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116] 비비든 말든 밀면이면 된다

밀면의 계절이 왔다. 서울 사람은 이 계절을 뭐라고 부르나. 평양냉면의 계절? 평양냉면 광인에게 물어보면 틀렸다고 할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평양냉면의 계절은 겨울이다.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 난단다. 서울 사람들은 역시 추위에 강하다.
맛이 다를 리는 없다. 옛사람들이 평양냉면을 겨울에 먹었던 이유는 시대적 한계 탓이다. 여름에는 메밀을 구하기 힘들었다. 찬물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석빙고 얼음을 살 수 있는 귀족이나 여름에 냉면을 먹었다. 요즘에야 그렇지는 않다. 다 귀족이다. 노조도 귀족이라 부르는 시대다.
부산 사람인 나에게 밀면은 동네 음식이었다. 주말이면 어머니는 1만원을 쥐여주며 “밀면집 가서 포장 좀 해온나”라고 하셨다. 만 원으로 4인 가족 끼니가 가능했던 시대다. 밀면집은 어디에나 있었다. 서울 살며 힘든 것 중 하나는 밀면의 부재였다.
몇 년 전부터 서울에도 밀면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배민에 뜰 정도로 많아졌다. 다 파이다. 아니, 글은 사투리로 쓰면 안 된다. 다 별로다. 밀면은 평양냉면처럼 육수가 중요하다. 삶은 밀가루 텁텁한 향을 없애려 고기와 약재류를 삶아 육수를 만든다. 감초, 계피, 정향 등이 들어간다. 거기 양념장을 듬뿍 쳐야 제맛이다.
요즘 밀면이 뜬다. 오뚜기도 비벼 먹는 ‘진밀면’을 내놓았다. 파이다. 아니, 싫다. 비비는 건 밀면이 아니다. 말아야 밀면이다. 90년대 부산 밀면집은 물밀면만 팔았다. 찾는 손님이 있어 비빔밀면도 추가한 것이다. 비빔밀면은 밀면의 근본이 아니라는 소리다.
잠깐, 나는 지금 ‘식초나 겨자를 치면 안 되고 쇠젓가락도 쓰지 말라’는 평양냉면 근본주의자처럼 굴고 있다. 곤란하다. 근본주의자는 세상을 망친다. 지금 호르무즈 해협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런 시절에는 한쪽 손만 들면 안 된다. 실용적이어야 한다. 정치도 실용 정치다. 외교도 실용 외교다. 말든 비비든 맛만 좋으면 된다. 나는 ‘밀면 실용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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