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돌봄의 최전선 16년…장정희 대구요양병원 간병팀장 “간병은 노동 아닌 책임”
낮은 수가·열악한 환경…돌봄 시스템 경고등

대구의 한 요양병원 복도를 걸으며 환자들을 살피는 장정희 팀장의 발걸음은 익숙하면서도 묵직하다. 16년째 이곳 대구요양병원 간병팀을 이끌고 있는 그는 이틀에 한 번꼴로 이어지는 근무 속에서 한 달의 절반을 병원에서 보낸다. 하루 24시간 환자 곁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장 팀장은 간병인으로서의 삶, 그 속에서 마주한 기쁨과 아픔,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돌봄의 현실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연한 시작, 필연이 된 16년
장정희 팀장이 요양병원에 첫발을 디딘 것은 2010년, 친구의 권유가 계기였다. 당시만 해도 이 일이 자신의 인생에서 이토록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지금, 그는 수많은 환자를 돌보며 여러 번의 이별을 겪으면서 이 일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긴 시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면 환자는 더 이상 '돌봐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가족이 됩니다." 장 팀장의 이 말에는 16년간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이어지는 간병 속에서 쌓인 정은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병실 안의 공동체
요양병원의 병실은 단순한 치료 공간을 넘어선다. 장 팀장은 병실 안에서의 관계가 때로 가족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직원의 부모나 지인도 환자로 입원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함께 치료를 받던 직원 가족이 임종을 맞았을 때 병원 전체가 슬픔을 나눈 적도 있었죠."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과 간병인이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공동체에 가깝다. 단순히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는 관계를 넘어,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삶의 공간인 것이다.
△어머니를 돌보던 기억이 힘이 되어
장 팀장이 간병인의 길을 선택한 데는 개인적인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과거 오랜 시간 어머니를 돌본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의 시간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의 근간이 되었다. 환자를 대할 때마다 '내 부모라면 어떻게 할까'를 먼저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0년의 인연, 그리고 그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를 묻자, 장 팀장은 10년 가까이 모신 교장 출신 환자를 떠올렸다. 이 환자와의 인연은 단순한 간병인-환자 관계를 넘어섰다. 가족과도 깊은 인연을 맺으며 병원 밖에서도 관계가 이어졌고, 환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인연은 계속되고 있다.
"오랜 시간 함께하면 인연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환자를 통해 또 다른 삶과 연결되기도 하죠." 장 팀장의 말에는 간병이라는 일이 단순히 직업적 관계를 넘어 인생의 깊은 인연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은 변화에서 찾는 보람
간병인의 일상은 힘들지만, 보람의 순간도 적지 않다. 장 팀장은 파킨슨병 환자를 돌보며 작은 변화 하나에도 기쁨을 나눴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특히 튜브로 식사하던 환자가 다시 스스로 식사를 하게 됐을 때는 큰 성취감을 느꼈다고 한다.
"간병은 단순히 돌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회복시키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의 말처럼, 간병인의 손길은 때로 환자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이러한 순간들이 힘든 일상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몸에 새겨진 직업의 흔적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간병인의 하루는 육체적·정신적 부담이 크다. 같은 자세로 환자를 돌보는 일이 반복되면서 장 팀장의 허리와 어깨, 목에는 만성 통증이 남았다. "이제는 직업병처럼 몸에 자리 잡았습니다"라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다. 치매나 정신질환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폭언이나 오해를 겪는 일도 있고, 몸을 잡고 일어나는 과정에서 상처가 생기기도 합니다." 장 팀장의 설명이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
가장 힘들었던 환자로 장 팀장은 망상 증세로 간병인과 의료진을 원망하던 환자를 떠올렸다. "그분도 결국 병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는 고백이다.
△다시 병실로 돌아가게 하는 힘
그럼에도 장 팀장을 다시 병실로 돌아가게 만드는 힘은 '사람'이다. "결국 환자와의 관계가 버티게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키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는 간병인으로서의 사명감이 묻어난다.
수많은 임종을 지켜봤지만, 가족 같은 인연을 떠나보낼 때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이는 간병인이라는 직업이 단순히 기술적인 돌봄을 넘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삶과 죽음을 직면하게 만드는 일임을 보여준다.

△익숙한 손길이 주는 안정감
현재 대구요양병원에는 약 100명의 직원과 50여 명의 간병인이 근무하고 있다. 장 팀장은 이곳의 운영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환자와 간병인을 자주 바꾸지 않고 한 병실을 오래 맡는 방식으로 운영합니다. 익숙한 손길이 환자에게 안정감을 주고, 간병인에게는 책임감을 높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환자와 간병인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환자는 익숙한 간병인의 손길에서 심리적 안정을 얻고, 간병인은 오랜 시간 함께하며 환자를 더 깊이 이해하고 돌볼 수 있게 된다.
△간병 현장의 구조적 문제
장 팀장은 간병 현장의 구조적 문제도 지적했다. 낮은 수가와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젊은 인력 유입이 줄고, 외국인 간병인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환자실은 업무 강도가 높아 인력 유지가 가장 어렵다고 했다.
"대부분 자격증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 맞는 체계적 교육은 부족합니다. 정부와 관련 기관의 지원이 더 필요합니다." 장 팀장의 지적은 간병 현장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격증 취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실무 교육과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늘어나는 돌봄 수요, 준비되지 않은 현실
장 팀장은 앞으로 돌봄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노인 인구가 계속 증가하면서 요양병원을 찾는 환자도 많아질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구조로는 늘어나는 간병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의 우려는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16년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변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요양병원의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력과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 모두의 미래
마지막으로 장 팀장은 간병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돌보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결국 우리의 미래입니다. 누군가는 그 곁을 지켜야 합니다."
이 말은 간병이 단순히 특정 직업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임을 시사한다. 지금 요양병원에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언젠가 우리 자신의 모습이 될 수 있고, 그때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장정희 팀장은 같은 마음으로 병실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