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경상남도기록원 공동기획- 기록으로 보는 경남] (16) 천하우락재선거(天下憂樂在選擧)

knnews 2026. 4. 14. 14: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권리는 없었다… 투쟁으로 얻은 투표권

일제강점기 선거

지방세 납부 실적 포함
나이·성별·거주지 제한
조선인 참정권 사실상 배제
해방 후 1952년 정부 수립
최초 지방선거 실시


선거 공정성 강화

부정선거로 촉발된
3·15의거, 4·19혁명 후
1960년 지방자치법 개정
시·도지사 ‘주민직선제’
투표용지 서명제 마련


‘한 표’로 여는 새 역사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30년간 지방선거 중단
1995년 전국 규모 치러져
오는 6월 3일 제9회 지선


보통선거, 평등선거, 직접선거, 비밀선거.

우리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배우는 선거의 기본 원칙이다. 여기에 일반적으로 자유선거의 이념까지 더해, 오늘날 민주주의 선거의 핵심 원칙이 형성됐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과 권리가 처음부터 ‘누구에게나’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부산에서 촬영된 시·읍·면의회 투표장면(1952. 4. 25.)/UN Photo JD/

부산에서 촬영된 시·읍·면의회 투표장면(1952. 4. 25.)/UN Photo JD/
제1회 경남도(창원 북면) 지방선거(1991. 6. 20. 양해광기증기록물)./경남기록원/

제1회 경남도(창원 북면) 지방선거(1991. 6. 20. 양해광기증기록물)./경남기록원/

여성의 선거권은 1893년 뉴질랜드에서 세계 최초로 인정됐고, 미국에서는 1920년, 영국에서는 1928년에 이르러서야 남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보장됐다. 미국의 흑인 남성은 1870년 미국 수정헌법 제15조를 통해 법적으로 참정권이 보장됐지만, 문해시험·인두세 등 각종 차별적 장치로 인해 실제 행사에는 큰 제약이 있었다. 이러한 제한은 1965년 투표권법 제정 이후에야 비로소 해소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선거권은 처음부터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오랜 사회적 투쟁과 제도 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확대된 권리였다.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첫 지방선거에 대한 정보와 투표를 권유하는 미국 정보원 안내판을 보고 있다. (1952. 4. 1.) /UN Photo / JD/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첫 지방선거에 대한 정보와 투표를 권유하는 미국 정보원 안내판을 보고 있다. (1952. 4. 1.) /UN Photo / JD/

물론 우리나라에도 선거권 배제의 역사가 있다. 다만 이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제도라는 점에서, 이를 곧바로 대한민국 지방선거의 역사와 연결하는 데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1931년 지방제도 개정 이후 도·부·읍회가 설치됐고, 부회·읍회·면협의회원은 제한된 선거권을 가진 주민의 직선으로 선출됐다. 도회의원의 경우 정수의 3분의 2는 부·읍회의원 및 면협의회원이 참여하는 간접선거로, 나머지 3분의 1은 도지사의 임명으로 충원됐다. 당시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25세 이상의 남자로서 독립된 생계를 유지하고 1년 이상 해당 지역에 거주하며, 일정액 이상의 지방세(부세·읍세·면세 연액 5원 이상)를 납부한 자에 한정됐다. 식민지 지배하에서 부세 5원 이상을 납부할 수 있는 조선인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으므로, 실질적으로 지방선거에서 배제됐다고 볼 수 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미군정기를 거치며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도입했다.
제1회 동시지방선거(1995,6,12, 양해광기증기록물)/경상남도기록원 소장/

제1회 동시지방선거(1995,6,12, 양해광기증기록물)/경상남도기록원 소장/
1946년 11월 15일, 미군정 법령 제126호 ‘도 및 기타 지방의 관공리, 회의원의 선거’가 공포됐다. 대상은 도지사, 부윤, 군수 등이었고, 선거권자는 남녀 구분이 없는 보통선거에 의해 결정됐다. 이후 1948년 ‘지방행정에 관한 임시 조처법’이 제정돼 읍장·면장을 선거로 선출하도록 규정했으나, 구체적인 시행령이 마련되지 않아 실제 선거가 실시되지는 못했다.
의회 선거운동(1991년 3월, 양해광기증기록물). /경상남도기록원 소장/

