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금의 뿌리⑥] 한 경찰의 카톡...악랄한 추심, 이번엔 뿌리 뽑힐까

김효인 기자 2026. 4. 1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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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먼저 찾는 경찰...불법 계약 무효로 돌리는 금융당국
신복위 원스톱 체계와 기관 공조 가동...관건은 현장 실행력
전문가 “단속만으론 부족...양지의 금융 흡수력까지 높여야”

지난 수십여년 간 불법사금융은 죽지 않았다. 다만 늘 새 얼굴을 골라 살아남았을 뿐이다. 전단지와 명함 탈을 쓴 불법사금융은 문자와 인터넷 광고를 거쳐, 이제 메신저와 익명 계정의 얼굴로 숨어들었다. 시장은 바뀌었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제도권 금융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절박함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가장 비싼 값으로 거래한다는 점이다.

지금 정부는 불법사금융과의 전면전에 나서고 있다. 범정부 TF를 꾸리고, 수사·금융·통신 당국과 지자체까지 묶어 계좌 차단, 원스톱 피해구제, 채무자대리인 지원, 예방대출 확대를 동시에 밀어붙이고 있다. 말 그대로 선언의 단계를 넘어 제도가 실제 현장에 닿을 수 있느냐를 가르는 과도기의 초입에 서 있다.

본보는 <불사금의 뿌리> 기획을 통해 한국 불법사금융의 뿌리와 변신, 피해자들이 그 문 앞까지 밀려나는 구조, 그 주변에 붙어 자란 또 다른 시장, 그리고 국가의 대응이 어디까지 닿고 있는지를 차례로 추적한다. 아울러 불법사금융은 왜 시들지 않았는지, 이번 전면전이 과연 시장의 뿌리까지 흔들 수 있을지 묻는다.
실제 영등포 경찰서에서 발송된 안내 카톡. 연예인이나 범죄자의 이름을 차용하는 등 가명의 흔적이 드러난다 [사진=제보자 제공]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어느 날, 불법사금융 피해자 A씨의 카카오톡에 낯선 메시지 하나가 들어왔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수사관이라고 밝힌 상대는 A씨가 돈을 보냈던 가명과 대포계좌를 적어 보내며 피해 진술을 요청했다. 

낯선 번호라면 몸서리부터 치던 A씨는 처음엔 이것마저 사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메시지 속 계좌번호는 분명 자신이 절망 속에서 돈을 부쳐 왔던 그 계좌였다. 불법사금융 시장이 독버섯처럼 번지던 자리에, 이번엔 국가가 먼저 발을 들이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피해자가 숨기 전, 경찰이 먼저 찾아왔다

이번 대응이 이전과 다르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단순히 단속 수위를 높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사와 구제, 법률지원과 채무조정이 이전보다 훨씬 더 촘촘하게 맞물리기 시작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간 불법사금융 피해자들은 금융감독원에 신고하고, 경찰에 진술하고, 법률구조공단이나 채무조정 창구를 별도로 찾아야 했다. 이미 추심에 시달리던 이들에게 이 절차 자체가 또 하나의 장벽이었다. 신고 전에는 두려움에 막히고, 신고 후에는 복잡한 절차에 지치는 일이 반복됐다.

새롭게 가동되는 원스톱 체계는 이 흐름을 바꾸려는 시도다. 신용회복위원회 전담자가 초기 상담과 자료 정리를 맡고, 이를 토대로 금감원·경찰·대한법률구조공단 등이 각자의 기능을 이어받는 구조다. 피해자가 여러 기관을 전전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기관이 한 사람의 사건을 중심으로 결합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경찰의 선제 접촉까지 더해지며 수사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특히 텔레그램이나 SNS를 통해 불법사금융에 노출된 청년층에게 이 변화는 더 직접적이다.

이들은 신고 자체를 미루거나, 기관의 연락조차 또 다른 사기로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모나 친구, 직장에 채무 사실이 알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도 크다.

이런 점에서 카카오톡을 통한 수사기관의 선제 접촉은 단순한 편의 제공을 넘어, 디지털 피해 양상에 맞춘 대응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불법사금융이 디지털 방식으로 먼저 침투했다면, 국가 역시 디지털 방식으로 먼저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반사회적 불법 대부계약에 대한 무효 확인서 [자료=금융감독원]

"갚지 않아도 된다"…국가가 '불법의 돈줄'에 선을 긋다

이번 대응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치는 금감원장 명의의 반사회적 대부계약 무효확인서다.

