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에서 국무위원장까지…‘명목상 수반’ 끝내고 일극 체제 완성 [김수한의 북한이야기]
김정일, 김일성 탈상 후 주석제 폐지
김영남에 수반직 넘기고 분권 통치
‘영원한 2인자’ 김영남, 21년간 천수
김정은, 2019년 개헌후 국가수반 등극
김주애 군사행보 가속, 4대세습 현실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직속 특수작전훈련기지를 방문해 특전대원들의 훈련을 참관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4/ned/20260414143949505yiao.jpg)
북한의 국가 수반은 김일성 주석이었다. 혼란이 온 것은 김 주석이 1994년 7월 8일 사망하고 김정일이 주석직을 승계하지 않으면서다.
소련이 붕괴하고 동구권의 공산주의가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가운데 북한은 내부적으로 경제난 속 대기근이라는 최고의 악재를 겪었다. ‘고난의 행군’으로 규정되는 약 5년(1995~2000년)간 적어도 40만명 이상, 많게는 350만명가량이 굶어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일은 이른바 ‘김일성의 유언대로 통치한다’는 뜻의 유훈 통치에 나선 시기, 안팎에서 체제 붕괴의 위기를 겪은 셈이다. 그는 여차하면 발생할지 모르는 무력투쟁에 대비, 군권 장악을 최우선으로 추구했다.
김정일은 앞서 1980년 조선로동당 6차 당대회에서 공식 후계자로 인정되었고, 1991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도 오른 터라 거리낄 게 없었지만, 엄혹한 안팎의 사정을 고려하고 3년상이라는 유교적 예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정상적 국가체계 운영을 유보했다.
김정일은 1993년 4월부터 이미 맡고 있었던 국방위원장 직함으로 국가를 통치했다. 국가 비상 사태에는 강력한 군권 장악만으로 충분했다. 김일성 사망 3년이 지난 1997년 7월 8일, 탈상을 선언했지만 주석직엔 여전히 오르지 않았다. 다만 행정·입법부를 영도하는 북한 최고 서열 기관인 조선로동당의 1인자, 당 총비서에 올랐을 뿐이다.
그리고 1년 후(1998년 9월 5일) 우리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해 주석제를 폐지했다. 주석의 권력은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등으로 분산시켰다. 이로써 1972년 12월 사회주의헌법 채택으로 시작된 북한의 주석제는 공식 폐지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1월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회관을 찾아 조문하는 모습. [연합]](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4/ned/20260414143951066jsvy.png)
김일성 사후 ‘주석제’ 폐지한 김정일…국가 수반도 넘겨
그런데 여기서 김정일은 한술 더 뜬다. 공식적인 국가 수반직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로 넘겼다. 그리고 상임위원장을 자신이 맡지 않았다. 충성심이 검증된 관료 출신 김영남을 임명했다.
기존 사회주의헌법 90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은 공화국을 대표하며, 국가의 최고직책을 가진다’는 개정 헌법 100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대표하는 국가의 최고주권기관은 최고인민회의이며, 그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공화국을 대표한다’로 고쳐졌다.
명목상 국가 수반은 맡지 않으면서 실질적 권한은 움켜쥐고 있는 특이한 통치 형태였다.
헌법상 김영남은 이원집정부제의 명목상 지도자인 ‘대통령’, 김정일은 실권을 가진 이원집정부제의 ‘총리’에 비견됐다. 이런 특이한 체제는 국가 비상 시기에 적합한 효율을 이끌어냈다.
국가 정상이 마땅히 가야 할 각종 국제회의나 외국 정상과의 회담 자리에 김정일이 굳이 가지 않아도 될 명분이 되었다. 꼭 필요한 경우 김정일이 선택적으로 나가도 되었다. 되돌아 보자면 누가 봐도 김정일의 편의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만큼 김정일이 체제 안정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는 방증도 된다.
1928년 평양 출생인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김일성대를 졸업하고 소련 모스크바대 외교학과에서 유학한 엘리트 관료였다. 6.25 전쟁을 소련에서 유학 중 겪고 1953년 귀국해 노동당 국제부에 배치된 후 순탄한 엘리트 관료의 길을 걷는다. 외무성 부상, 당 국제부장, 당 국제담당 비서, 정무원 부총리 겸 외교부장 등 각종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영남의 명목상 국가 수반직 임기는 사실상 종신직에 가까웠다. 1998년 맡은 상임위원장은 2019년까지 21년간 이어졌다. 외국 대사들의 신임장은 김정일이 아닌 김영남 명의로 발행되었고, 국가간 정상회담에도 김영남이 나섰다. 전문 외교관 출신으로 러시아어, 중국어는 물론, 영어와 독일어에 능통해 국제업무나 정상회담에 최적화된 인물이었다.
이러한 체제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 건 국가 수반 상임위원장제 도입 10년여 후다. 김정일은 2009년 4월 헌법 개정에서 국방위원장을 ‘공화국의 최고 직책’, ‘국가의 모든 무력의 최고사령관’ 등으로 격상시키며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명목상의 국가 수반은 김영남 상임위원장으로 유지했다.
1998년부터 2019년까지 21년간 국가 수반은 김영남
한마디로, 김영남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상임위원장 자리에 체질적으로 잘 맞는 ‘영원한 2인자’였다. 북한 권부에서 보기 드물게 세습된 정권마다 중용되며 정치적 좌천을 겪지 않았다. 김영남은 1978년부터 2019년까지 41년간 정치국 위원을 지냈는데, 이는 1974년부터 2011년까지 37년간 정치국 위원을 지낸 김정일보다 더 오랜 기간이다.
김영남이 이렇게 장기간 북한의 명목상 국가 수반에 머무를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인간 유형이 타고난 모범적 관료형 인간형이었기 때문이다.
