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서해랑길 7코스

장갑수 2026. 4. 1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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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항전’ 호국전적지와 남도 문화 뿌리를 만나다
첨찰산에서는 해남과 진도 사이에 형성된 명량해협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진도대교와 진도타워도 슬그머니 다가온다. 오늘은 해무가 끼어 선명하지는 않으나 명량해협 너머로 해남의 산들이 어렴풋하게 바라보인다.
진도는 문화예술의 고장이다. 진도에는 작은 식당에만 가도 그림 한 점, 글씨 한 점이 걸려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한국화와 서예가 발달했다. 진도아리랑, 남도들노래, 강강술래, 진도씻김굿, 진도다시래기 같은 남도창의 본거지 역시 진도다.

문화예술의 고장 진도는 어려울 때 나라를 지킨 호국의 고장이기도 하다. 정유재란 때 울돌목에 크게 승리한 명량대첩은 물론 고려시대 삼별초군이 몽골에 항전했던 곳 역시 진도였다. 서해랑길 진도구간을 걷다보면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과 호국의 전적지를 만날 수 있다.

서해랑길 7코스는 용장성에서 시작된다. 용장성은 고려시대 삼별초가 진도를 근거지로 몽골에 항전했던 산성이다. 고려는 몽골의 침략에 왕궁을 강화도로 이전하고 40년 동안 삼별초군이 중심이 돼 전쟁을 치렀으나, 원종 11년(1270) 몽골에 항복하고 말았다. 몽골에 대한 항복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배중손을 비롯한 삼별초군은 왕족인 온을 왕으로 옹립하고 진도로 남하, 궁궐과 성을 쌓고 몽골과 항전을 계속했다.
용장성은 고려시대 삼별초가 진도를 근거지로 몽골에 항전했던 산성이다. 지금도 용장산 기슭에는 성벽이 남아있고, 성안에 궁궐터가 남아있다.

지금도 용장산 기슭에는 성벽이 남아있고, 성안에 궁궐터가 남아있다. 삼별초는 용장성을 중심으로 10개월 남짓 짧은 기간 동안 궁성을 이루고 남해안 일대와 제주도를 점령해 자주적인 왕조를 구축했다.
용장성은 발굴조사를 바탕으로 축대와 계단, 건물지를 복원하여 7백여 년 전의 흔적을 전해주고 있다. 용장성 아래쪽에는 용장성홍보관이 있고, 고려항몽충혼탑과 배중손사당 배중손 동상이 대몽항쟁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고려항몽충혼탑.

용장성을 출발한 서해랑길 7코스는 용장마을 골목길로 접어든다. 용장마을은 용장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했다. 마을 주변 밭에는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들이 울긋불긋 피어있다. 용장마을을 지나 용장산 자락 임도를 따라간다. 숲길로 들어서니 생강나무가 노랗게 꽃을 피웠다. 성재라 불리는 낮은 고개를 넘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들판이 나오고, 진도군 고군면소재지도 멀지 않게 바라보인다.

서해랑길 7코스는 해변에서 떨어진 산길과 들길을 따라 걷는 길이어서 바다를 만나지 않는다. 들길을 따라 걷는데 넓은 논을 가운데 두고 북쪽에는 송산마을이, 남쪽에는 고군면소재지 고성마을이 산자락에 자리했다.

군내오일시장 앞을 지나 군내면소재지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걷는다. 주말인데다가 조그마한 면이라 거리는 한적하다. 면소재지 근처에는 군내농공단지도 자리하고 있다. 2차선 도로에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길게 이어진다. 가을철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면 우아한 길이 될 것 같다.

농로를 따라 걷다가 첨찰산 임도로 접어든다. 임도는 첨찰산과 죽제산 사이 골짜기를 따라 고도를 높여간다. 임도 주변에는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농장도 있다. 표고버섯은 구기자, 울금과 함께 진도의 대표적인 농업특산물이다. 임도 아래 계곡에서 흘러가는 물소리가 가냘프게 들려온다.

임도 주변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숲을 이뤘지만 동백나무가 많고,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도 있다. 동백나무 진녹색 잎 위에 빨갛게 핀 동백꽃이 요염하고, 큰 나무 아래에서 진달래가 수줍은 듯 꽃망울을 터뜨렸다. 화사한 봄을 즐기고 있는 새들이 경쾌하게 노래를 한다.

