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바다의 봄을 담은 조개, 바지락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영흥도 바지락 [연합뉴스 자료 사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4/yonhap/20260414095541801sjrq.jpg)
봄바람이 바다 위를 스칠 때 갯벌 속에서 조용히 숨 쉬던 작은 생명이 깨어난다. 바로 바지락(花蛤)이다. 겨울 동안 차가운 모래 속에 몸을 묻고 있던 바지락은 봄이 오면 다시 숨을 내쉬듯 입을 열고 바닷물 속 영양을 빨아들인다. 그래서 많은 옛사람은 '봄 바지락은 바다의 보약'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의 식탁에서 바지락은 특별한 존재다. 된장국 속에서도 만나고 칼국수 국물 속에서도 만난다. 봄철 갯벌 체험에서는 아이의 손에 가장 먼저 잡히는 조개이기도 하다. 작고 흔한 조개이지만 그 안에는 자연과 인간의 삶을 이어주는 깊은 지혜가 담겨 있다.
바지락의 영양학
도교 양생에서는 음식이 몸의 기운을 다스리는 약이라고 본다. 약선학에서는 바지락을 화합(花蛤)이라 부르며 성질은 차고, 맛은 짜다. 차가운 성질은 몸의 열을 식히고, 짠맛은 신장의 기운을 돕는다. 그래서 약선에서는 바지락이 위경(胃經)과 신경(腎經)으로 들어가 몸의 열을 내리고 진액을 보충한다고 말한다.
바지락의 효능은 크게 네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는 자음윤조(滋陰潤燥)다. 몸속의 음기가 부족하면 입이 마르고 얼굴이 붉어지며 밤에 식은땀이 난다. 바지락은 이러한 음허열을 완화하고 몸의 진액을 보충해 건조한 기운을 촉촉하게 만든다.
둘째는 이수소종(利水消腫)이다. 체내 수분 대사를 도와 부종을 완화하고 소변을 원활하게 한다. 옛 의서에는 바지락을 겨울호박이나 복령과 함께 끓여 먹으면 몸의 부기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셋째는 화담산결(化痰散結)이다. 몸속에 쌓인 담과 열이 뭉쳐 생기는 결절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작용이다. 그래서 바지락을 해조류와 함께 조리하면 담을 풀어주는 효과가 더욱 좋아진다고 전해진다.
넷째는 청열제번(淸熱除煩)이다. 숙취로 가슴이 답답하거나 눈이 충혈될 때 바지락을 녹두나 국화와 함께 먹으면 마음의 열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바지락의 약효가 살뿐 아니라 껍데기에도 있다는 점이다. 바지락 껍데기는 예로부터 폐의 열을 내리고 가래를 삭이는 데 사용되었다. 폐결핵이나 림프 결핵을 치료할 때 보조 약재로 쓰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현대 영양학에서도 바지락의 가치는 높다. 바지락에는 양질의 단백질과 철분, 아연, 셀레늄, 비타민 B군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특히 철분과 비타민 B12는 혈액 속 헤모글로빈 형성을 도와 빈혈 예방에 도움이 된다.
또한 바지락에는 타우린이라는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타우린은 간 기능을 돕고 혈액 속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숙취 해소나 피로 해소에 바지락국이 좋다고 말한다. 이처럼 작은 조개 속에는 몸을 회복시키는 영양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한국인의 음식 문화에서 바지락은 흔히 '영혼의 국물'이라 불렸다. 조개가 끓는 순간 바닷물의 향이 국물 속에 스며들며 깊은 감칠맛을 만들어 낸다. 특히 봄철 바지락 칼국수는 한국인의 계절 음식 가운데 하나다. 겨울을 견디며 영양을 저장한 바지락은 산란을 앞두고 살이 가장 통통해진다. 그래서 2월부터 4월 사이가 가장 맛있고 영양도 풍부하다.
!['바다향 품은 갯벌 속 보물' 태안산 바지락 채취 한창 (태안=연합뉴스) 최근 식물성 플랑크톤 등 먹이가 풍부한 충남 태안 갯벌에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바지락 채취가 한창이다. 사진은 지난 23일 태안군 소원면 법산리에서 어촌계원들이 바지락을 채취하는 모습. 2024.5.27 [태안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cobra@yna.co.kr (끝)](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4/yonhap/20260414095541949ajyh.jpg)
조리 방법도 어렵지 않다. 바지락은 해감을 한 뒤 국, 찜, 볶음, 무침, 죽 등 다양한 요리에 사용할 수 있다. 바지락 두부탕은 단백질과 칼슘을 동시에 보충하는 음식이다. 마늘을 넣어 볶으면 항균 작용과 미네랄 흡수율이 높아진다. 바지락 달걀찜은 부드러워 어린아이와 노인에게도 좋은 음식이다.
