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꺾으려던 트럼프, 미국 몰락 앞당기나…포춘 "영국 몰락 수에즈 위기와 판박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나서면서 이를 둘러싼 긴장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 정부 당국에서도 향후 몇 주 내에 유가가 정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소비자들의 유가 부담이 커지면서 일부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이란을 붕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몰락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13일(이하 현지시간)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은 워싱턴 D.C에서 열린 '세마포어 월드 이코노미 포럼'에서 "유가의 정점이 아마 몇 주 안에 나타날 것"이라며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의미 있는 선박 통행이 재개되기 전까지 에너지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더 오를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지만 "걸프 국가들이 여전히 세계 에너지의 생명선 중 하나"라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통항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조치를 취하면서 미국의 석유 수출량은 늘어나지만 소비자 가격 상승이 계속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원자재 및 에너지 시장 분석업체인 클레플러(Kpler)를 인용해 미국의 원유 수출량이 이달 하루 500만 배럴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다만 신문은 "미국이 원유와 가스 수출을 늘리고 재고를 소진한다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계속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신문은 전미자동차협회(AAA)를 인용, 이날 기준 미 전국 일반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4.13달러로 지난주보다 3센트 하락했지만 전쟁 발발 당시보다는 1.15달러 상승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수출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원유 생산량 증가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라며 "셰일 원유 생산 업체들은 가격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 신규 시추 장비 증설을 꺼리고 있다. 이는 원유 및 기타 석유 제품 재고 감소로 이어져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소비자 입장에서 구매하여야 할 석유 가격이 오르면서 미국 소비자들의 신뢰가 하락하는 가운데 이를 "로마 제국 경제의 붕괴"와 비교하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은 13일 컨설팅 회사인 전략자원그룹(Strategic Resource Group)에서 오랜 기간 소매 유통 마케팅 등을 분석했던 버트 플리킹거 3세 디렉터가 현재 미국 소비자의 시장 신뢰도가 하락세라며 이같이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3월 신뢰도 수치가 지난 5년 중 최저 수준이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2022년 6월의 역대 최저치에서 불과 3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라면서 "이처럼 여러 지표가 모두 부정적인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처음 본다"라고 말했다.
플리킹거 디렉터는 지난 70년 동안 미국 소비자들이 의료비, 지방세, 부채 상환, 식비, 주택비, 교통비, 공과금, 보험료, 유흥비, 휴대전화비, 의류비, 교육비 등 12가지 주요 월간 지출 항목에 동시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그는 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만으로도 "모든 미국인의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산운용사인 스라이번트 파이낸셜의 데이비드 로열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중산층 소비자들에게 힘든 시기였다"라며 "소비자들의 신뢰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로열 CIO는 전쟁으로 인한 유가 충격이 모든 계층에 고르게 미치지 않는다면서 휘발유 급등 등은 저소득층에게 더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면서 "전쟁 발발 6주 차에 미 정부 당국이 사실상 (전쟁을) 통제하지 못하는 협상으로 전환되면서,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매체는 1956년 영국이 세계 패권자리에서 내려오게 되고 미국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결정적 사건인 수에즈 운하 위기와 현재 미국의 이란 공격이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함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려는 이집트를 공격했는데, 미국과 소련은 이들에게 공격을 멈추라고 압력을 넣었고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군대를 빼고 철수하게 됐다. 이 사건 이후 미국과 소련 중심의 세계 질서가 형성됐다.
매체는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절박한 국가, 공모자인 이스라엘, 전략적 수로, 모두가 쉽게 항복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적, 당시 미국 행정부가 소집조차 하지 않았던 동맹국들" 등을 고려했을 때 그때의 영국 및 프랑스 상황과 지금 미국의 처지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1956년 영국과 프랑스 지도자들은 전쟁이 빨리 끝나고 지역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운하를 봉쇄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동맹국들을 격분시킨 임박한 에너지 위기에 대처해야만 했다"라며 "이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맹국들과는 아무런 협의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매체는 "몇 달 만에 영국은 IMF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앤서니 이든 총리는 사임했으며, 영국의 강대국 시대는 그와 함께 막을 내렸다"라며 미국도 이와 유사한 경로를 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매체는 "결국 이 사태(미국-이란 전쟁)의 실질적인 주도권은 중국에 있다"라며 당시 미국과 소련의 역할을 중국이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대 중동의 정치경제학을 연구하는 역사학자 애런 제이크스 시카고대학교 부교수는 매체에 미국과 이란 전쟁을 "수에즈 위기의 뒤집힌 버전"이라고 규정했다.
매체는 1956년 수에즈 위기에서 영국이 전쟁에 나선 가장 중요한 이유에 대해 "중동에서 파운드화로 결제되는 석유 판매에 기반한 파운드의 글로벌 기축통화 지위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 있었지만 "전쟁에 돌입한 것은 오히려 그 통화 체제의 종말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았다"고 짚었다.
제이크스 부교수는 "미국이 걸프 지역에서의 지배력을 재확립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지만, 오히려 이란에 위안화나 암호화폐 등 달러를 제외한 모든 통화로 통행료를 징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다"라며 "이번 전쟁은 영국이 전쟁을 결정할 당시 피하려고 했던 바로 그 유형의 문제를 오히려 가속화하는 데 일조했다. 6주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문제가 생겨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체는 "물론, 이것만으로 달러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하나의 수로나 하나의 통행료 제도가 '페트로달러'(petro-dollar, 석유를 팔아 얻은 달러. 달러로만 석유 대금을 결제할 수 있게 하는 체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라며 "하지만 이란이 위안화나 암호화폐로 통행료를 징수할 수 있다면, 이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제이크스 부교수는 "이런 일은 나중에 역사가들이 (미 제국주의의) 종말의 시작을 알리는 기준으로 삼을 만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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