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걷고 싶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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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봉암동에 수원지길이 있다.
지금은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이 됐지만, 마산 봉암동 수원지길이라야 제 맛이 난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7년 9월 제주 시흥초교~종달리~성산에 이르는 올레1코스가 만들어졌고, 지금은 전장 437㎞에 27개 코스의 올레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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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길에서 운명과 만난 서명숙

마산 봉암동에 수원지길이 있다. 지금은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이 됐지만, 마산 봉암동 수원지길이라야 제 맛이 난다. 경남의 길 50곳을 찾아 <경남도민일보>에 기사를 썼고, 2006년에 이를 엮었던 책 <걷고 싶은 길>에도 '마산 봉암동 수원지길'이라고 썼다. 그때 우연히 그 길을 걸으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유독 들었다. 독특한 느낌이었다. 마산자유무역지역과 사이 대로에서 수원지길로 처음 접어들 때의 소음, 부산스러움이 10분만 걸어들어가면 사라진다.
기자생활 7~8년쯤, 사회부, 정치부 거치면서 틀에 박힌 기사체가 지겨웠고, 그게 싫어 기사에다가 '뽄'을 부리면 잘려버리는 패턴이 반복됐다. 염증을 느꼈고, 마침 그 틈을 비집고 들었던 감정이었다. 책 서문에 "'길'이라는 말을 들으면 설렌다. '떠난다'는 느낌이 연상된다. 길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가 '걷다'가 아닐까. 숲길, 물길, 둑길 어디든 선택해 길을 걷는다"라고 썼다. 길을 찾는 여정에 거제 '홍포~여차 길'이 있었다.
"한 고개를 돌았다. 저 멀리 보이는 또 다른 고개 사이에 여차가 있는지 찾았다. 없다. 길과 산, 바다뿐이다. 단절, 홍포에도 여차에도 속하지 않은 공백…. 한참 아래 깎아지른 벼랑 밑 바다는 여기까지 소리를 울리지 못한다." 그때 나에게 길을 걷는 일은 일이면서도 휴식이었고, '새로운 글쓰기'의 계기였다.
그 시각 서명숙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었다. "2006년 9월 10일 오후, 파리에서 스페인행 국경행 열차에 올라탔다. '생 장 피 드 포르' 작은 간이역인데도, 키 큰 배낭과 등산복으로 완전무장한, 척 보기에도 순례자로 보이는 수십 명의 사람이 역을 빠져나왔다"고 자신의 책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걷기여행>에서 썼다.
"미지의 공간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순간 온몸을 관통하는 열정과 떨림! 미련과 두려움을 애써 떨쳐냈다. 얼마나 걸었을까. 사방이 어둑해져가는데 '산티아고까지 100㎞'를 알리는 표지석이 나타났다"는 대목에선 그때의 희열이 전해진다.
그는 23년에 걸친 기자생활을 접고 길 위에 섰다고 했다. 몸은 직업병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마음은 마른 삭정이처럼 피폐해져서 살기 위해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길에서 그는 운명과 만난다.
"앞으로 5년에 한 번씩은 땡빚을 내서라도 산티아고에 올 거야! 헤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참 행복했고 많을 것을 얻었어. 그러니 그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각자의 까미노를 만드는 게 어때? 나는 나의 길을, 너는 너의 길을."
"(그때)머리에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다"는 서명숙은 "만들어져 있는 길만 길이라고 생각했던 나.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어릴 적 걷던 내 고향 제주의 길을 내내 떠올렸다. 그곳에 길을 내면 되겠구나. 제주올레의 씨앗이 뿌려진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7년 9월 제주 시흥초교~종달리~성산에 이르는 올레1코스가 만들어졌고, 지금은 전장 437㎞에 27개 코스의 올레길이 열렸다. 며칠 전, "간세다리(게으름피우다라는 제주도말)처럼 느릿느릿 걸으라"는 자신의 지론과 달리, 홀연히 떠나버린 서명숙에게 나는 '길'의 영감을 다시 얻었다.
/이일균 자치행정2부 국장, 밀양·창녕 파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