산비탈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임도는 수많은 곡선을 그리며 고도를 높여간다. 고도가 높아져 첨찰산에서 죽제산으로 이어지는 고개에 이르자 오늘 처음으로 바다가 바라보인다. 산 아래쪽으로 넓지 않은 농경지와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회동마을해변도 바라보인다. 올해는 오는 17일부터 20일까지 4일간 오후 늦은 시간에 바닷길이 열린다.

서해랑길은 기상대 입구에서 첨찰산 방향으로 100m 거리에 있는 삼거리에서 운림산방으로 하산한다. 갈림길에서 100m만 올라가면 도착하는 첨찰산 정상을 두고 그냥 내려갈 수는 없다.

첨찰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설치돼 있다. 봉수대에 올라보니 진도기상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다. 봉수대에서는 사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이 시원하다. 해남과 진도 사이에 형성된 명량해협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진도대교와 진도타워도 슬그머니 다가온다. 오늘은 해무가 끼어 선명하지는 않으나 명량해협 너머로 해남의 산들이 어렴풋하게 바라보인다.
첨찰산 정상에 설치된 봉수대

운림산방으로 하산한다. 등산로 주변은 소사나무가 숲을 이루다가 차츰 동백나무 숲으로 바뀐다.

첨찰산 일대의 동백나무군락지는 40만평에 이른다. 첨찰산 자락에서부터 허리까지 골고루 분포하고 있으며, 규모만 놓고 보면 국내 최대다. 밀집된 동백나무 숲에 빨갛게 핀 동백꽃이 진도의 봄날을 화사하게 물들여준다. 동백나무와 붉가시나무로 숯을 구웠던 숯가마터를 만나기도 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주민들이 생계수단으로 숯을 구웠다고 한다.

동백숲길은 계속 이어지고 물소리가 점차 크게 들려올 즈음 운림산방에서 가계해수욕장 방향으로 넘어가는 2차선 도로를 만난다.

도로를 만나는 곳에 ‘진도아리랑비’가 서 있다. 진도아리랑비에는 ‘아리 아리랑 서리 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 아라리가 났네’로 표현되는 가사가 새겨져 있다. 진도는 아리랑의 고장이다. 아리랑은 우리나라 대표민요이자 한국문화를 상징하는 노래다.
진도아리랑비

진도아리랑 가락을 읊조리며 운림산방으로 향한다. 운림산방에 도착하니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첨찰산 첩첩산중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다는 운림산방.

운림산방 앞에 운림지라 불리는 네모진 연못이 있고, 연못 가운데 둥근 인공섬에 배롱나무 한 그루가 우아하게 서 있다. 운림산방 뒤로는 첨찰산이 포근하게 자리했다.

첨찰산과 운림산방, 운림지가 어울린 모습은 아름다운 풍경화 한 폭이다. 오늘은 목련꽃까지 화사하게 피어 그림이 더욱 산뜻해졌다.

첨찰산을 등지고 남향으로 자리한 운림산방은 진도그림의 뿌리이자 한국 남종화의 고향이다. 운림산방은 조선후기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선생이 살면서 그림을 그리던 곳으로, 이후 그의 후손들이 이곳에서 나고 자라며 남종화의 맥을 이어왔다.
첨찰산을 등지고 남향으로 자리한 운림산방은 진도그림의 뿌리이자 한국 남종화의 고향이다.

운림산방은 소치선생이 그림을 그리던 화실인 운림산방과 기거했던 초가고택, 영정을 모신 운림사가 앞뒤로 자리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지켰던 항전의 고장 진도는 이렇게 문화예술로 꽃을 피웠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서해랑길 7코스는 항전의 고장이자 문화예술의 고장 진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지를 만나는 구간이다. 길은 고려 항몽전적지 용장성에서 시작해 진도를 대표하는 산 첨찰산을 거쳐 한국 남종화의 뿌리인 운림산방까지 이어진다.
※코스:용장성→용장마을→고군 5일시장→첨찰산임도→진도기상대 입구→진도아리랑비→운림산방
※거리, 소요시간 : 12.2㎞, 4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진도 용장성주차장(전남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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