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동 난민소년, 노벨상 들고 韓교수로…“인재 있는 곳으로 온 것”

최원석 기자(choi.wonseok@mk.co.kr) 2026. 4. 1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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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화학상 오마르 야기 UC버클리 교수
고려대 석좌교수 수락한 이유는 ‘인재’
“미국 학교에만 앉아서 기다릴 수 없다”
202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오마르 야기 UC버클리 교수가 14일 고려대 석좌교수 임용 기념 특강에서 발언하고 있다. [고려대]
가축들과 같은 방에서 살던 팔레스타인 난민 소년을 구원한 건 한 권의 과학책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펼친 책에서 분자 구조 그림을 보고 완전히 매료됐다. 그 순간 소년은 분자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약 50년이 흐른 2025년, 그는 분자 구조를 설계한 공로로 과학계 최고의 자리에 서게 된다. 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오마르 야기 UC버클리 교수(61) 이야기다.

고려대 석좌교수 임용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야기 교수는 14일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인류가 과학을 이어가는 한 숱한 위기에도 역사는 진보할 것”이라고 했다. 과학이 지닌 잠재력을 믿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인 그가 최근 중동 정세를 보는 시선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야기 교수가 어린 시절 살았던 요르단 암만은 최근까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표적이었고 이곳에서 미사일 파편을 맞은 부상자도 발생했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용납될 수 없다. 우리는 서로를 보호해야 한다. 중동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한다.” 둥글둥글한 인상으로 인터뷰 내내 미소 짓던 그는 최근 중동 정세 이야기에는 단호한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야기 교수는 인류 문명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론을 폈다. 근거는 과학이다.

그는 거의 모든 언론 인터뷰에서 과학이 세상을 평등하게 만든다고 했다. 야기 교수는 “누구나 실험을 할 수 있고 가문이나 국가, 성별에 관계없이 세상을 바꿀 발견을 할 수 있다”며 “그렇게 알게 된 것으로 인류는 지금의 번영을 이뤘고 팬데믹을 극복하는 등 여러 위기를 넘겼다”고 했다. 과학 덕분에 난민이었던 소년이 세계 최고 과학자가 됐고 그가 만든 분자는 전 세계 난민의 식수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됐다.

“과학으로 만들어진 무기가 수많은 목숨을 빼앗지 않느냐”는 질문에 야기 교수는 “과학이 무기를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무기를 만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과학자는 끊임없이 지식의 경계를 넓히는데, 사회가 그 지식을 가져다가 마음대로 쓰고 있다”며 “사회는 분명 선택을 할 수 있고 불행하게도 해를 끼치기로 결정했을 뿐”이라고 했다. 야기 교수는 “그러면서도 사회는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또다시 과학자에게 해결책을 구한다”며 안타까워했다.

202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오마르 야기 UC버클리 교수가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과학이 역사를 진보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최원석 기자]
야기 교수는 과학의 선한 이용을 위해 직접 나섰다. 그가 연구한 ‘금속 유기 골격체(MOF)’는 엄청난 표면적을 갖고 있어 물질을 흡착하고 저장하는 데 유용하다. 1g의 물질에 축구장 두 배에 달하는 표면적이 들어 있다. 야기 교수는 이를 활용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기후위기를 해결하거나 수분을 흡수해 식수를 만드는 기술을 연구하고 관련 스타트업도 직접 설립했다.

그는 사회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야기 교수는 “인류가 직면한 위기의 과학적 해답은 이미 만들어졌다”며 “실질적 변화를 위한 투자가 남았을 뿐”이라고 했다. 최근 미국 과학계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또다시 위기를 맞았지만, 야기 교수는 이 역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역사적으로 과학은 언제나 압박에 시달렸지만, 매번 이를 넘어서는 자기 혁신을 해왔다”며 “늘 그랬듯 또 다른 답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야기 교수는 동료 과학자에게 “과학자들이 굴하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찾으면 이번 기회에 과학의 경계를 넓히고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건넸다. 그는 오히려 이번 위기를 통해 과학의 역할을 사회에 더 밀접한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낙관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야기 교수는 “나는 안일한 사람이 아니다”며 “큰 질문을 품고 주변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난 평생 매우 어려운 질문을 던졌고 눈치를 보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네트워크를 벗어났다”며 “거대한 질문을 던지고 해결할 때 그 응용 범위와 영향력은 훨씬 크다”고 했다. 그의 연구 성과가 어린 시절을 힘들게 한 식수 문제에 활용되는 건 우연이지만, 인류에 기여하는 건 결국 필연인 셈이다.

야기 교수가 고려대 석좌교수 제의를 수락한 이유 역시 인류에 기여할 연구를 하기 위해서다. 그는 “모든 나라에 엄청난 인재가 있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에 앉아 인재가 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인재가 있는 곳으로 가 세계에 기여할 연구를 하고 싶다. 한국에서도 그 결실을 맺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팔레스타인 난민 가정 출신의 오마르 야기 UC버클리 화학과 교수(61)는 15살에 미국으로 건너와 올버니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한 후, 일리노이대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안정적이면서도 표면적이 넓은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개발한 공로로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MOF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나 수분을 포집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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