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당한 가장의 처절한 사투…그는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자리 하나를 위해, 내 집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지우기로 했다
"나를 위한 자리가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취업에 성공하겠다"
'모가지'.
그러니까 회사에서 잘렸다는 말이다. 25년간 충성을 다한 제지회사에서 해고된 가장, 만수.
하루아침에 수입이 끊기며 삶은 180도 변해버렸다. 각종 지출을 줄이다 못해 결국 집까지 매물로 내놓아야 하는 상황. 가족을 위해 재취업하려 발버둥 치지만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결국 그는 '어쩔 수 없이' 이상한 결론에 다다르고 만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 '아가씨'를 다룬 이전 칼럼에서 표현한 것처럼, 그는 공간적 배경에 진심이다. 특히 감독은 이번 영화에 대해 '배우들 다음으로 중요한 캐릭터가 바로 집'이라 말할 만큼 집은 중요한 배역이었다. 그는 전국을 뒤지다 마침내 충남 아산에서야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고 한다.
꽤 넓은 마당을 가진 이 집은 만수가 꿈꾸던 이상적 삶을 상징한다. 또한 헌팅 트로피처럼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전리품이기도 하다. 만수가 직접 내뱉는 대사처럼 '예쁜' 아내와 사랑하는 두 자녀. 그리고 두 마리의 반려견은 그의 자부심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이 모든 것들을 잃어버릴 위치에 처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재취업을 위해 자신의 경쟁자를 죽인다는 심플한 스토리. 반면 관객은 상상력을 총동원하게 되는데, 등장인물의 배경이 되는 집에서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수의 집
영화는 만수의 집에서 시작한다. 검은 벽돌 주택. 증축을 했는지 건물 한쪽은 붉은 벽돌로 되어있다. 그리고 그 둘을 이어주는, 둥근 거푸집으로 찍어낸 물결무늬의 하얀 발코니. 딱 보면 느껴지듯 여러 모습이 근본 없이 뒤섞인 집이다.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일까.
박찬욱 감독과 7편의 작품을 함께 한 짝꿍, 류성희 미술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모습이다. 1970년대 '불란서 주택'이라 불리는 '엉터리 유럽식 주택'의 모습을 영화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어디서 흔히 볼 수 없는 형태에 뭔가 오래된 것 같으면서도 세련된 느낌. 지금 우리가 보면 매력적인 모습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이 집은 소위 '집장사'라 불리던 근본 없는 건축가가 마구잡이로 지어 팔아먹은, 손가락질받던 집이다.
정원엔 각양각색의 나무로 가득하다. 하나하나 애정을 담아 조성한 공간이다. 볕이 잘 드는 곳에는 근육질 남성처럼 우락부락한 배롱나무가 자신의 화려함을 뽐낸다. 나무를 뽑고 분쇄해 종이로 만드는 사람의 취미가 정원 가꾸기라니.
그의 집 내부도 온통 나무다. 큰 나무의 목을 쳐 일정한 두께로 잘라낸 판재로 마감된 내부. 집은 따뜻한 느낌이라기보다는 깊은 비밀을 숨긴 것처럼 묵직하다. 모두가 바랄 완벽한 환경에서 그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예쁜 꽃 한 무더기를 올려둔 야외 테이블에서 만수의 가족은 회사에서 보내온 장어를 구워 먹는다.
"이거 뱀 아니야?"
화목한 네 가족 뒤로 어두운 보랏빛이 하늘이 물들인다.

