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北 입 닫으면 ‘대북 송금’ 뒤집는다 생각하나

안용현 논설위원 2026. 4. 1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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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리호남 행적을 ‘조작’했다는데
법원은 리호남 받은 돈 ‘무죄’
북 ‘돈 받았다’ ‘안 받았다’ 해도
공소 취소로 재판 없으면 무방비
2018년 개봉한 영화 ‘공작’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 리호남을 소재로 만들었다. 사진은 이 영화에서 리호남을 실제 모델로 연출된 리명운 역할을 한 배우 이성민씨. /CJ엔터테인먼트

뇌물죄처럼 돈이 오간 범죄는 주고받은 사람에 대한 수사가 기본이다. 계좌로 돈이 오갔다면 증거가 분명해 혐의 입증이 쉽다. 그런데 “현금으로 줬다”고 하고 “안 받았다”고 하면 ‘줬다’는 진술만으로는 유죄 판단이 어렵다. 특히 돈 받은 대상이 북한처럼 직접 수사가 불가능하다면 여러 진술의 일관성과 접촉 정황 등 보강 증거가 중요하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당시 정부는 북한에 4억5000만달러를 보냈다. 급하다 보니 현대그룹이 북한의 해외 계좌에 송금하는 방식을 썼다. 2003년 ‘대북 송금 특검’이 계좌 이체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여러 정황을 근거로 “대북 송금이 정상회담과 주관적·객관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쌍방울이 2019년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방북 등을 위해 북한에 줬다는 800만달러는 전액 현금이다. 이 중 300만달러가 ‘방북 대가와 의전 비용’이라고 법원이 인정했다. 200만달러는 북한의 송명철 조선아태위 부실장에게 주고 영수증을 받았는데, 100만달러는 북한 공작원인 리호남에게 그냥 줬다는 것이다. 리호남은 ‘인사할 데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법원은 300만달러가 모두 북에 전달된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리호남의 100만달러에 대해선 ‘조선노동당에 들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며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최근 민주당이 대북 송금 사건의 ‘조작’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 리호남 행적이다. 리호남이 필리핀에서 쌍방울 돈을 받았다는 시기에 필리핀이 아닌 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국정원장까지 나서 “리호남이 제3국에서 확인됐다”고 했다. 그런데 법원은 “리호남이 다수의 가명, 위장 신분을 사용하는 사람이라 리호남이 (필리핀) 공식 초청자 명단에 없다거나, 그를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돈 받았다는)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할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미 걸러진 사안이다.

민주당 주장대로 리호남이 필리핀에 없었다고 하자. 법원이 리호남의 100만달러를 무죄로 판단한 상황에서 그의 행적이 재판 결과를 뒤집을 근거가 되나. 리호남이 없어도 북한 송명철이 영수증까지 써주고 받은 200만달러가 있다. 송금 관련자들은 현금 전달을 인정하는 진술을 했다. 이들 모두가 검찰의 ‘연어와 술’을 얻어먹은 뒤 한목소리로 허위 진술을 했고 영수증까지 조작했다는 것인가. 2019년이면 김정은의 ‘비핵화 쇼’가 들통나 미·북, 남북 관계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민간의 대북 사업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쌍방울이 자기 사업을 하려고 북에 거액의 달러를 줬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뇌물 사건에선 돈 받은 쪽 진술도 관건이다. 만에 하나, 북한이 ‘이 지사 방북을 위한 돈을 받았다’거나 ‘보수 검찰의 모략극’이라고 선전 선동에 나선다면 어떻게 되나. 북한 주장을 증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전례 없는 정치적 분열과 혼란이 생길 수 있다. 북한은 2011년 이명박 정부와 정상회담 추진이 깨지자 ‘남측이 돈 봉투를 주려 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실명을 거론하며 “돈 봉투를 쳐 던지자 얼굴이 벌게져 안절부절못했다”고까지 했다. 화가 나거나 불리하면 어떤 공작도 하는 것이 북한이다.

민주당 폭주대로 대북 송금 사건을 ‘공소 취소’하면 북한부터 쾌재를 부를 것이다. 재판이 진행 중이면 북한이 무슨 공작을 해도 법원이 ‘확인 안 된 주장’이라고 방어벽을 칠 수 있다. 그런데 공소 취소로 재판 자체가 없어지면 북한 입이 만든 평지풍파가 우리 사회를 그대로 덮칠 수 있다. 무리수를 두면 반드시 탈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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