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개운산행? 오를 곳 없는 청년들이 산에 오르는 '웃픈 이유' [세태+]

김하나 기자 2026. 4. 14. 16:4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천태만상
최근 관악산 개운산행 인기
운 트이게 하기 위해 등산
입지 좋은 호텔 명당으로 인기
특정 장소 기운 추종하는 이유
청년층이 마주한 현실 때문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관악산 개운산행開運山行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김 대리, 주말에 산이나 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등산은 중장년층의 전유물이었다. 주말 산행을 강요하는 직장 상사와 이를 피하려는 하급자의 눈치 싸움은 한동안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도 쓰였다.

하지만 요즘 등산의 풍경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2030세대가 적극적으로 산에 오른다. 단순히 건강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이유도 있다. 운運을 얻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건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관악산 개운산행開運山行'이다. 개운산행이란 운을 트이게 하기 위해 산에 오르는 행위를 뜻한다.

이 흐름은 지난 1월 방영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작됐다. 유명 역술가가 "관악산은 정기가 좋으니 일이 잘 안 풀릴 때 가보라"고 언급한 후 입소문을 탔다. 이후 관악산이 '명당'으로 떠오르면서 주말마다 젊은 등산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방증하는 통계자료도 있다. 서울관광재단에 따르면 올해 1월 서울등산관광센터 관악산점 방문객은 5752명으로 전년 동월(5012명) 대비 14.8% 늘었다. 2월 역시 방문객이 9.6%(4848명→5217명) 증가했다(표①).

관악산 열기는 온라인에서도 확인된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관악산 해시태그는 32만개를 웃돈다(4월 8일 기준). 키워드 분석 플랫폼 블랙키위에 따르면 올해 3월 네이버 '관악산' 검색량은 9만4300건으로 전년 동월(2만7300건) 대비 3.5배로 증가했다(표②).

주목할 점은 관악산으로 시작된 이른바 '개운開運'을 찾는 흐름이 산을 넘어 도심 공간으로도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서울 용산구의 A호텔은 젊은층 사이에서 '개운명당'으로 거론된다. 온라인상에서 이 호텔 입지를 두고 "남산 중턱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이 돈과 일의 운을 높여준다"는 이야기가 확산하면서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A호텔 관계자는 "풍수지리적으로 로비 라운지에서 미팅이나 계약을 진행하면 일이 잘 풀린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며 "최근 관련 문의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젊은층이 특정 장소의 '기운'을 추종하는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유행이 아닌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보고 있다. 허창덕 영남대(사회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청년층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는 '개운' 문화는 단순한 미신이나 트렌드가 아닌, 불안 해소 방식에 가깝다. 스펙 쌓기나 구직 활동 같은 현실적인 노력이 더 이상 보상을 약속하지 못할 때, 청년들이 '운'이라는 외부 변수에 기대서 심리적 위안을 얻으려는 것이다. 현실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기운에 의존하려는 경향은 짙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청년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 국가통계연구원이 발표한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삶의 전반적 만족도를 0~10점으로 평가했을 때 우리나라 청년들의 만족도는 평균 6.7점으로 나타났다. OECD 평균(6.8점)보다 0.1점 낮았다(2024년·19~34세 기준).

이런 현실은 정신건강 지표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난 3월 김미애 의원(국민의힘)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항우울제 처방 건수는 2440만건으로 5년 전(2020년·1785만건) 대비 36.7% 늘어났는데, 20대(55.9%)와 30대(74.7%)의 증가율이 유독 높았다. 학업과 취업, 경제 활동 스트레스 등이 우울 증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표③).

실제로 청년 일자리 지표는 심각함을 넘어선 지 오래다. 국가데이터처가 올해 1월 발표한 '2025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6.1%로 전년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이던 2022년(6.4%) 이후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청년층 취업자도 전년 대비 17만8000명 줄었다(표④).

젊은층이 특정 장소의 '기운'을 추종하는 이유가 뭘까.[사진|뉴시스]
30대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30대 '쉬었음' 인구는 30만9000명으로 전년보다 7000명이나 늘었다.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치다. 쉬었음 인구란 일도 하지도 않고 구직도 하지도 않으며, 특별한 사유 없이 그냥 쉰 인구를 뜻한다(표⑤).

결국 이들이 산에 오르고 명당을 찾는 행위는 '운'이란 실체 없는 동아줄이라도 잡아야만 버틸 수 있는 청년 세대의 처절한 생존 전략에 가깝다. 그곳 말고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뼈아픈 현실이다.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