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환자 치료제 만드는 'AI 병원'…의료 데이터체계 혁신이 첫걸음"
헬스케어 산업 AX 속도 내려면
무거운 전산 시스템 경량화하고
차세대 프로그램 새로 개발해야
인공지능 확산 땐 임상자료 통해
병원이 진료 넘어 신약 생산까지

“인공지능(AI) 혁명이 기술 도입(Deploy)과 재구성(Reshape), 창조(Invent) 등 세 단계로 발전한다고 보면 한국 의료기관의 AI는 아직 기술 도입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병원 등 헬스케어 산업 전반의 인공지능 전환(AX)을 위해선 차세대 전자의무기록(EMR) 도입이 꼭 필요합니다.”
박지현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파트너(사진)는 14일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BCG는 세계 1위 종합병원인 미국 메이요클리닉과 AX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의료기관의 AI 도입이 여전히 산발적 파일럿 단계에 머물러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관 내 의사결정, 운영 체계 등에 AI를 폭넓게 도입하는 AX가 절실하다는 취지다. 미국 럿거스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박 파트너는 20여년 간 국내 헬스케어 산업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그를 통해 국내 의료기관 등의 AI 도입 현황과 AX를 위한 전략 등에 대해 들어봤다.
▷국내 의료기관에서도 AI 활용이 늘고 있다.
“의료기관에서 AI를 도입할 때 왜 필요한가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헬스케어 분야의 가치사슬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기존엔 병원이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점차 환자를 위한 치료제를 생산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키메릭항원수용체(CAR)-T세포를 보자. 병상에 있는 환자의 혈액을 뽑아서 T세포를 배양한 뒤 이를 생산하는 과정이 모두 병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의약품위탁개발생산(CDMO)을 하는 것처럼 병원이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병원이 단순히 환자를 진료하는 역할에서 벗어나고 있다.
“환자만 진료하는 곳이 아니라 신약 개발은 물론 이를 제조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제조보다 더 앞에 있는 연구개발(R&D) 분야에서도 병원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국내 의료기관엔 방대한 임상 데이터가 쌓여 있다. 구글과 같은 정보기술(IT) 기업들은 데이터만 가지고 신약 개발을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한국 병원이야말로 이런 혁신을 위한 최적의 장소다.”
▷신약 개발을 위한 가치사슬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병원에 임상 데이터가 쌓여있는 데다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환자들이 모여있다. 공간 차원에서 보면 지금은 병원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머무르고 있지만 원격 진료와 같은 버추얼 케어가 활발해지면 집에서도 환자를 케어할 수 있게 된다. 집에 있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디지털이다. 미래 병원의 모습은 이런 커다란 그림에 맞춰 바라봐야 한다.”
▷이를 위해 변화에 나선 병원들이 있나.
“신약 개발 연구 등을 위해 임상 데이터를 통합하는 클리니컬 데이터 웨어하우스(CDW) 플랫폼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 다수의 종합병원과 이미 이런 작업에 들어갔다. 물론 병원들이 이런 움직임에 나서는 게 ‘신약을 만들어 이윤을 창출하고 사업화하겠다’는 목적은 아니다. 병원이 보유한 자원을 다른 산업군에서 활용하도록 돕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CDW를 활용해 신약 개발로 이어지고 이를 통한 매출이 병원으로 흘러 들어간다면 의미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장기 전략과 비전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병원 내 프로세스 혁신을 위해서도 AI가 필요하다.
“AI 전환의 기본적인 목적은 운영 효율화다. 의료진의 시간을 절약해줄 수 있다. 하루에 50명의 환자를 보던 의사가 100명을 보도록 바꾸는 게 목표는 아니다. 이전처럼 똑같이 50명을 보더라도 한 환자에게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다른 업무를 줄여줄 수 있다면 환자에게 ‘3분 진료’하던 시간을 ‘6분 진료’로 바꿀 수 있다. 병원을 환자가 찾으면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워크플로)가 10단계까지 있다고 가정해보자. 환자가 오면 증상을 묻고 진단해 처방하고 검사하는 등의 업무다. AI로 환자가 의사를 만나기 전 진단과 상태 파악 등을 보조할 수 있게 되면 의사는 10단계 업무 중 상당수를 줄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남은 시간에 환자와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다. 목표는 양질의 서비스로 개선하는 것이다. 환자를 더 많이 보는 것처럼 양을 늘리는 게 아니다.”
▷의료기관 AX의 가장 큰 장애물로 EMR을 꼽았다.
“병원마다 활용하고 있는 EMR은 도입한 지 20년 넘게 시간이 지난 시스템이다. 두세 개 업체가 공급하는데 모놀리틱(한 덩어리, 단일체) 구조다. 아주 무거운 시스템이다. 무언가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고 새로운 것을 연동하는 것도 힘든 구조다. 메이요클리닉은 AX를 위해 내부 전자기록시스템을 모두 바꿨다. AI를 활용하기 위해 경량화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AI 도입이 파편화된 게 EMR 영향이라고 보나.
“국내 의료기관의 AI 도입은 상당히 분절화됐다. 이를 통합해 하나의 플랫폼으로 구축하려면 차세대 EMR이 필요하다. AX 속도를 높이기 위해선 사람과 프로세스, 기술 등이 모두 조화를 이뤄야 한다. 결국 EMR에 AI를 탑재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진짜 AX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해외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은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차세대 한국형 K-EMR이 개발돼야 한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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