탈북한 북한 고위 인사 등에 따르면 그는 교과서적으로 행동하고, 상부 명령은 어떤 내용이든 철저히 따르는 유형으로 전해진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상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처세의 달인이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90세의 나이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온 김 상임위원장은 명목상 자신의 의전서열이 가장 높았지만,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에게 상석을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2019년 상임위원장에서 물러나 지난해 11월 사망할 때까지 국가 원로로 존중받았다. 공식석상에서 마지막으로 관측된 건 퇴임 후 5년이 지난 202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30주기 추모식 때였다. 96세라는 고령에도 다른 은퇴한 원로들과 행사에 초청돼 꼿꼿이 선 모습이 관측됐고, 음악회 참석을 위해 이동할 때는 지팡이를 들었고 주변에서 부축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3일 김 상임위원장이 사망하자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최대의 예우를 갖춰 그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통신은 “우리 당과 국가의 강화 발전사에 특출한 공적을 남긴 노세대 혁명가인 김영남 동지가 3일 12시 97세를 일기로 고귀한 생을 마쳤다”고 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김영남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회관을 찾아 조문했다. 지난해 6월부터 대장암을 앓았으며, 사인은 암성중독에 의한 다장기부전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국가 수반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공식적으로 바뀐 시기도 김영남의 퇴임과 맞물려 있다.
2019년 4월 11일 열린 최고인민회의(14기 1차)에서 최룡해에게 상임위원장직을 물려주고 은퇴했는데, 그의 나이 91세였다. 은퇴 이유 또한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자신의 건강 문제였다. 공직자로서는 자신의 건강이 다할 때까지 사실상 ‘천수’를 누린 셈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가 야외 사격장에서 저격소총으로 조준 사격하는 모습. [연합]](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4/ned/20260414143951373rftl.jpg)
천수 누린 김영남, 사후에도 국가원로 존중
또한 김 상임위원장의 은퇴를 결정한 최고인민회의가 열린 날, 최고인민회의는 헌법을 개정해 국가 수반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서 국무위원장으로 바꾼다.
2019년 4월 11일 개정된 북한 헌법 100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는 국무위원회 위원장이다’라고 규정했다. 또 101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공화국을 대표하는 최고인민의 지도자이며, 전체 무력의 최고사령관이며, 전체 국가사업을 총괄하는 공화국의 최고대표자이다’라고 다시 한 번 김정은이 국가 수반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김정은은 이때부터 명실공히 북한 최고지도자의 위치에 올라 당 총비서, 최고사령관, 국무위원장 등 당, 군, 정의 모든 권력을 공식 장악했다.
북한은 올해 3월 23일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김정은을 국무위원장으로 재추대하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최룡해에서 조용원으로 교체했다. 2016년 6월 신설된 국무위원장에 올랐던 김정은은 2019년 재추대를 거쳐 6년 만인 올해 3번째 추대됐다. 최룡해나 조용원은 김영남과 같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직에 올랐지만, 김영남이 맡았던 국가 수반으로서의 상임위원장에서 격하된 자리다. 다만 이번에도 상임위원장은 북한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인물이 맡는 자리가 되었다.
국무위원회 인사도 단행해 조용원 상임위원장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에도 올라 2인자 자리를 공고히 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에는 오랫동안 대남 업무를 관장했던 리선권 조선사회민주당 위원장과 당 법무부장을 맡았던 김형식이 뽑혔다. 과거에도 북한의 명목상 야당이자 노동당의 ‘우당’인 조선사회민주당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으로 활동해왔던 만큼, 리선권도 이런 관례에 따라 부위원장직에 선출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헌법개정으로 김정은 국가 수반 올라
과거 북한의 대남업무 주축이었던 리선권이 여전히 권력 최측근으로 머물고 있어 김정은이 남북관계 개선에 여지를 두고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리선권은 2018년 1월 남북 고위급 회담의 북측대표로 판문점에 나왔고, 2월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에 북측 고위급 대표단로 참석했으며, 3월 당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방북했을 때 평양공항에 마중나오는 등 남측 인사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인물이다.
국무위원이었던 김여정은 이번에 국무위원회에서 빠져 현재 맡은 당 총무부장 역할에 집중하게 됐다. 김여정은 앞서 제9차 조선로동당 대회 기간인 2월 23일 장관급인 노동당 부장에 올랐고, 당 총무부장에 보임됐다. 노동당 총무부는 당 총비서의 지시와 당의 방침 등을 당조직에 배포하고 집행 상황을 총괄 관리하는 핵심 조직이다. 앞서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서 ‘김정은의 입’ 역할을 했던 김여정의 역할이 한층 격상된 것이다.
한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월 27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당 주요 간부와 군사 지휘관을 만나 국방과학원이 새로 개발한 신형저격수보총(저격소총)을 수여했다. 김 위원장은 간부들 한 명 한 명에게 무기증서를 직접 수여하고 사격장에서 사격을 함께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자리에는 모두 딸 주애가 동행했다.
북한 매체는 가죽 코트를 입은 주애가 소총을 조준사격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 등 다른 인물 없이 주애만 등장한 사진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9차 당대회 이후 새로운 ‘김정은 시대’ 북한을 이끌어갈 핵심 간부진들의 결속을 다지는 자리에 주애가 참석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사실상 김정은 부녀에 대한 충성 맹세로 연출된 자리다. 국가정보원은 2월 국회 보고에서 김주애에 대해 사실상 후계 내정 단계로 판단된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소총이 ‘개인적으로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자 간부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심의 표시”라며 “동무들이 앞으로도 우리 위업의 승리적 전진을 위해 직책상의 의무를 책임적으로 수행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수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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