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라톤은 민폐?"…눈총 피해 떠나는 '런케이션' [나연만의 달려도 달려도]

나연만 2026. 4. 1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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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방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야 하는 이유
메가시티 서울 / 사진출처. pixabay


OECD 국가 중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한국. 그리고 한국 안에서도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는 단연 서울이다. 서울은 마치 거대한 유기체처럼 호흡한다. 아침이면 블랙홀처럼 수도권 인구를 빨아들였다가, 저녁이 되면 종이 위에 떨어진 잉크 방울처럼 사람들을 주변 도시로 퍼뜨리듯 쏟아낸다.

이토록 역동적인 메가시티에서 빌딩 숲과 한강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경험은 도파민이 넘칠 정도로 짜릿하고 특별하다. 실제로 서울에서 5월까지 열리는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만 50개가 넘을 정도로 그 열기는 뜨겁다.

 눈총 속에서 달리는 대도시의 러너들

하지만 화려함 이면에는 그림자도 존재한다. 주말마다 반복되는 교통 통제로 인해 시민들이 겪는 피로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 지인의 결혼식에 늦었다는 하객의 불만부터, 일요일 출근길에 지각한 근로자의 한숨, 주로 변에 있는 상가의 매출 감소 등 뜻밖의 부작용(?)에 대한 푸념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교통 통제로 자재 배송을 못 했다거나, 매출이 늘기는커녕 화장실만 쓰고 떠나는 주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는 상인들의 이야기도 서울에서 열리는 마라톤의 이면을 씁쓸하게 보여준다.

비싼 참가비를 내고 달리는 러너들 역시 이런 차가운 눈초리를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불안장애를 앓았을 정도로 세상의 온갖 걱정을 안고 사는 사람인 나 역시 지난달 열린 서울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뒤 쏟아지는 불만 섞인 사연들을 접하며, 대도시 한복판에서 대회를 치르는 기준과 방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가성비와 여유, 그리고 따뜻한 환대가 있는 지역 마라톤 대회

쫓기듯 눈치 보며 달리는 서울의 마라톤이 불편해졌다면, 시선을 돌려 지방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가장 먼저 체감되는 차이는 비교적 저렴한 참가비와 여유로움이다. 풀코스 기준 10만원에서 15만원에 달하는 서울의 대회와는 달리, 춘천국제마라톤을 제외한 지방 대회 참가비는 대부분 10만 원 미만이 대부분이다. 수십만 명이 몰려 접수 사이트가 마비되는 전쟁을 치르는 일도 거의 없다.

무엇보다 큰 차이는 ‘온도’에 있다. 춘천시 인구의 10%에 달하는 3만 명(참가자 및 동반가족 포함)이 몰려드는 춘천국제마라톤의 경우, 대회 당일 도시는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변한다. 골인 지점 주변 목욕탕은 말 그대로 물 반, 사람 반이 되고, 식당들은 몰려드는 손님에 재료가 소진되는 등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더 작은 규모의 도시나 군 단위에서 열리는 대회는 지역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는 든든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교통 통제를 귀찮아하기보다, 먼 길에서 찾아온 손님으로 반겨주는 시민들의 따뜻한 환대는 러너들에게 색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의암호를 끼고 도는 코스의 춘천국제마라톤 / 양재천러너스 제공

 자연을 달리고 지역을 맛보다

빌딩 숲과 도로 등 인공 건축물들 사이를 달리는 재미가 있는 것이 서울의 마라톤이라면, 지방의 마라톤은 지역마다 다른 다채로운 자연을 눈에 담는 즐거움이 있다. 주황색으로 물든 산과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도는 가을의 춘천국제마라톤, 황금빛으로 물든 은행나무길을 달리는 아산은행나무길마라톤, 첨성대와 대릉원, 국립경주박물관 등 경주시 주요 유적지를 눈으로 훑으며 달릴 수 있는 경주국제마라톤, 30도 안팎의 기온 속에서 데스밸리처럼 끝없이 펼쳐지는 논길을 달리는 철원DMZ국제평화마라톤 등 대회마다 확연히 다른 지역 고유의 풍경으로 러너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경주국제마라톤 메달과 첨성대 / 양재천러너스 제공

지방 마라톤의 또 다른 묘미는 지역 특색을 한껏 살린 유쾌한 콘셉트다. 천편일률적인 메달과 바나나가 아닌, 그 지역에서만 맛보고 즐길 수 있는 혜택들이 넘쳐난다.

마라톤 주로 중간에서 에너지 음료 대신 갓 구운 삼겹살이 제공되어 러너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은 고창고인돌마라톤, 참가 신청 시 배번과 함께 철원 오대쌀과 지역 상품권이 배달되는 철원DMZ국제평화마라톤, 참가자 전원에게 의성마늘과 사과를 챙겨주는 경북의성마늘마라톤, 광천 토굴 새우젓과 광천김을 손에 들려주는 충남홍성마라톤 등 수많은 마라톤 대회에서 지역 특산물을 기념품으로 제공한다.

철원DMZ국제평화마라톤 기념품 / 양재천러너스 제공

 새로운 여행의 트렌드, '런케이션(Run+Vacation)'을 떠나자

최근 러너들 사이에서는 달리기(Run)와 휴가(Vacation)를 결합한 ‘런케이션’이라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여행지에서의 달리기는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왜 놀러 가서까지 뛰어다니는지 의문"이라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달리기를 즐기기 시작한 후로는 180도 생각이 바뀐다. 여행을 싫어해서 자기 의지로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는 나조차도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곳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떠날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이제는 해외든 국내든 1박 이상의 여정이라면 일정에 반드시 러닝을 넣지 않고는 참을 수 없다.

대도시에 갇혀 달리는 데 지쳤다면, 주말에는 러닝화를 가방에 넣고 지방으로 떠나보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탁 트인 벌판을 달리는 자유로움, 잠자는 지역 경제를 깨우는 긍정적인 발걸음, 넉넉한 인심과 특산물이 주는 즐거움까지. 지방 마라톤은 단순한 레이스를 넘어 훈훈한 마음까지 꽉 채우는 완벽한 나만의 여행이 될 것이다.

[좌] 여수해양마라톤-오림터널공원 코스 [우] 경주벚꽃마라톤대회 / 양재천러너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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