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네가 있었기에 내가 빛났다

"집집마다 장애인이 한 명씩 있었으면 좋겠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잠시 멈췄다. 너무 과격한 표현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문장의 속뜻을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말은 결국 이렇게 번역된다.
세상을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존재가 장애를 가진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고백이다.
이 이야기는 발달장애인 전문 미술기관인 울산 사회적기업 다다름미술앤디자인㈜의 이정희 대표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들 김동규 작가를 키우며 써 내려간 기록이다. 그 시간의 무게가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제목은 『서른 동규의 생선가시를 발라주며』.
책의 프롤로그에는 해맑게 웃고 있는 한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한 문장이 따라온다.
"우리 애 때문에 저 사람 됐어요."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한 인간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시간이 담겨 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이 얼마나 오만하게 살았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아이 덕분에 겸손을 배우고 인간적으로 성숙해졌다고 그녀는 말한다.
사실 나는 지난해 말부터 이 책을 손꼽아 기다린 독자였다. 이정희 대표의 시 『사랑하는 아이야』를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장애를 소재로 한 글들은 흔히 눈물과 연민의 감정으로 소비되곤 한다. 그러나 그녀의 글은 달랐다. 슬픔을 넘어 삶의 본질을 건드리는 문장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1호 독자'를 자처하며 책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김동규 작가의 그림이었다. 맑고 투명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의 그림은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울음을 삼키며 글을 읽다가도 그 그림 앞에서는 어느새 미소가 번진다.
김동규 작가는 현재 서른 살이다. 인지 능력은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그는 지금 하나은행 소속 미술 직무로 재택근무를 하는 작가다. 엄마 이정희 대표의 눈물과 시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결과다.
이정희 대표는 말한다. 동규와 함께 거리를 걷다 보면 세상 인심이 그대로 보인다고. 어떤 사람은 따뜻한 눈빛을 보내고, 어떤 사람은 불편한 시선을 보낸다. 그때마다 사람의 마음이 읽힌다고 한다. 좋은 사람인지, 덜 좋은 사람인지, 진심인지 가식인지. 장애를 가진 아이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책 제목도 묘하게 마음을 붙잡는다. 『서른 동규의 생선가시를 발라주며』.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서른이 넘은 아들에게 가끔 생선가시를 발라준다. 심지어 환갑이 넘은 남편에게도 가시를 발라줄 때가 있다. 하지만 동규의 이야기와는 결이 다르다.
이정희 대표는 정신없이 생선을 먹는 아들을 보며 이렇게 적었다. 엄마 아빠가 없는 날에도 누군가 생선가시를 발라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지금의 사랑을 조금 더 당겨쓰고 있는 것 같다고.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감정의 결이 깊게 흔들린다. 그렇다고 연민이 먼저 떠오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며 얼마나 쉽게 불평하고, 얼마나 쉽게 지쳐버렸는지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흔한 육아 기록이 아니다. 장애 가족의 눈물 어린 이야기로도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한 인간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아이 덕분에 사람이 되었다는 그 고백이 조금도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다.
감정이 쉽게 메마르고 관계가 가벼워진 시대다. 그래서인지 이정희 대표의 글은 묘하게 마음을 흔든다. 마치 잠들어 있던 감정을 깨우는 각성제 같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도, 삶의 무게 앞에서 흔들리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혹시 누가 알랴. 책장을 넘기다 보면 우리도 문득 깨닫게 될지 모른다. 누군가의 존재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조금 더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전미향 창업일자리연구원 홍보팀장·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 (webmaster@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