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불확실한 ‘스탠바이’ 상태인 호르무즈와 두바이 [파일럿 Johan의 아라비안나이트]

2026. 4. 1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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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에는 ‘스탠바이(Standby)’라는 근무가 있다. 비행이 배정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상태로 대기하는 것인데, 모든 크루가 가장 싫어하는 근무다. 갈지 안 갈지 모른 채 묶여 있는 시간, 이런 불확실성이 가장 소모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가 딱 그 스탠바이 상태다.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동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곧 끝난다”는 말을 다섯 번이나 했다. 하지만 매번 기한이 바뀌고, 조건이 바뀌고, 위협의 대상이 바뀌었다. 끝난다는 말만 반복될 뿐 끝은 오지 않고 있다.

데드라인의 연대기
도널드 J.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지난 3월 21일 트럼프가 “48시간 안에 호르무즈 해협을 열지 않으면 발전소부터 폭파하겠다.”고 처음으로 최후통첩을 날렸다. 주변 모든 걸프 국가들은 긴장했다. 주재원들은 ‘지금이라도 고국에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문의했다.

그런데 48시간이 지나자 톤이 바뀌었다. 3월 23일 “이란과 매우 좋고 생산적인 대화가 있었다”며 5일을 더 줬다. 5일이 지나자 3월 26일, “이란 정부의 요청에 따라” 10일을 또 연장했다. 새 기한은 4월 6일로 변했다. 그리고 4월 1일에는 “군사 목표가 거의 달성됐다. 2~3주 내 추가 타격 후 마무리하겠다”고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끝이 보이는 듯했지만 구체적 일정은 없었다.

그리고 4월 5일. 트럼프는 다시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렸다. “화요일 밤 8시! 발전소의 날이자 다리의 날이 될 것이다. 해협을 열어, 이 빌어먹을 미친 X들아, 아니면 지옥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극단적 위협, 데드라인 설정, 기한 도래, 그리고 “좋은 대화가 있었다”며 연장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이란은 그때마다 “우리는 협상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어느 한쪽은 거짓말일 텐데 이렇게나 얘기가 다르다.

반복되는 위협이 만드는 것
지난 3월 20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란 미사일은 능력을 상실했다. 조기 종전이 가능하다”고 발표한 모습. 그 후로 2주가 넘었지만 이란 미사일과 드론은 여전히 건재하다. / 사진=KBS뉴스 캡처
문제는 이 패턴이 반복될수록 위협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처음 ‘48시간’을 들었을 때 모든 주변 아랍 국가들은 긴장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연장이 반복되자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또 미루겠지”가 된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매체들은 이를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즉 ‘트럼프는 항상 꽁무니를 뺀다’는 신조어로 표현하고 있다. 반대편에서는 “이번에는 진짜”라고 주장한다.

이란의 반응은 명확하다. 트럼프의 계속되는 최후통첩에 대해 이란 중앙사령부는 “무력하고 신경질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일축했다. 이란 의회의장 갈리바프는 “네타냐후의 명령을 따르느라 미국 전체를 지옥에 끌고 가고 있다”고 직접 반격했다.

데드라인이 반복될수록 위협의 신뢰도는 떨어지고, 이란의 배짱은 커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인 주변 걸프 국가들만 계속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속이 타들어간다.

그 사이에 전쟁은 더 깊어지고
지난 4월 3일 미군 F-15E 전투기가 이란 영토에서 격추됐다. 2월 28일 전쟁 시작 이래 미국이 이란 영토에서 항공기를 잃은 첫 사례다. 조종사 한 명은 당일 구조됐고, 나머지 한 명은 이틀간의 교전 끝에 미군 특수부대 수백 명이 투입돼 구출됐다. / 사진=알자지라 캡처
데드라인이 오가는 동안 현장에서는 전쟁이 오히려 격화됐다. 지난 4월 3일 미군 F-15E 전투기가 이란 영토에서 격추됐다. 2월 28일 전쟁 시작 이래 미국이 이란 영토에서 항공기를 잃은 첫 사례다. 조종사 한 명은 당일 구조됐고, 나머지 한 명은 이틀간의 교전 끝에 미군 특수부대 수백 명이 투입돼 구출됐다.

같은 주에 쿠웨이트 유조선이 두바이 항구에서 이란의 공격으로 피격됐고, 쿠웨이트의 담수화·발전 시설도 드론에 맞아 잠시 가동을 멈췄다. 이란은 미국 테크 기업 18곳을 공격 대상으로 지목했는데 그 목록에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팔란티어까지 포함됐다. 두바이에서는 오라클 사무실 건물 외벽이 요격 파편에 손상됐다.

트럼프는 타격 대상에 발전소, 유전, 카르그섬에 이어 이란의 담수화 시설과 다리까지 추가했다. 담수화 시설은 UAE 식수의 52%를 담당하는 인프라다. 공격이 실행되면 이란 9000만 명 인구뿐 아니라 걸프 전역의 물 공급이 위험해진다. “곧 끝난다”는 말이 반복되는 사이에, 전쟁은 끝나기는커녕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불확실성이 가장 무섭다
전쟁 중에도 두바이의 일상은 계속된다. 공원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의 모습.
전쟁 자체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건 이 ‘어정쩡함’이다. 두바이에 사는 모든 사람이 같은 불확실성 속에 있다. 호텔 가격은 폭락했는데 관광객은 돌아오지 않는다. 식당들은 직원을 줄이기 시작했다. 명품 매출은 전쟁 전 대비 40% 감소했다. 그런데 ‘곧 끝난다’니까 아예 문을 닫지도 못하고, 끝나지 않으니 정상으로 돌아가지도 못한다. 항공업계도 마찬가지다. 스케줄이 하루 단위로 바뀌거나 갑자기 취소되는 상황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현재 45일간의 휴전 협상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한 달 반 동안 진행된 전쟁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쉽게 안도할 수 없다는 걸 알 것이다. 설령 총성이 멈춘다 해도 끊어진 공급망과 치솟은 보험료, 떠난 관광객과 무너진 신뢰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전쟁의 상처는 폭탄이 멈춘 뒤에도 한참을 남기 때문이다. 스탠바이 상태로 한 달 반째 묶여 있는 이 기다림이 끝나는 날을 기다려본다.

※ 도움말 및 참고자료 = CNN·NBC·알자지라·NPR·CNBC·예루살렘 포스트 등 외신 전쟁 보도. Alma Research Center 일일 전황 보고서, 현지 항공업계 관계자 종합

[원요환 UAE항공사 파일럿 (前매일경제 기자)]

john.won320@gmail.com

아랍 항공 전문가와 함께 중동으로 떠나시죠! 매일경제 기자출신으로 현재 중동 외항사 파일럿으로 일하고 있는 필자가 복잡하고 생소한 중동지역을 생생하고 쉽게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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