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행복한 노예-고기 굽는 남자, 나물 무치는 여자

숯에서 타닥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폭죽 터지는 소리에 불씨가 사방으로 뻗는다. 지난해 대용량으로 구매했던 숯이 습기를 먹은 듯하다. 차콜스타터(착화통)에 숯을 넣고 부탄가스 토치로 불을 붙이는 방법으로는 불을 피우지 못한다. 몇 번 해봤지만, 부탄가스만 소모될 뿐이었다. 잘 마른 장작을 넣고 불쏘시개로 불을 붙여 화력이 좋을 때 숯을 넣는다. 용량을 넘을 정도로 수북이 쌓아 올린다. 그리고 멀리 후퇴다. 자욱한 연기 속, 한 참 불꽃은 보지 못하고 소리만 요란하다. 아래 숯이 숨이 막히는지 윗부분의 숯을 밀어제친다. 제치다 안되었는지 볼기짝을 사정없이 두드린다.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며 벌겋게 달아올랐다. 민원 들어올까 가슴 졸인다. 화창한 날에 폭죽놀이도 아니고 숯들의 집단싸움도 아닌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다른 날에 비해 숯을 일찍 피웠다. 벌건 대낮에 숯불이 우월함을 뽐낸다. 서로 두드려 패며 싸웠는데, 다들 승자가 된 듯하다. 그래 신나게 싸웠으니 이제 역할을 해야겠지? 숯 그릇에 벌건 숯을 쏟아붓고 그릴을 올렸다. 두껍게 썬 목살이 그릴 위에 올라가자마자 치직치직소리를 낸다. 굵은 천일염을 흩뿌린다. 타닥타닥 숯불에 소금이 반갑게 하이파이브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반가움에 표시다. 참 친화력 좋은 참숯이다. 작지만 노란 불꽃으로 반긴다.
며칠 전부터 마음이 심란했다. 무슨 고기를 준비해야 할지? 보통은 목살인데, 삼겹살에, 소시지에, 닭봉까지 주문했는데 뭔가 부족한 듯하다. 뭔가 빠졌는데 뭔지를 모르겠다. 손님이 온다는데 착잡해지기는 처음이다.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고, 몸은 늘 하던 대로 움직이고 있다. 풀 뽑을 때가 아닌데 웅그려 앉아 흙을 헤집고 있다. 이런! 고기를 올려놓았는데 잊고 있었다. 훈제바비큐 그릴 뚜껑을 열자 기화된 기름과 연기 우드칩 연기가 얼굴을 에워싼다. 덩달아 머리카락은 연기로 소독 중이다. 연기가 어느덧 빠져나가자 기름이 적절히 빠지며 붉은 갈색으로 변한 목살이 숯을 등지고 있다. 숯의 벌건 붉은 색은 목살의 기름마저 살살 녹일 수 있도록 어루만졌다. 이제 목살을 한쪽 옆으로 옮기고 닭봉이 그릴 사이에 자리한다. 노릇노릇 색이 변하더니 붉은 갈색으로 바뀐다. 열었던 뚜껑을 닫고 웅크리고 앉는다. 풀을 뽑는 손에서 풀향기가 아닌 잘 익은 고기 냄새가 난다. 잘 익었다. 풀이 입으로 들어갈지 모를 일이다.
풀을 뽑는 맞은편에선 아내가 나물을 뜯는다. 전광석화 같은 손놀림으로 텃밭은 초토화된다. 돌미나리, 머위, 오가피 순, 아스파라거스, 새순이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자란 곳에서 이별을 고하고 있다. 아직 제대로 피지도 않았는데 인정사정없다. 안 그래도 불쌍한데 머위는 겉껍질이 벗겨지고, 뜨거운 물에 데쳐진다. 팽형도 아니고 살짝 들어갔다가 나와선 조물조물 버무려진다. 위아래 뒤집히고 얽히고 풀렸다 뭉쳤다. 한참을 굴리고, 안쓰러웠는지 아끼던 접시에 소복하게 담아낸다. 파릇파릇한 녀석들이 머리엔 참깨를 뒤집어쓰고, 촉촉하고, 자작자작하게 변했다. 정갈한 모습이 보기 좋다. 보기만 해도 보들보들한 녀석들이 입속에 향기를 퍼트린다. 뜨거운 물 속에 빠지지 않은 녀석들은 새콤달콤한 초장으로 분장을 마치고 커다란 접시에 담겼다.
시골집에서 숯불에 구워줬던 고등어 맛, 태어난 집 옥상에서 구워 먹었던 가리비 맛을 잊을 수 없다는 아이들에게 가장 맛있는 고기는 아빠가 구워주는 고기다. 늘 그렇게 말해주니 간만에 아이들과 식사 하는 자리에는 굽고 훈제한 고기가 등장한다. 아내가 무쳐주는 나물과 잘 구운 아스파라거스, 그리고 음악, '한로로'로 시작, 수현, 헤이즈, 김필이 함께 한다.
고기를 굽고 나물을 무치는 가장 큰 이유는 소박하지만 대접하기 위해서다. 극진한 정성으로 손님을 새로운 식구로 맞이한다는 표현이다. 늘 함께 웃고 떠들 가족이라는 흔적이다. 찬 바람이 불었지만, 고기에게 붉은색을 내준 숯은 붉게 해넘이 노을로 파란 하늘에 흔적을 남겼다. 꺼지지 않을 온기는 하늘에서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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