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데리러 오세요”…가자지구 6살 힌드의 목소리, 영화로 한국에 닿다

전지현 기자 2026. 4. 1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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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힌드의 목소리> 속 6세 소녀 ‘힌드’의 사진. 영화에 사용된 이 사진은 실제 힌드의 사진이다. 찬란 제공

영화의 시작. 검정 배경 위 들쭉날쭉한 청록색빛 그래프는 음파를 표현한 것 같기도, 심장박동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 가냘픈 선들 위로 문구가 떠오른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며 긴급 통화 내용은 실제 그날 녹음본이다.”

‘그날’은 2024년 1월29일이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에 진입하며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6세 소녀 힌드도 삼촌네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피난했다. 쏟아지는 총격에 차는 멈춰 섰다. 힌드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사망했다. 이들의 마지막 연락을 받은 독일의 한 가족은 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S·이슬람권의 적십자사)에 상황을 알렸다. 차량 뒤편, 죽은 가족들 사이에 남겨진 힌드와 적신월사 직원들 간의 통화는 그날 오후 2시35분에 시작됐다.

<힌드의 목소리>의 적신월사 직원들이 힌드와 통화를 하고 있다. 찬란 제공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이 실제 통화의 시작과 끝을 재연한다. 이때 카메라는 힌드의 곁에 있지 않다. 가자지구에서 83㎞ 떨어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의 적신월사 사무실만을 비춘다. 실제 힌드와 5시간에 걸쳐 통화했던 직원들, 오마르(모타즈 말히즈)·라나(사자 킬라니)·마흐디(아메르 흐헬)·니스린(클라라 코우리)을 팔레스타인 출신 배우들이 연기한다.

힌드를 연기한 이는 따로 없다. 힌드가 말할 차례에 스크린에는 청록색을 띤 그래프가 다시 요동친다. 동시에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탱크가 바로 옆에 있어요. 우리에게 총을 쏘고 있어요. 옆에 아무도 없어요. 데리러 오세요.” 애원하는 목소리는 2024년 1월29일 녹음된 원본이다. 둔탁한 총성도 그대로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힌드의 실제 목소리를 그대로 사용했다. 유튜브 티저 영상 갈무리

전쟁은 동화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감동의 생환기가 아니다. 그날 힌드는 장장 5시간가량을 기다렸고, 데리러 오라며 울먹였고, 끝내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현장에서 죽었다. 힌드와 친척들이 탄 차는 전화 통화로부터 12일 후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후에야 발견됐다. 차량은 총탄 355발을 맞아 누더기가 된 채였다.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은 힌드와 적신월사 직원들 사이 통화가 녹음된 70여 분의 기록을 듣고, 이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감독은 실제 아이의 목소리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이 비극이 실제로 벌어졌음을 영화 내내 상기시킨다.

<힌드의 목소리>의 마흐디(왼쪽)와 오마르. 찬란 제공

당시 가자지구 북부의 구조대는 힌드가 있던 차량으로부터 불과 8분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적십자사를 통해 이스라엘군과 ‘안전 경로’를 협의하지 않고 움직이면, 구조대원들도 위험에 처할 수 있기에 이들은 옴짝달싹을 못했다. 재연된 상황에서 “아이를 당장 구하러 가야 한다”는 오마르와 “더는 동료를 잃을 수 없다”는 마흐디는 시간이 흐를수록 격렬하게 부딪힌다.

89분의 러닝타임 동안 힌드는 몇 번이고 “와달라”고 말한다. 관객은 적신월사처럼 무력하다. “아가, 좋아하는 색깔이 뭐니?” “함께 쿠란(이슬람 경전)을 암송해볼까?” 직원들은 힌드의 신경을 분산시키며 아이를 달래다가도, 스스로 무너져 흐느낀다. 그 고통을 함께한 관객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전쟁은 과연 누굴 위한 것인가’. 힌드는 얼른 전쟁이 끝나 좋아하던 가자지구 해변에서 뛰놀고 싶어했다고 한다. 왜 아이는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총성 속에 생을 마감해야 했나.

<힌드의 목소리>는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배우 호아킨 피닉스와 루니 마라, 알폰소 쿠아론 감독,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이 총괄 제작을 맡았다. 국내에서는 찬란이 수입하고, 배우 소지섭 등이 공동 제공으로 뜻을 함께했다. 소지섭은 배두나, 이주영과 함께 예고편 내레이션에도 참여했다. 힌드가 세상을 떠난 1월29일을 기리는 의미에서 유료 관람객 1인당 129원이 적신월사에 기부된다. 15일 개봉.


☞ “힌드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소지섭·배두나 목소리를 보탭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3252203001#ENT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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