불복해 열린 재판에서 FIU는 자금 세탁 목적으로 쓰일 수 있어 법상 해외 미신고 가상 자산 사업자와의 거래가 금지된 만큼, 업비트와 같은 거래소가 알아서 그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 당국이 개별적으로 관련 지침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규제 당국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단순히 ‘금지 의무’만을 선언하고 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나 행위 기준 등에 대한 지침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규제를 지켜야 하는 당사자로선 최소한 어떠한 정도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규제 당국의 자의적 법 집행 가능성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당국이 가상 자산 시장이라는 신산업에 대한 규제를 촘촘하게 설계할 시간과 역량이 부족했다 보니, 사업자들을 ‘때려잡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후에도 FIU는 가상 자산 사업자들에게 비슷한 제재를 이어가고 있다. 업비트와의 재판에서 패한 뒤인 지난 13일에는 코인원을 대상으로 영업 일부 정지 3개월과 과태료 52억원 징계를 내렸다. 업비트와 마찬가지로 코인원이 해외 미신고 사업자 거래 금지 의무 등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업비트 건은 항소해 법적 판단을 다시 받을 것”이라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가상 자산 기본법 도입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등 규제 공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번 재판에서 경고한 대로 당국의 자의적인 법 집행이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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