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보다 보니 풍경, 읽다 보니 마음"

2026. 4. 1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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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정승조 아나운서 ■

보다 보면 ‘저기 어디지?’ 싶다가요.

어느 순간 ‘지금 내 마음이 이런가?’ 싶어지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우성의 작업이 그렇습니다.

익숙한 하늘과 들판, 바다와 길목은 화면 안에서 낯설고도 다정한 풍경으로 다시 펼쳐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전시 제목인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 역시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문장입니다.

그 문장은 그림 앞에 선 사람을 잠시 멈추게 하고, 풍경 너머의 마음까지 바라보게 합니다.

'정승조의 아트홀릭'은 이번 인터뷰를 통해 '이우성 작가'가 어떤 장면 앞에서 멈춰 서는지, 오래 묵힌 사진이 어떻게 그림이 되는지, 그리고 끝내 화면에 남기고 싶었던 마음이 무엇인지 들어봤습니다.

■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라는 제목이 오래 남습니다. 작가님은 이 제목에 어떤 마음과 시간을 담으셨는지 먼저 듣고 싶습니다.

이우성, 퇴근길 한강대교,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아크릴릭 과슈, 130.5 × 130.5 cm

제 작업 중에 ‘너에게 물으면 답을 알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논을 그린 회화 작업이 있습니다.

이번 전시 제목도 그 작업에서 가져왔습니다.

어린 벼가 자라 짙은 초록이 되고, 또 황금빛 벼가 되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곤 했습니다.

저에게는 참 아름다운 경치이자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게 됐고, 그 과정에서 이 제목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 그동안 인물을 중심으로 한 작업을 보여주셨다면, 이번에는 풍경이 한층 더 앞에 나서는 듯합니다. 작가님 안에서 이런 변화는 어떻게 시작됐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지난 개인전이 얼굴에 집중하는 시간이었다면, 이번에는 인물을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며 배경과 함께 어우러지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둥글둥글한 사람들 너머로 펼쳐지는 넓은 풍경을 그리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그런데 풍경을 그리다 보니, 그 안에도 결국 얼굴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풍경 속에 저의 이야기를 함께 넣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 어떤 풍경 앞에서 ‘이건 꼭 그려봐야겠다’는 마음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에게 오래 남는 장면은 주로 어떤 빛과 시간 속에서 찾아오나요?

이우성, 새벽녘 폭포 아래서, 2025-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아크릴릭 과슈, 130.5 × 162.5 cm

저는 주로 날씨와 햇볕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해가 지는 시간은 일상의 순간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줍니다.

제주도 애월에서 비양도 쪽으로 해가 넘어가던 장면이 떠오르는데요. 그때 구름에 번진 색과 하늘빛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자연의 빛깔을 물감으로 옮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 빛을 최대한 만들어보려 애쓰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에 드는 장면에 가까워질 때가 있습니다.

■ 한 장면을 작업으로 옮길 때 실제 과정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사진으로 기록해둔 뒤 오래 묵혀 두는 시간, 그리고 다시 화면으로 옮기는 순간은 어떻게 이어지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우성, 황금빛 가을과 꿈꾸는 선생님,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아크릴릭 과슈, 130.5 × 130.5 cm

일상 속에서든 여행지에서든 ‘언젠가 나의 작업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찍어둔 사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기록해둔 뒤에는 시간을 두고 오래 생각합니다. 어떤 자료는 2013년에 찍은 사진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장면들의 의미가 현재의 저에게 비로소 와닿을 때, ‘이제는 그릴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면 비로소 작업으로 옮깁니다.

말하자면 저에게는 일종의 ‘묵혀두는 시간’인 셈입니다.

그렇게 걸러진 장면들을 배경으로 삼고, 그 위에 이야기를 전개할 인물들을 배치하면서 화면을 구체화해갑니다.

그 과정에서는 많은 변형과 편집이 함께 이루어집니다.

■ 작품 속 인물들은 단순한 형태인데도 묘하게 강한 표정과 분위기를 남깁니다. 작가님은 이런 얼굴과 형상을 어떤 감각으로 만들어가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우성, 이제 곧 행진 시작합니다,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아크릴릭 과슈, 130.5 × 162.5 cm

이번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둥근 형태는 ‘지금 작업 중입니다’ 자화상 연작에서 시작했습니다.

제가 느끼는 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손이 가는 대로 그려보다 보니 그 과정에서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끼게 됐습니다.

저에게는 다소 생소한 표현 방식이라 처음에는 우려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그림을 보고 ‘마치 나 같아’라고 말해주시는 경험을 하면서, 이 방식으로 사람을 더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나이도 성별도 특정되지 않는 사람으로 열어두고 그리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대상을 열어두는 방식이 제가 최근에 관심을 두고 있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 풍경 안에 놓인 그 인물들은 작가님에게 어떤 존재인지도 여쭙고 싶습니다. 하나의 이야기 속 주체인지, 혹은 장면의 감정과 분위기를 드러내는 매개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인물들은 자화상에서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그림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이자 그 장면의 감정과 분위기를 드러내는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제가 포착한 풍경 속에서 여행을 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 걸개그림, 캔버스, 사운드처럼 여러 매체를 함께 다뤄오셨는데요. 같은 장면과 감정도 매체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풀어내고 싶어지는지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우성, 종로3가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내가 보일 거야, 2024-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아크릴릭 과슈, 130.5 × 162.5 cm

2021년에 파도치는 바다를 애니메이션으로 작업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피아노 연주 소리와 함께 설치를 했는데, 정지된 화면보다는 실제로 밀려오고 빠져나가는 파도의 물리적인 움직임을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반면 이번에는 멈춰 있는 회화 안에 바다와 강, 계곡과 바람의 움직임을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캔버스 위에 고정돼 있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이 흘러가는 생동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관람객분들께서도 그림 속에서 변하고 흐르는 지점들을 발견하신다면 또 다른 재미를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하 1층 전시장에는 제가 직접 채집한 소리들을 그림과 함께 설치했습니다.

파도와 풀벌레 소리부터 지하철, 제야의 종소리, 기타 연주와 빗소리까지 전시장 안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 소리들이 전시장 안과 밖을 연결하고, 각자의 기억을 환기하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이번 작업을 통해 끝내 남기고 싶었던 풍경이나 마음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정승조의 아트홀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이우성,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 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아크릴릭 과슈, 200 × 200 cm

제 작업은 결국 제 발길이 닿았던 곳들을 되돌아보며 다시 그려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없이 반복하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삶에 윤을 내고 색을 입히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에게 사랑은 이 우주를 움직이는 유일한 힘이자,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업을 통해서는 그 사랑의 시선이 머물렀던 풍경들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전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정승조의 아트홀릭 독자 여러분께서도 마지막까지 이 풍경들을 함께 바라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작가 소개

작가 이우성,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이우성 작가는 홍익대학교 회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졸업했다. 2008년부터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서울시립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3년 OCI 영 크리에이티브 작가로 선정됐다.

(사진 제공 : 갤러리현대)

■ 이우성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

-장소: 갤러리현대

-전시 기간: ~ 2026년 4월 26일

-관람 시간: 화요일~일요일(10:00~18:00) / 매주 월요일 휴관

정승조 아나운서는 CJB청주방송에서 활동하며 문화예술의 가치를 전하는 방송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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