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위해 ‘결혼’해도 ‘출산’은…비수도권 청년들의 생존전략 [플랫]
“결혼을 해서라도 감정적, 경제적으로 좀 안정되고 싶어요.”
울산에 사는 A씨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 포기하고 중소기업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안정된 직장을 갖지 못했다. 그는 최근 부모와 지인을 통해 맞선을 보기 시작했다. 불안정했던 친구가 결혼 뒤 안정적으로 변한 모습 역시 결혼을 기대하게 됐다. A씨는 “배우자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 ‘가족형성의 지역적 조건과 초저출산에 대한 함의’를 보면, 비수도권 청년들에게 결혼은 불안한 현실을 버텨내기 위한 ‘생존 수단’으로 인식되는 현상이 포착됐다. 연구진은 산업구조가 다른 울산·대전·광주 등 3개 도시에 거주하는 20~30대 남녀를 심층면접해 비수도권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분석했다.
계약직과 경력 공백 등 불안정을 경험한 지방 청년들일수록 결혼에서 안전망을 찾는 경향을 보였다. 취업 준비기까지는 ‘부모 도움’이 안전망으로 기능하지만, 독립 이후에는 ‘결혼’이 안전망으로 기능하는 구조다. 실제로 광주에 사는 B씨는 20대까지 비혼주의에 가까웠지만 30대가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경제적으로 홀로서기가 가능하다면 상관없는데, 그 정도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들수록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며 “결혼을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합치지 않고 각자 관리하면서 일은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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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이 같은 현상은 지역 특유의 조건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수도권에 비해 주거비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고, 개인보다 가족 단위 삶을 선호하는 지역 문화가 남아 있어 정규직이나 주택 소유 같은 결혼 조건이 유연하게 작동한다. 이에 따라 비수도권 청년들에게 결혼이 삶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생존 전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생존을 위해 ‘결혼’은 받아들이더라도 ‘출산’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로 인식됐다. 심층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들은 출산과 양육의 필수 전제로 ‘안정적인 맞벌이 유지’ ‘어린이집·학교·병원이 갖춰진 주거지 확보’ ‘조부모 등 돌봄 네트워크’ 세 가지를 핵심 조건으로 꼽았다.
문제는 비수도권에서 이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지역 노동시장에선 여성 일자리 질이 낮아, 맞벌이가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울산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맞벌이를 원하는 청년 부부가 많지만, 35~39세 여성 고용률은 45.5%로 전국 평균보다 22.4%포인트 낮다. 지방 대기업 사무직에서는 여성을 계약직으로 채용한 뒤 최대 2년까지만 연장 고용하는 ‘2+2 관행’도 남아 있다. 이처럼 여성 고용이 단기 계약에 머무는 구조에서 출산과 육아가 겹치면 노동시장 복귀 자체가 어려워진다. 결혼으로 간신히 세운 생존 방어막(맞벌이)이 무너질 것이라는 공포가 출산을 아예 선택지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에 보고서는 지역 청년들이 가족을 꾸리고 유지할 수 있는 조건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구진은 “결혼과 양육을 둘러싼 과도한 사회적 기준선을 낮춤과 동시에 비수도권 공공부문 일자리 질을 높여야 한다”며 “특히 청년 정책에서 여성 일자리 문제를 주류 의제로 다루고, 취업 준비와 경력 개발, 결혼·출산·육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경력단절 없이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생애주기별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부 지자체가 내놓는 만남 주선 프로그램과 같은 이벤트성 지원책을 두고는 “실효성이 없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 김찬호 기자 flycloser@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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