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이 주문한 집단소송 왜 '지지부진'한가 [넘버링+]

이지원 기자 2026. 4. 1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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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연속기획 넘버링+
집단소송: 미뤄선 안 될 논제 1편
쿠팡 사태 후 집단소송 논의 활발
2005년 증권 한정 집단소송 도입
文 정부 입법예고했지만 추진 실패
李 대통령 직접 제도 도입 시사
집단소송 도입 전 논의해야 할 것들
한국에서도 집단소송제도를 본격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사진|뉴시스]
# 하루가 멀다 하고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터집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쇼핑몰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으면서 결제한 금액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도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손해를 배상받기란 쉽지 않습니다. 피해자 개개인이 직접 기업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거기에 투자해야 할 비용과 시간이 부담스럽기 때문이죠.

# 만약 우리나라에도 '집단소송제도'가 있다면 어떨까요? 집단소송제도는 대규모 피해자가 발생했을 경우 대표자가 소송을 진행하고, 그 판결의 효력이 모든 피해자에게 미치는 방식입니다. 배상 규모가 큰 만큼 기업에 실질적인 압박이 될 수 있죠. 만약 개인정보가 유출될 경우 배상해야 할 금액이 막대하다면, 기업으로선 개인정보 보호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밖에 없겠죠.

# 이를 인식한 정부가 집단소송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을 시사했습니다. 다만, 그 전에 살펴볼 점도 숱합니다. 스페셜 '집단소송 : 미뤄선 안 될 논제'를 통해 2005년부터 시행한 '증권 분야 집단소송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부터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필요한 이유까지 살펴봤습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앞으론 이런 걸 위반해서 국민한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한다. 잘못하면 회사 망한다'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합니다…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뭐 어쩔 건데… 전 국민이 피해자인데 소송하면 소송비가 더 들게 생겼는데… (집단소송법) 입법에 속도를 내주시길 바랍니다."

쿠팡에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터진 지 한달쯤 흐른 지난해 12월 개인정보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이 대통령은 피해자들이 실질적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후 법무부 주도로 집단소송제도 추진 플랜을 세우고 있습니다.

3370만건에 달하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집단소송제도가 화두로 떠올랐지만 뒤늦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2011년)'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건(2015년)' '애플 배터리 성능 저하 사건(2016년)' '티메프 사태(2024년)' …. 기업의 과실로 대규모 피해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집단소송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반복돼 왔기 때문이죠.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닙니다. 현행 민사소송법에 따르면 피해자 개개인이 기업에 소송을 제기해야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개인이 기업의 과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고, 소송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부담스러워 실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5971명이 피해자로 인정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경우에도 사건이 터진 지 6년 후에야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를위한특별법'이 제정됐고(2017년), 비로소 피해자들이 구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일부 피해자들이 한국이 아닌 미국 뉴욕 동부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참고: 쿠팡 소송 관련 내용은 더스쿠프 통권 695호ㆍ'韓 소비자가 쿠팡을 美 법정에 세운 까닭'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 선진국 대다수는 도입했는데 = 이런 병폐病弊를 막기 위해 미국ㆍ캐나다ㆍ호주 등 선진국 상당수는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집단소송제도는 다수의 피해자가 동일한 원인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대표자가 소송을 진행하고, 판결의 효력이 모든 피해자에게 미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사진|뉴시스]
특히 미국의 경우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불참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소송에 참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을 채택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소송 참여자가 많을수록 배상 규모도 커지니, 미국 기업으로선 안전이나 개인정보 보호 등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고민성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변호사는 "한국의 법 제도를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기업이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에 투자할 유인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집단소송제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 왜 한국은 망설일까 = 그렇다면 한국에서 집단소송제도 도입이 진통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닙니다. 기업들의 반대가 극렬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재계는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 "거액의 배상금으로 인해 기업이 존폐 기로에 설 수 있다" 등의 논리로 집단소송제도를 반대해 왔습니다.

2005년 증권 분야에 한정해 집단소송제도(증권관련집단소송법 시행)를 도입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집단소송제도를 국정과제로 삼았던 문재인 정부가 일반적으로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는 '집단소송법안'을 입법 예고했지만(2020년 9월) 뜻을 이루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합니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일반적 집단소송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30대 그룹의 소송 비용이 최대 10조원 증가할 수 있다. 이는 기업의 신규 일자리 창출과 미래 먹거리 산업에 써야 할 돈을 소송 방어비용에 낭비하는 것이다."

■ 기업 우려 사실이었을까 = 문제는 재계의 우려대로 집단소송제도가 기업에 '소송 폭탄'을 던졌느냐입니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소송의 남발을 막을 법적 장치를 마련홰 놨기 때문입니다. 가령, 증권 분야 집단소송은 '소송허가' 절차를 거치도록 했습니다. 법원이 엄격한 법적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집단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게 골자입니다.

이 때문인지 증권 분야 집단소송법을 시행한 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제기된 소송은 12건에 불과합니다. 그중 본안 판결이 나온 사건은 2건뿐입니다.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소송허가 절차가 있는 만큼 남소濫訴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되레 유명무실해진 증권 분야 집단소송제도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고민성 변호사의 말을 들어볼까요. "법원이 소송허가 결정을 내리더라도 피고가 즉시항고할 수 있다. 이 경우 본안소송이 중단돼 소송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즉시항고가 제기되더라도 별도로 본안소송 절차가 진행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증권 분야 집단소송의 경우 10년 넘게 소요되는 경우가 허다한 만큼 소송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겁니다.

다만, 중소ㆍ중견기업을 위한 장치를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은 귀담아들을 만합니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 연구교수는 "대규모 법무팀을 갖춘 대기업과 달리 중소ㆍ중견기업의 경우 집단소송으로 인한 법률 비용 등이 실질적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중소ㆍ중견기업의 법 적용 시기 조절 등이 필요해 보인다"고 제언했습니다.

또다른 한편에선 "집단소송제도가 피해자를 구제하는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디스커버리(Discoveryㆍ증거개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미국의 민사소송 절차 중 하나로, 재판 전 원고와 피고가 각자 보유한 증거를 공개하는 제도입니다. 소송 관련 증거를 대부분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만큼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됐죠.

현재 국회에 발의된 집단소송법안 중 김남근(더불어민주당)·용혜인(기본소득당) 의원안엔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참고: 이른바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둘러싼 고찰점은 더스쿠프 통권 694호 'K-디스커버리 함의 1편'과 695호 2편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이어지는 파트1에선 K-디스커버리가 풀어야 할 과제를 살펴봤습니다.]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집단소송 관련 법안(제정안ㆍ개정안)은 13건에 달합니다. 언급했듯 쿠팡 사태 등이 줄줄이 터지면서 집단소송제도가 필요하단 여론이 확산한 결과입니다. 과연 이재명 정부는 앞선 정부와 달리 집단소송제도를 안착시킬 수 있을까요?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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