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숨결에 현대 감각 입히다…표선형 민화전 ‘첫 봄’

곽성일 기자 2026. 4. 14. 17:1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서 4월 14~19일 개인전 개최
모란·책가도 등 전통 도상 재해석, ‘왜 그리는가’ 질문 던져
▲ 표선형 민화전 포스터.

봄의 문턱에서 전통 민화의 따뜻한 색감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전시가 대구 도심을 물들인다. 표선형 작가의 개인전 '민화로 피어난 첫 봄'이 4월 14일부터 19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 A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민화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지 7년을 맞아 그간의 작업 성과를 집약한 자리다. 단순한 작품 발표를 넘어, 전통 회화로서 민화가 지닌 본질적 가치와 오늘의 감각 속에서 다시 호흡하는 가능성을 함께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최근 K-컬처 확산과 함께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흐름 속에서 민화는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도 민화를 단순한 장식적 회화로 보지 않는다. 액운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긴 '이타적 예술'로 정의하며, 그 정신적 기반을 작품의 중심에 놓는다.

민화 작업의 핵심은 '시간'과 '기다림'이다. 색을 칠한 뒤 마르기 전 물을 묻힌 붓으로 경계를 문질러 농담을 조절하는 바림 기법은 수차례 반복을 거쳐 완성된다. 이 과정은 단순한 기법을 넘어 수행에 가까운 집중과 인내를 요구한다. 작가는 이러한 반복 속에서 과거의 형식을 답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감각을 덧입힌 새로운 화면을 구축해 나간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두드러지는 지점은 '왜 그리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작가는 민화를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왜 그렸는가'가 중요한 그림으로 바라본다. 각각의 사물과 장면에 상징과 이야기가 스며 있으며, 관람객은 이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서사를 읽어내게 된다. 글자가 없는 그림책처럼 다가오는 친근함이 작품 전반에 흐른다.

전시에는 모란도, 장생도, 책가도 등 전통 민화의 대표적 소재를 재해석한 20여 점이 소개된다. 모란의 화사함과 장생도의 길상적 상징, 책가도의 정제된 구성이 각기 다른 분위기로 펼쳐지면서 전통적 도상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환기한다.

작품들은 전통 구도를 유지하면서도 선명하고 절제된 색 대비를 통해 화면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복잡한 장식성을 덜어내고 핵심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방식은 현대 회화적 감각과 맞닿아 있다. 그 결과 화면은 고요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균형을 유지한다.

주목할 만한 작업으로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국작도 8폭 자수병풍 가운데 일부를 회화로 재구성한 시도가 있다. 자수의 질감을 회화적 언어로 옮겨오면서도 전통의 상징성을 유지하려는 실험적 접근이 돋보인다. 또한 금강산도를 판타지적 분위기로 풀어낸 작품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와 함께 수묵 기법을 가미한 책가도는 절제된 색감 속에서 현대적 미감을 드러내고, 자개의 질감을 표현한 가로책가도는 재료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환기한다. 동물의 표정과 구도를 강조한 화조구자도는 화면에 긴장과 생동을 불어넣으며, 작가의 섬세한 관찰력과 조형 감각을 드러낸다.

작가는 사물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세심히 읽어내고, 이를 화면에 온전히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모란 한 송이의 우아함, 책가도 속 물건들의 질서 있는 배열 등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감정과 서사를 품은 장면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태도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현재의 언어로 다시 풀어내려는 작가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 표선형 작가

표선형 작가는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헌정보학을 졸업했으며, 낙동대전 최우수상, 예술대제전 금상, 영남미술대전 우수상 등 주요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역량을 인정받아왔다. 또한 국내외 전시에 꾸준히 참여하며 작업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전통 민화의 정서와 현대적 해석이 조화를 이루는 자리"라며 "관람객들이 편안함 속에서 작품의 상징과 이야기를 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봄의 기운이 완연한 시기, '민화로 피어난 첫 봄'은 전통과 현재를 잇는 조용한 울림으로 관람객을 맞이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