그동안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불법 계약에 따른 채무는 갚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있었지만, 상담 과정의 설명과 국가 명의의 공식 문서는 무게가 다르다. 이제 피해자는 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이 계약은 무효"라고 공식 확인한 상태에서 대응할 수 있게 됐다.

법적 배경도 분명하다. 지난해 개정된 대부업법과 시행령은 반사회적 대부계약의 효력을 무효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연 60%를 초과하는 초고금리 계약에 대해서는 원금과 이자 전체를 무효로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했다. 최고금리 초과분만 문제 삼던 기존 방식에서, 계약 자체를 무효로 보는 단계로 제도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법률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불법사금융은 공포를 자산으로 삼는 시장이다.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무너지면 법적 정당성은 현실에서 힘을 잃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무효확인서는 법적 장치이면서 동시에 심리적 방패이기도 하다"며 "국가가 공식 문서로 계약 자체를 부인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번 대응은 불법사금융의 수익 구조와 심리 구조를 동시에 흔들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불법대부조직 주거지에서 발견된 각종 호화품 [자료=영등포 경찰서]

대포폰·텔레그램·고층 아파트…불법사금융은 이미 조직범죄가 됐다

지난해 불법사금융 피해 신고는 1만7538건으로 집계됐다. 다만 이는 단속 강화로 수면 위로 드러난 '가시화된 수치'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수사 실적도 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 인원은 3420명으로 전년보다 58% 증가했고, 범죄수익 환수액도 187억원에서 309억원으로 확대됐다. 다만 전체 신고 대비 수사 의뢰 비율은 여전히 3.3% 수준에 머물러, 시장 확산 속도를 완전히 따라잡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실제 최근 적발 사례를 보면 불법사금융은 이미 개인 범행을 넘어 조직형 범죄로 옮겨가고 있다. 총책과 실무진이 역할을 나누고, 대포폰과 텔레그램, SNS를 활용해 대출·추심·자금세탁을 분업화하는 식이다. 외부 노출을 피하기 위해 고층 아파트를 사무실처럼 옮겨 다니고, 수익금은 대포계좌를 거쳐 현금화하는 구조도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경찰이 불법대부업체 사무실에서 명품 가방과 고가 시계 등을 압수한 점도 이런 범죄의 실체를 보여준다. 취약차주의 절박함을 파고들어 거둬들인 수익이 조직의 사치와 호화 생활로 흘러 들어간다는 점에서다.

추심 수법 또한 잔혹해졌다. 대출 과정에서 확보한 사진, 연락처, 신분증 자료를 바탕으로 채무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과 지인에게까지 압박을 가하고, 허위사실 유포나 협박성 메시지로 상환을 몰아붙이는 방식이다. 단순한 연체 독촉을 넘어 관계망 전체를 겨냥한 심리적 압박이 범죄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는 셈이다.

일부 조직을 검거했다고 해서 시장 전체가 꺾였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법사금융은 플랫폼을 옮기고, 광고 문구를 바꾸고, 위장 등록업체를 앞세우며 계속 형태를 바꿔왔다. 검거가 시작됐다는 사실과 시장 근절 가능성을 동일선상에 놓기 어려운 이유다.
조직화된 불법 대부조직도 [자료=영등포경찰서]

제도보다 중요한 건 '끊기지 않는 작동'

