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에 없던 이야기···여성들 이름을 찾는 발걸음
금남로공원서 시작된 홍단심길
광주 최초 여의사 현덕신 선생
현재 병원 옛 터만 남아 아쉬움
동아부인상회 있던 신동아극장
서석병원 옛 터·흥학관 역사도
시대를 앞선 여성 목소리 ‘생생’

토요일의 이른 오전, 금남로공원은 여느 때처럼 활기로 가득했다. 화려한 간판과 세련된 옷차림의 청년들 사이로 조금 특별한 목적을 가진 무리가 모여들었다. 광주여성가족재단에서 운영하는 광주여성길 도보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었다. 이번 투어의 길잡이를 맡은 박혜진·한상규 해설사는 첫인사부터 참가자들에게 심상치 않은 당부를 건넸다.
“오늘 우리가 걷는 길에는 남아 있는 건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뜨거운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비어 있는 공간 위에 100년 전 이곳을 지켰던 여성들의 얼굴을 그려 넣어 주셔야 합니다.”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였던 현덕신 선생(1896~1962)의 발자취를 좇는 홍단심길 코스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거점지인 금남로공원에서 출발해 현덕신병원 옛 터, 김필례 가(서석의원 옛 터 추정), 광주우체국(현 충장우체국), 흥학관 옛 터를 지나 최영온(정율성) 가 옛 터에 이르는 약 1시간 30분 코스다.

◆사라진 공간 위 그려진 여성들의 얼굴
투어의 첫 번째 발걸음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장재성 빵집과 김기권 문방구점의 옛 터였다. 현재는 현대적인 건물이 들어서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1929년 당시 이곳은 광주 농고, 사범학교, 그리고 전남여고 학생들이 쌈짓돈을 모아 만든 작은 해방구였다. 1층에서는 빵을 팔고, 2층에서는 학생들이 모여 독립의 방략을 모의했다.
해설사는 장재성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졌던 그의 여동생 장매성을 소개했다. 장매성은 여학생들의 항일 비밀결사체인 ‘소녀회’를 주도하며 오빠와 함께 독립의 길을 걸었다.
“우리는 늘 남성의 목소리로 기록된 역사를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이 빵집 2층에서 독립을 꿈꾸며 사회주의 책자를 읽고 토론하던 여학생들의 눈빛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이 없었다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불꽃은 그렇게 오래 타오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어 참가자들의 발걸음은 금남로공원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멈춰 섰다. 해설사는 돌발 퀴즈를 던졌다.
“광주에 소녀상이 몇 개나 있는지 아십니까?”

◆단발머리 여의사와 부인들의 상점
충장로 4가를 지나면서 참가자들은 이번 코스의 핵심 인물인 현덕신 선생과 마주했다. 현덕신 병원 옛 터에 서자, 해설사는 코팅해온 빛바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가 단발로 머리를 자른 이유는 멋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병원에서 근무하며 생사의 기로에 놓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다가가기 위해 단장할 시간을 줄이려는 목적이었다.
현덕신 선생은 광주 최초의 여의사였을 뿐만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혁명가였다. 100년 전 여성이 몸을 드러내는 것을 수치로 여겨 병을 키우던 시대에 그는 여성을 위한 진료에 전념했다. 또한 아들의 유학 자금을 털어 유치원을 세우고 여성들에게 성교육과 위생 교육을 실시하자는 주장을 폈다. 해설사는 신문 기사를 인용하며 당시 현덕신 선생이 머리를 자른 사실만으로도 신문에 대서특필 될 만큼 세간의 화제였다고 전했다.


◆광주 정신을 키운 배움의 공간
다음으로 향한 곳은 김필례 선생(1891~1983)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서석병원 옛 터였다. 김필례 선생은 광주 교육의 선각자이자 수피아여고의 정신적 지주였다. 3.1 운동의 도화선이 된 2.8 독립선언서는 김필례 선생의 조카 김마리아가 일본에서 품고 들어와, 김필례 선생의 광주 자택에서 복사해 서울로 가지고 간 기록이 있다.
“공부하면 버릇없어진다는 소리를 듣던 시대에, 김필례 선생님은 가장 배운 사람이 가장 헌신적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덕분에 광주의 완고한 집안들도 딸들을 학교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종착지는 흥학관 옛 터였다. ‘일어나서 배우라’는 뜻의 흥학관은 당시 광주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의 메카였다. 흥학관 옛 터 일대는 1921년 광주의 부호 최명구가 지방 청년의 수양 공간으로 지역사회에 기증한 곳으로, 일제강점기 광주청년회와 광주신간회 등 청년·사회 단체의 주요 활동 거점이었다. 청년·노동자를 위한 강연과 야학이 열렸으며, 야구부 등 운동부의 체육시설로도 활용됐다. 광주의 권투 역시 흥학관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이곳에서는 밤마다 ‘부인의 야학’이 열렸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아이를 업고 모여든 여성들이 이곳에서 글을 배우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다. 해설사는 최수향이라는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언급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최연소(16세)의 나이로 만세운동에 참여했고, 고초를 겪으면서도 방학 때마다 내려와 야학에서 여성들을 가르쳤다. 그의 삶은 흥학관이 광주 정신의 용광로였음을 증명하며, 특히 고부간 갈등을 사회적 주제로 끌어올려 토론했던 기록은 당시 여성들의 현실과 극복 의지를 보여준다.
이날 투어에 참여한 강민성(29)씨는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도 몰랐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알게 돼 뜻깊다”며 “특히 광주 최초의 여의사였던 현덕신 선생을 깊이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100여 년 전에도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 점이 존경스럽다”는 소감을 전했다.
글·사진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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