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전쟁 이용한 日의 영리한 틈새외교

임세원 기자 2026. 4. 1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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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 국제부장
日은 美-이란 사이서 자국이익 챙겨
韓 지정학 제약 속 실리외교 배워야
다극체제 가속에 조정국 역할 절실
일본과 협력 확대도 적극 검토할만
이란 테헤란 혁명광장에서 한 여성이 13일(현지 시간)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폐쇄되어 있다’라고 적힌 대형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이란 전쟁에서 미국이 처음 협상을 언급하고 이란이 함정이라며 일축했던 3월 24일. 그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이란 당국에 구속된 일본인 중 1명이 귀국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호르무즈해협도 아닌 이란 영토 내 교도소에 정권을 비판해 정치범으로 수감돼 있던 일본인이 풀려난 것이다.

일본은 이번 전쟁에서 미국과 이란을 오가며 자국 이익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 대신 미국만 바라보는 외교를 펴온 나라가 일본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의 공격 동참 요구에는 “도울 의지는 있지만 법이 막는다”며 상황을 넘겼다. 대신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대미 투자 결정으로 미국의 불만을 잠재웠다.

일본은 오히려 이란 전쟁을 지렛대로 동북아에서 미국을 등에 업고 국방력 증대를 꾀하고 있다. 일본은 미군의 전투기 정비 파트너가 됐고 다른 나라가 경계하는 일본의 국방력 증대에 지지도 얻어냈다.

이란과의 끈도 놓지 않았다. 그 결과 4일 일본 선박이 처음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했다. 2주 휴전 합의를 발표한 8일에는 다카이치 총리가 주요국 중 가장 먼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통화했다. 휴전 합의 직전에는 미국·이란 정상과 각각 소통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에너지 확보 행보다. 일본은 254일분의 원유 비축 여력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국가와 공동 비축 등 대응 카드를 꺼냈다. 일본은 중동에서 원유의 90%를 수입하지만 후쿠시마 원전과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미국과는 에너지 비축과 투자 패키지를 논의 중이다.

일본의 외교가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미 투자에 대해서는 일본 내부에서도 미국에 퍼주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최소한 이번 전쟁의 주요 장면마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자주 등장했다. 특히 전쟁의 피해국이 아닌 해법을 찾는 조정국 역할이었다. 일본이 전쟁통에 보여준 모습은 철저하게 계산된 영리한 자기 이익 극대화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반면 한국은 일본보다 수세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소형모듈원전(SMR) 분야 투자를 미국에 제시하면 한국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미국 현지 전문가의 조언이 있었지만 일본이 선수를 쳤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규탄 성명에는 유럽과 일본·캐나다 등 7개국보다 한 발 늦게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은 원유 등 에너지 수급에서 비축일수 기준으로는 일본에 못지않다. 하지만 민간 의무 비축 부분에서 운영 경험이 짧다는 지적이 있다. 에너지원 다변화에서는 정권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정책이 갈지자를 그린 데다 원가연동률이 낮은 전기요금 체제 탓에 일본보다 불리하다. 반면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원전을 축소했지만 액화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를 확대한 뒤 원전을 재가동하면서 원전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

물론 한국이 처한 환경과 조건 자체가 일본보다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 경제와 안보의 ‘완전한 분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마당에 중국을 도외시하고 미국에 치중한 외교 행보를 보이기 힘들고 과거 미국 경제 제재와 맞물려 불편한 관계인 이란과도 물류망 등을 고려하면 척지기 어렵다. 이번 전쟁으로 한국산 무기 수입을 촉구하는 걸프국 때문에 이란은 한국을 더 경계하고 있다. 현실적 제약이 있음에도 일본의 영리한 틈새 외교에서 배울 건 배워야 한다.

이번 전쟁으로 세계는 미국 중심 체제에서 각자도생의 다극체제로 더 빨리 바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도 새로운 역할을 주문 받고 있다. 반도체와 방산 수출로 올라선 경제적 지위에 맞는 외교적 행보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동안 한국이 유지한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지는 않더라도 필요할 때는 적극적으로 글로벌 무대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다극체제 안에서 일본과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보다 능동적으로 생각해볼 때가 됐다. 마침 유럽연합(EU)과 캐나다도 중간국가의 역할을 어느 때보다 강조하는 중이다. 아시아와 유럽 양축에서 그 동안 볼 수 없는 협력이 나오길 기대한다.

임세원 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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