원스톱 전담지원센터의 필요성을 정책 준비 단계부터 꾸준히 제기해온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이상민 교수는 제도의 '운영 밀도'를 강조한다.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제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끊기지 않고 작동하느냐는 점이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텔레그램·SNS 기반 피해를 입은 청년층은 관계 노출과 신분 노출을 두려워해 제도 문턱 앞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다"며 "식당 노동자나 일용직, 택시기사처럼 생업에 매인 사람들은 상담을 받기 위해 하루 일당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피해 양상은 달라도 결론은 같다. 누군가에게는 생업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관계 노출에 대한 두려움이 장벽이 되지만, 많은 피해자들이 제도에 닿기 전에 먼저 지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 교수는 첫 상담자의 역할을 특히 중요하게 본다. 피해자의 공포를 정확히 읽고, 필요한 자료를 짚어주며, 이후에도 같은 담당자가 연결돼야 비로소 신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상담이 지연되고 피해자가 체감할 수 있는 조치가 늦어지면, 원스톱 체계 역시 금세 형식적 장치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관계자 역시 비슷한 취지의 설명을 내놨다. 이 관계자는 "채무자대리인 선임과 법률지원 기능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기관별로 흩어져 작동하다 보니 체감 효과는 제한적이었다"며 "이번처럼 각 기관이 공조하면 효과는 분명 더 커질 수 있지만, 결국 현장에서 끊기지 않고 이어져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진단은 결국 한 지점으로 모인다. 원스톱이라는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상담에서 수사, 법률지원, 채무조정까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실제 작동력이다. 이번 대응의 성패는 '좋은 제도를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제도를 얼마나 끊김없이 굴리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잡아도 다시 살아난다…불법사금융을 키우는 건 '막힌 대출문'

그렇다고 운영 문제만 풀린다고 시장이 저절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불법사금융이 반복해서 되살아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난 취약차주의 수요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성대 경제학과 김상봉 교수는 "합법 대부업과 불법사금융, 매입채권 관련 영역이 현행 법 체계 안에서 혼재돼 있어 소비자가 경계를 혼동하기 쉽다"며 "대부업을 생활금융 관점에서 재정비하고, 불법사금융과는 제도적으로 보다 분명하게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명칭 정리의 문제가 아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흐리면 광고와 접근 방식만으로도 소비자가 오인할 가능성이 커지고, 그만큼 불법사금융은 합법의 외피를 두르기 쉬워진다. 시장을 줄이려면 단속뿐 아니라 제도 인식 자체를 정리하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취약차주의 자금 수요를 제도권이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는 구조가 불법사금융의 토양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최철 교수는 정책금융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민간 대부시장 역시 제도권 안에서 정상 기능을 해야 한다고 봤다.

최 교수는 "은행에서 밀린 저신용 차주가 최소한 합법적 생활금융이나 정책금융 안에서는 자금을 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통로가 지나치게 좁아지면 결국 음지 수요만 더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용섭 전 서민금융연구원 원장도 비슷한 현실론을 제시했다. 그는 "불법사금융에 대한 엄정 대응과 별개로, 합법 등록대부업의 지속 가능성도 함께 봐야 한다"며 "등록대부업까지 위축되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수요가 다시 불법사금융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단일 기관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수사·감독기관을 포괄하는 상시적 TF형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물론 정부도 정책서민금융과 채무조정 제도를 통해 취약차주 보호에 나서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제도권이 불법사금융 수요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급의 양뿐 아니라 접근성과 현장 체감도까지 함께 점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결국 세 사람의 문제의식은 결이 조금씩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더 분명히 하고, 취약차주의 자금 수요를 양지에서 흡수할 통로를 넓히며, 이를 단일 기관이 아닌 상시 대응체계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엔 정말 다를까…승부는 발표가 아니라 '현장'

이번에 정부는 이전보다 훨씬 입체적인 대응 수단을 꺼내 들었다. 경찰의 선제 발굴, 원스톱 지원체계, 금감원장 명의 무효확인서, 대부협회와의 실무 협력까지, 대응 방식은 확실히 달라졌다.

적어도 이번에는 "제도는 만들었지만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오랜 비판을 의식한 흔적이 분명하다. 

다만 진짜 시험대는 지금부터다. 전담 인력이 버텨야 하고, 초동 조치가 빨라야 하며, 기관 간 공조가 끊기지 않아야 한다. 동시에 취약차주가 불법시장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정책금융과 합법적 생활금융의 흡수력도 함께 키워야 한다. 단편적인 수사와 정책금융만으로 불법사금융은 꺾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장은 이미 오랜 시간 증명해왔기 때문이다.

불법사금융 피해에 노출된 경우 금융감독원(☎1332)에 신고하여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과다채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 서민금융진흥원(☎1397) 또는 신용회복위원회(☎1600-5500)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연이율 60% 초과 대부계약은 원금과 이자 모두 무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