의회 선거운동(1991년 3월, 양해광기증기록물). /경상남도기록원 소장/
1949년 제정된 ‘지방자치법’은 지방선거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당초 1950년 지방선거 실시가 예정됐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연기됐고, 이후 1952년 4월 25일 시·읍·면의회의원 선거가 실시되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지방선거가 이루어졌다. 특이한 점은 당시 후보자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고, 선거운동과 관련된 법적 제약이 오늘날보다 훨씬 약했다는 점이다. 이후 5월 10일 최초의 도의회의원 선거가 연이어 실시됐고, 1952년 5월 20일 6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경상남도의회 첫 회의가 열려 의장은 진주의 김용진 의원을, 부의장은 부산의 박수형 의원을 무기명 투표로 선출했다. 이어 1956년에 제2회 시·읍·면의회의원 및 시장 선거, 시·도의회의원 선거가 차례로 치러졌다.
도의회의원선거관할구역도(마산시, 1960년)./경상남도기록원 소장/

도의회의원선거관할구역도(마산시, 1960년)./경상남도기록원 소장/
1960년 부정선거로 인해 촉발된 3·15의거, 4·19 혁명 이후 11월 1일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12월에 네 차례에 걸쳐 지방선거가 연이어 실시됐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임명제였던 시·도지사도 이때 처음으로 주민 직선제로 했고, 경남도에서는 양산 출신 이기주가 최초의 민선 도지사(1960. 12. 29~1961. 5. 23)가 됐다. 또한 부정선거 방지를 위해 투표용지에 선거관리위원이 서명(가인)하는 제도가 도입되는 등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가 강화됐다.
경남도의 예산 및 업무추진, 도의회 정보 및 도내 각종안내 사항을 소개한 기관지(경남공론)(1953~1956)/경상남도기록원 소장/

경남도의 예산 및 업무추진, 도의회 정보 및 도내 각종안내 사항을 소개한 기관지(경남공론)(1953~1956)/경상남도기록원 소장/

그러나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 이후 지방자치는 사실상 폐지됐고, 지방선거는 1991년까지 약 30년간 중단됐다. 이후 1990년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지방자치가 부활했고, 1991년 지방의회의원 선거가 실시됐다. 이어 1995년 6월 27일에는 시·도지사, 시·군·구의 장, 시·도의회의원, 시·군·구의회의원을 동시에 선출하는 전국 규모의 지방선거가 처음으로 시행됐다. 이는 ‘공직선거 및 선거 부정 방지법’에 근거한 최초의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오늘날 지방선거 제도의 출발점이 됐다. 이후 2022년까지 총 8회의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됐으며, 2026년 6월 3일 제9회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많은 서구 국가에서 19세기 이후 지방선거가 점진적으로 확대·발전하며 선거권과 지방자치의 기본권을 조금씩 넓혀 온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민주적인 선거제도가 일시 도입됐다가 장기간의 중단과 급격한 재도입을 반복해 왔다.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는 여러 정치적 사건과 밀접히 연관돼 있으며, 이는 한국 지방선거 제도의 두드러진 역사적 특성 가운데 하나로 지적된다.
경남도 도회 의원 선거 5월 10일 시행 결정(부산일보, 1933, 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경남도 도회 의원 선거 5월 10일 시행 결정(부산일보, 1933, 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천하우락재선거(天下憂樂在選擧)’. 조선 후기 실학자 최한기(崔漢綺, 1803~1877)가 쓴 ‘인정(人政)’의 ‘선인문편(選人門篇)’에 나오는 구절로, 어진 사람을 올바르게 뽑아 바른 정치를 하면 백성이 평안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온 세상이 근심과 고통 속에 빠진다는 뜻이다. 인사가 곧 만사(人事가 곧 萬事) 라는 말처럼, 선거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이다. 다가오는 6월 3일, 우리는 모두 ‘인사권자’의 마음으로 한 표를 행사하며, 다시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 것이다.

전가희 기록연구사

Copyright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