온실
만수의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그의 '온실'이다. 분재를 다듬으려 직접 만든 이곳은 그의 성격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공간이다. 만수는 작은 나무를 화분에 심어, 철사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힘을 준 분재 가지가 뚝 하고 부러진다. 억지로 꿰맞추려다 망가질 자신의 삶처럼.
'올해의 펄프맨 상'을 받을 만큼 능력 있고 회사에 충성을 다했던 남자. 그는 제지회사 말고 다른 곳에서는 일할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3개월 내 취업하겠다는 다짐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면서 가장이라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는다는 극도의 불안에 휩싸인다. 게다가 아내도 바람피우는 것 같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재취업에 성공해야 했다.
부서지기 쉽고 투명하지만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은밀한 공간. 온실은 본래 가장 투명하고 밝은 공간이지만, 이상하게도 영화에서는 항상 어둡다. 만수는 이곳에서 온갖 '어쩔 수가 없는' 일들을 계획하고 수행한다. 건실한 제지 회사로 위장해 이력서를 받고, 자신이 처치할 경쟁자 후보를 추리기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경쟁자: 구범모의 집
맨 처음은 이력서에서 스펙이 가장 좋았던 범모다. 만수와 마찬가지로 뼛속까지 제지맨인 범모의 집은 숲속에 홀로 존재한다. 하얗던 건물 외관은 관리하지 않은 지 오래된 듯 먼지가 가득하다. 반면 내부는 깨끗한 흰 벽지에 고급 취향이 드러나는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실직 후 의욕을 잃고 샤워도 하지 않는, 하지만 제지에 대한 순수한 내면을 가진 범모의 집이다.
만수의 '맨 케이브'가 온실이었다면 범모에게는 음악감상실이다. 집안 곳곳이 범모 아내의 취향으로 꾸며졌지만, 음악감상실만큼은 다르다. 상장과 트로피가 소중히 진열돼 있고, 사진과 LP는 아날로그적 취향을 드러낸다.
실직으로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상황에서도, 종이 만드는 사람이라는 프라이드를 버릴 수 없었던 범모. 음악 카페나 마트에서 일하라는 권유에도 그는 그 방법을 선택할 수 없었다. 당연하다. 그는 제지맨이니까. 비록 만수처럼 재취업을 위해 살인까지 결심하진 않았지만.
"나는 기술자야! 전문가!"
어쩔 수 없이, 범모는 죽음을 맞이한다.

두 번째 경쟁자: 고시조의 구두 매장
만수, 범모와는 달리 시조는 제지가 아닌 다른 직종으로 재취업을 했다. 구두 매장에서 수당을 받기 위해 연신 굽신거리며 손님의 비위를 맞춘다. 자신을 멋지게 뽐내는 진열장의 구두처럼 자신의 모습을 꾸며낸다. 딸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구두 매장에서 일하지만, 여전히 제지의 가치를 잃지 않고 사는 인물이다.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왔지만 역시나 어쩔 수 없이 죽임을 당하는 시조. 만수는 그의 시체를 자신의 온실로 옮겨, 분재를 다루듯 철사로 꽁꽁 묶는다. 방수포로 미처 가려지지 않은 틈새로 불빛이 새어 나온다. 그리곤 마당에 구덩이를 파, 묘목 뿌리처럼 둥글게 말린 시신을 묻고 그 위에 나무를 심었다.
"본 거야, 본 것 같은 거야?"
지붕에서 담배 피우던 만수의 아들도 그 시간에 깨어 있었다.

세 번째 경쟁자: 최선출의 아지트
최선출은 제지 산업에서 여전히 잘나가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집은 산장처럼 통나무를 사용해 만들었다. 방금 전까지도 살아있던 것 같은 나무로 말이다. 천장과 바닥 그리고 테이블까지 온통 통나무다. 그런 그가 등장인물 중 가장 울창한 숲속에 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마당으로 나와 나무를 태워 모닥불을 피운다. 역시나 그는 나무로 된 자원이 많다. 하지만 다른 등장인물과는 달리 가족 없이 홀로 사는 처지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잖아"
선출의 죽음을 앞두고 만수와 그의 아내는 서로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을 확인한다.

공장
만수는 동료 하나 없는 공장에서 쾌재를 부른다. 그토록 들어보고 싶었던 딸의 첼로 연주는 공장의 쇳소리에 묻힌다. 만수는 내놓았던 집을 다시 거둬들였다. 겨울이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분홍 꽃이 피었던 배롱나무엔 이제 아무 이파리도 달려있지 않았고, 만수의 아내는 더 이상 테니스를 치지 않았다.
"(공장이) 전자동이라고 하면 인력은..."
"아무래도 감축되겠죠. 어쩔 수가 없죠"
잘 자란 나무들이 사나운 기계 덩어리에 뽑히고, 벗겨지고, 갈리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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