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의 미학…장엄하게 피어나다

박지혜 기자 2026. 4. 1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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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진더펑(金德峰) 개인전 '명멸하는 장엄'展

구태의연 미술 관습, 탈피 의지 표현
파각·파동·파해 연작 30여점 조명
집요한 수공예적 노동의 흔적 가득
파괴서 창조 잇는 이원적 세계 경험
▲ 진더펑 作 '파각' - 수많은 깨달음 /사진제공=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화려한 색채 속 수행자의 고단한 노동이 서려 있는 기묘한 화면들.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에서 진행 중인 중국 작가 진더펑(金德峰)의 개인전 '명멸하는 장엄'은 '파괴'와 '창조'라는 이원적 가치가 공존하는 독창적 미학 세계를 선사한다.

중국 샤먼 지역을 대표하는 동시대 미술작가 진더펑은 전통 회화가 지닌 관습적인 틀을 깨부숨으로써 새로운 예술적 생명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 왔다. 전시의 핵심 키워드인 '파화(破畵, 그림을 부순다)'는 단순히 형태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넘어, 구태의연한 미술적 관습으로부터 탈피하겠다는 작가의 선언적 의지를 담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작가의 철학이 집약된 '파각(破壳)', '파동(破洞)', '파해(破解)' 연작 30여 점을 통해 그의 예술적 궤적을 촘촘히 조명한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화면 가득 붉은 꽃잎과 원형의 형상이 명멸하는 '파각-수많은 깨달음'이다. 보색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현란한 시각적 축제를 벌이는 듯하지만, 그 세밀한 점과 선들을 들여다보면 기계적 공정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집요한 수공예적 노동의 흔적이 가득하다.
▲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진더펑 개인전 '명멸하는 장엄' 전경. /사진제공=아트센터 화이트블럭 
▲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진더펑 개인전 '명멸하는 장엄' 전경. /사진제공=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작가의 이러한 파괴적 경향은 80년대 중국 현대 미술 운동인 '샤먼 다다'의 정신적 유산과 궤를 같이한다. 자본주의 논리에 매몰된 중국 미술계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제작 중이던 작품을 스스로 가위질했던 그의 행위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속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고통스러운 투쟁과 닮아있다.

그는 쑤저우의 정교한 자수 기법이나 법랑 공예의 세밀한 금실 미학을 회화에 접목해, 음양의 구조 위에 세포처럼 무수한 점을 찍어내는 '파괴를 통한 재생'의 방법론을 창안했다. '파동' 연작에서 발견되는 검은 구멍들이 대표적이다. 화면에 생동하는 숨구멍이자, 화려한 문명의 이면으로 침잠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파해' 연작에서는 대상을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치환해 규격화된 현대 사회의 제도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 방식은 마치 티베트 승려들이 모래 만다라를 쌓아 올리는 수행 과정과 유사하며, 샤먼의 화려한 네온사인에서 포착한 찰나의 환영을 인체 내 기와 혈이 흐르는 경락(經絡)처럼 유기적 선들로 엮어내며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 진더펑 作 '미륵' /사진제공=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전시를 기획한 최태만 국민대 교수는 "진더펑의 작업은 소멸해가는 것을 장엄이라는 예술적 의식을 통해 다시 살려내는 과정"이라며 "관람객들은 이번 전시에서 파괴를 통해 창조로 나아가는 이원적 통합의 미학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관계자는 "진더펑의 작품은 디지털 시대의 매끄러운 이미지 이면에 숨겨진 뜨거운 인간적 노동과 수행의 가치를 일깨워준다"며, "이번 전시가 한국과 중국 현대 미술의 깊이를 확인하고 미학적 연대를 쌓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26일까지.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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