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산유국, ‘한국 비축기지’ 러브콜…정부 “협의 요청 잇따라”

강주리 2026. 4. 1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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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해협 밖에 두면 리스크 감소 판단”

“UAE 등 산유국 韓석유비축기지 고려”
비축유 104만 배럴 추가 구입…1554억원
비축기지 유지보수·시설확충 30억원 투자
비축유 방출 6월 9일 이전… 4~5월 아냐
에틸렌 등 이번 주 석화 원료 긴급수급조정
“보건·핵심산업 소재 수급·공급 차질 없다”
체감 괴리 지적에 “수급 필요 시 우선 공급”

한국석유공사 서산 비축기지 전경. 한국석유공사 제공

미국과 이란 전쟁 속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중동 산유국들이 우리나라의 석유 비축기지를 활용하기 위해 우리 정부와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원유를 호르무즈 해협 밖에 보관하면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게 돼 유사 시 지정학적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14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우리나라 석유 비축기지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나라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특히 중동 쪽에서 동북아 비축기지 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호르무즈라는 좁은 해협에 전 세계 원유 등 물동량이 집중되어 있는 위험성을 분산시키겠다는 게 중동 산유국들의 판단이라고 산업부는 설명했다.

양 실장은 “중동 국가들도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우리나라 이상으로 타격을 받는다”며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은 원유 수출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 선박들의 대체 항로로 거론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얀부항에서는 하루 500만 배럴의 물량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평소에는 200만 배럴이 나오는 곳인데 설비 개선을 통해 700만 배럴로 용량을 키웠다고 한다. 한국으로 오는 선박은 아직 없다. 지난해 한국의 하루 원유 사용량이 255만 배럴인 점을 감안하면 2배 정도 되는 물량이 얀부항을 통해 나오는 셈이다.

UAE 원유 200만 배럴 한국석유공사 여수 비축기지 입고 - 한국석유공사는 25일 UAE 아부다비 국영석유사(ADNOC) 와의 국제공동비축 사업으로 확보한 원유 200만 배럴을 공사 여수 석유비축기지에 입고 중이라고 밝혔다. 2023년 3월 21일 한국석유공사 여수비축기지에 UAE 아부다비 국영석유사(ADNOC)의 원유 200만 배럴리 입고되는 모습. 한국석유공사 제공

그는 이어 “산유국들 입장에서는 원유를 해협 밖에 미리 두고 나중에 팔 수 있다면 리스크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다”며 “특히 동북아 비축기지를 활용하는 데 대해 관심이 많고 (우리 측에도) 협의를 요청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미 우리나라와 국제공동비축사업 계약을 맺은 UAE 아부다비 국영석유사(ADNOC) 외에도 중동의 다른 산유국들도 한국을 ‘역외 석유 비축기지’로 검토하며 접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양 실장은 “이미 알려진 UAE 외에 다른 나라가 더 있다고만 말씀드리겠다”며 구체적인 국가명은 적절한 시점에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호르무즈를 통과한 석유는 일평균 약 2000만 배럴로 세계 해상 거래 석유의 25%에 달한다. 액화천연가스(LNG)는 약 1120억㎥가 통과해 세계 LNG 거래의 약 20%를 차지한다.

이재명 대통령, 석유 비축기지 현장점검 -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충남 서산 석유공사 비축기지에서 현장점검을 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2022년 노드스트림 폭파, 2023년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공격에 이어 이번 중동 전쟁으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까지 국지적 공격만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경색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수에즈·바브엘만데브·호르무즈 세 개의 해상물류요충지가 중동에 밀집돼 있고 하나의 분쟁이 복수의 병목을 동시 위협한다”며 “한국의 경우 원유 수입의 70%를 호르무즈를 경유하는 구조적 위험에 처해 있다”고 글로벌 물류 경로 재편의 필요성을 제언한 바 있다.

