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유근형]“농번기에 이란 전쟁이라니…” 연료비 급등에 농기계 멈춘 佛 농가
이란 전쟁 후 휘발유 15% 급등
佛 농가 생산성 최대 50% 감소 우려… 물류 지연에 유통업계 재고 급감
일부 할인 주유소는 품절 사태… 재정위기 佛 유류 지원책 도입 못 해


카펜티어 씨는 “예년처럼 농사를 지으면 올해만 약 1만 유로(약 1억7000만 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며 “농기계 사용을 대폭 줄일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란 전쟁이 계속되면 생산성이 작년보다 최대 50%까지 감소할 수 있다. 사업을 계속할지 말지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 佛 휘발유 최소 15% 급등
올 2월 28일 이란 전쟁이 발발한 후 프랑스의 휘발유 값은 최소 15% 급등했다. 7일 미국과 이란이 ‘2주 휴전’을 선언하고 종전 협상을 펼치고 있지만 유가는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22년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연료, 비료 가격의 급등을 이미 겪은 프랑스 농가들은 이란 전쟁까지 터지면서 사면초가에 빠졌다. 카펜티어 씨는 연료비를 덜 소비하는 직파 등 경작 방식을 바꾸고, 지난해 팔고 남은 구황작물로 가축 비료를 만드는 등 고육지책을 짜내고 있다. 기름을 덜 먹지만 효율성은 떨어지는 옛날 농기계를 창고에서 꺼내 사용하고 수작업도 대폭 늘렸다.
다만 이 같은 조치만으로는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카펜티어 씨는 말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각국 권력자들은 ‘게임’을 하는 기분이겠지만, 전 세계 다수는 연이은 전쟁으로 큰 위험에 처했다”며 “많은 프랑스 농가가 대출 상환을 못 해 연쇄 도산하는 일이 곧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물류-유통-식품업계도 직격탄
프랑스 물류 유통 업계도 고유가 한파를 그대로 맞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프랑스 수입업체 등에 따르면 유럽의 3월 해상 운임은 컨테이너당 약 22% 상승했다. 항공 운임도 유류세 인상 여파로 60% 넘게 증가했다.
이 외에도 전기 요금이 올라 냉동창고 보관비 또한 최대 24%까지 인상됐다. 만두 치킨 수산물 등 냉동식품을 다루는 업체들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전민형 aT 파리지사장은 “고유가 여파로 유럽 바이어들이 수입 물량을 축소하거나 가격 인상을 검토해 우리 수출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식품업계는 이란 전쟁 발발 후 이란의 원유 수송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물류비가 증가한 데 이어 컨테이너들이 제때 도착하지 못하는 배송 지연까지 겪고 있다. 당초 수에즈 운하를 통해 유럽으로 향하던 대형 컨테이너 운반선들이 대거 아프리카 최남단으로 우회하면서 지각 운송 사태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 K푸드를 공급하는 에이스푸드의 파리 물류 창고는 배송 지연으로 재고가 30% 이상 줄었다. 실제로 10일 기자가 방문한 이 물류 창고의 라면 보관소에는 공급 지연 여파로 빈 공간이 적지 않았다.
신선 식품을 보관하는 냉동고도 상황은 비슷했다. 특히 두부는 전쟁 발발 이전에는 대개 유통기한을 최소 3개월 남기고 배송됐지만, 최근에는 운송 지연으로 유통기한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제품들이 배송되고 있다. 심지어 유통기한이 거의 다 된 두부도 배달되곤 한다. 에이스푸드 관계자는 “지각 배송된 두부를 팔려면 손해를 보며 세일 판매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원유에서 추출한 나프타로 만든 특수 포장재 또한 품귀다. 이 포장지 공급이 끊기면 김치 과자 등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프랑스 버스, 트럭 등 물류 업계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출근 시간대 파리 시내 곳곳에서 차량을 느리게 운행하며 에마뉘엘 마크롱 정권의 고유가 대책 부재를 비판하는 일명 ‘달팽이 시위’도 간간이 펼쳐지고 있다. 파리의 택시 기사 아밀 씨는 “기름값 때문에 날씨가 더워져도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 ‘2유로 상한제’ 할인 주유소는 품절

일부 파리 시민은 상대적으로 도심보다 저렴한 외곽의 주유소 찾기에 나섰다. 10일 파리에서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벨리지빌라쿠블레의 할인 주유소(L당 약 3300원)를 찾았다. 입구부터 긴 줄이 만들어져 주유하는 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일부 고객은 긴 대기 시간을 참지 못해 주유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파리 시민 포파나 씨는 “안 그래도 물가가 비싸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권이 없다. 저렴한 휘발유를 넣기 위해 이곳에 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르몽드 등에 따르면 연료비를 줄이기 위해 휘발유 차량에 에탄올 박스를 부착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 같은 차량은 휘발유와 식물성 기름을 섞은 ‘슈퍼에탄올-E85’ 연료를 사용한다. 장비 부착에 약 900유로(약 153만 원)가 들지만, 연료비를 기존 휘발유 차량의 약 40% 아낄 수 있고 온실가스 배출도 약 78% 줄일 수 있다. 1만 km 주행할 때마다 약 500유로(약 85만 원)의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슈퍼에탄올-E85’ 연료를 취급하는 주유소도 2024년 6%에 불과했지만 최근 40%까지 늘었다고 한다. 파리의 한 정비사는 르몽드에 “새 차량을 사는 구매자들에게 이 장비를 갖추도록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고유가 한파를 극복하기 위한 유류세 조정, 보조금 지급 등을 주장한다. 다만 재정 위기에 시달리는 마크롱 정권이 선뜻 실시하기는 어려운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배송기사 니나 씨는 “마크롱 정권은 아무 일도 안 한다. 어떤 대책이라도 내놔야 한다”고 일갈했다.
유근형 파리 특파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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