다만 바지락은 성질이 차기 때문에 비위가 약한 사람은 과다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퓨린 함량이 있어 통풍 환자는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이처럼 바지락은 작고 평범한 조개이지만 그 속에는 자연의 질서가 담겨 있다. 차가운 바닷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며 인간에게 영양과 약이 되는 존재다. 우리는 종종 큰 것에서 건강을 찾으려 하지만 자연은 늘 작은 것 속에 더 깊은 지혜를 숨겨 놓는다.
손자병법으로 바라본 바지락 요리
![바지락 칼국수 [연합뉴스 자료 사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4/yonhap/20260414095542094hqsf.jpg)
손자병법의 허실(虛實)의 장을 바지락 요리에 접목해봤다. 손자는 허한 곳을 치고 실한 곳을 피하라고 했다. 비어 있는 곳을 찾아 움직이고, 가득 찬 곳에서는 물처럼 흘러야 한다는 뜻이다. 이 원리는 전쟁뿐 아니라 인간의 몸과 음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바지락은 바로 이 허실의 지혜를 품은 음식이다. 몸에 열이 가득 차 있을 때는 비워야 하고, 기운이 부족할 때는 채워야 한다. 바지락은 몸의 열을 식히면서도 단백질과 미네랄로 기운을 보충한다. 비우면서 채우는 음식이다. 그래서 봄철 바지락국을 먹으며 겨울의 피로를 풀었다. 자연이 허한 몸을 채워주는 방식이다.
손자는 또, 물은 높은 곳을 피하고 낮은 곳으로 흐른다고 했다. 노자 역시 도덕경에서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다투지 않으며 낮은 곳으로 흐르며 만물을 살린다. 바지락 또한 물의 철학을 닮았다. 갯벌 속 낮은 자리에서 조용히 살며 바닷물 속 미세한 생명을 걸러 먹는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결국 인간의 식탁을 살리는 존재가 된다.
이 철학은 음식의 조리에서도 드러난다. 바지락을 칼국수에 넣으면 국물은 맑아지고 맛은 깊어진다. 면은 바지락 국물을 흡수하며 새로운 풍미를 얻는다. 강한 향신료가 없어도 자연의 맛이 완성된다.
된장국 역시 마찬가지다. 된장의 깊은 맛과 바지락의 바다 향이 만나면 국물은 깊어진다. 서로의 빈 곳을 채우는 것이다.
바지락볶음은 또 다른 철학을 보여준다. 센 불에 짧게 볶으면 조개가 입을 열며 바다 향이 퍼진다. 오래 익히면 살은 질겨지고 맛은 사라진다. 요리에도 타이밍이 있다. 손자가 말한 속도와 기세의 원리와 같다.
바지락죽은 몸을 회복시키는 음식이다. 병을 앓은 뒤 허약해진 몸에는 강한 음식보다 부드러운 음식이 필요하다. 쌀과 바지락을 함께 끓이면 영양이 국물 속에 녹아들어 몸을 천천히 회복시킨다. 반대로 바지락무침은 기운을 깨우는 음식이다. 매콤한 양념과 바다 향이 입맛을 깨운다.
같은 바지락이라도 조리 방법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 칼국수는 몸을 따뜻하게 채우는 음식이고, 죽은 허한 기운을 회복하는 음식이며, 무침은 기운을 깨우는 음식이다.
재료는 하나지만 쓰임은 다르다. 이것이 손자병법의 변화의 원리다. 손자는 전쟁에는 일정한 형세가 없고 물에는 일정한 형상이 없다고 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같은 재료라도 사람의 몸 상태와 계절에 따라 다른 음식이 된다. 이것이 양생과 저속노화의 지혜다.
![다양한 바지락 요리 [연합뉴스 자료 사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4/yonhap/20260414095542239njqk.jpg)
손자병법의 이야기는 결국 균형의 철학이라 볼 수 있다. 채울 때와 비울 때를 알고, 움직일 때와 멈출 때를 아는 것이다. 봄날 따뜻한 국물 속에서 바지락이 입을 열 때 그 국물에는 바다와 계절, 그리고 자연의 생명이 함께 녹아 있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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