국제공동비축사업은 산유국 등 해외 기업의 석유를 한국석유공사의 유휴 비축시설에 보관해 주고 임대료 이익을 얻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특히 수급 위기 발생 시 우리 정부가 해당 물량을 먼저 살 수 있는 우선 구매권을 확보함으로써 국내 석유 수급을 안정시키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양 실장은 이런 국제공동비축사업이 국내 에너지 안보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비록 우리 비축량으로 잡혀 있지는 않지만, 그들 물건이라도 우리 마당에 들어와 있고 국내 정유사들이 그 수요를 가지고 있어 실질적으로 국내 비축량이 확대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부, 중동전쟁 대응본부 일일 브리핑 -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이 지난달 3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기자실에서 중동전쟁 관련 국내 석유·가스 가격 동향, 주요 업종 영향 및 대응 등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부 제공

실제로 이번 대체 원유 물량 확보 과정에서도 이러한 국제공동비축사업이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 실장은 “대체 물량 확보 과정에서 일방적인 요청만 하기는 어렵다”며 “대화 과정에서 우리 기지 활용이 언급되며 협상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비축유 방출 시점에 대해서는 4~5월이 아닌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보고한 6월 9일까지 대체 물량 도입 상황과 비축유 스와프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적정 시점에 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산업부는 이번 자원안보와 공급망 안정화 추가경정예산에서 확보한 예산특별회계 1908억원을 비축유 관리에 대폭 투자할 계획이다.

비축유 104만 배럴을 추가 구입하기 위해 1554억원을 사용하고 30억원을 들여 비축기지 유지 보수와 시설 확충 설계를 할 예정이다. 기존 비축 기지 1억 4000만 배럴 용량에서 2000만 배럴을 더 늘리는 것으로 추경에서 결정됐다고 양 실장은 전했다.

그는 “한국석유공사가 해외 원유를 확보하더라도 비축 예산이 없어서 국내에 들여오려면 국내 기업과 매칭이 끝나야 들여올 수 있다”며 “정유사랑 매칭해 수요가 확인된 경우만 들어올 수 있어 대체 물량을 둘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기름값 상승폭 둔화 - 12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게시돼 있다. 이날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오전 9시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윳값은 리터당 1992.3원으로 전날보다 0.7원 상승, 경유 가격은 1985.8원으로 0.6원 상승해 전국 주유소 평균 유가 상승세가 대폭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시스

“석유화학 원료 매점매석 금지
긴급수급조정 조치 이번 주 시행”

이와 함께 공급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이번 주내 에틸렌,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원료에 대한 매점매석을 금지하고 긴급수급조정 조치를 담은 고시를 발표한다. 에틸렌은 플라스틱·비닐봉투·포장재 등을 만드는 폴리에틸렌의 기초원료다. 프로필렌 역시 마스크필터·가전외장재·자동차내장 등을 만드는 핵심 원료다.

양 실장은 “이번 주 내로 할 것이고 에틸렌,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나프타 분해시설(NCC)에서 나오는 기초 유분단을 관리 대상으로 잡았다”며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등 수백가지를 다 잡지 않은 이유는 다 넣어도 관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관리가능한 범위로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김의중 산업부 제조산업정책관은 이날 수액제 포장재·주사기·의료용 장갑·헬륨·알루미늄휠·황산니켈·에틸렌 가스 등 보건·의료와 반도체·자동차·배터리·조선 등 핵심 산업 소재가 전반적으로 평시 재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체 물량이 수입되고 있는 등 수급에 문제 없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공정에 들어가는 브롬화수소의 경우 일본 46%, 미국 25%, 이스라엘 13% 등 주요 수입국이 일본과 미국이라며 공정에 지장이 없도록 차질 없이 수입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정책관은 정부 발표와 현장 체감 간 괴리에 대해 “민생 관련 품목과 산업계 주력 부품 품목은 꼼꼼하게 매일 모니터링하며 관리하고 있다”며 “특정 기업이나 지표와 다를 수 있지만 많은 업계가 5월 나프타 공급이 잘 안 될까봐 걱정하는데 원료가 확보된다는 말이 있기 때문에 수급에 대한 불안감이 잦아들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급 문제가 발생하면 공급망을 확인해 석유화학산업에 우선 공급할 수 있도록 관리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건, 의료 제품 생산업체 찾은 산업장관 -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3일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주사기, 수액제 포장재를 생산하는 에이디켐테크 공장을 방문,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김 장관은 이날 핵심 산업과 의료용품, 생필품 등 중동 전쟁으로 수급 우려가 있는 품목 생산 현장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정부 추진 현황을 공유했다. 공동취재

세종 강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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