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아스팔트 위의 나비 / 박해성

최미화 기자 2026. 4. 1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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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시인은 다소 늦은 등단이었다.

그런데 그후 곧장 주목할 시인이 되었다.

운전 중 녹색으로 직진 신호 바뀌는 바로 그때 하얀 나비 사뿐히 앞 유리에 착지한다.

그 나비는 이 세상 신호등 따위를 애당초 아랑곳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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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시조 시인)

​녹색으로 직진 신호 바뀌는 바로 그때/ 하얀 나비 사뿐, 앞 유리에 착지한다/ 애당초 아랑곳없다, 이 세상 신호등 따위// 뒤차들의 재촉이 송곳처럼 꽂힌다/ 어금니 앙다물고 가속 페달을 밟는다/ 후두둑 굵어진 빗방울, 시야를 흐리는데// 나비가 사라졌다, 허공이 삼킨 것처럼/ 오래전 서너 달쯤 내 몸에 살던 아이처럼/ 지워도 어른거리는 너, 자꾸만 날아오른다// 그들이 날아간 곳 살아서는 모른다는데/ 어디선가 나를 부른다, 엄마엄마 마마 마아…/ 별일도 아니라는 듯 와이퍼가 춤을 춘다
『시조시학』(2022년, 가을호)

박해성 시인은 다소 늦은 등단이었다. 그런데 그후 곧장 주목할 시인이 되었다. 길지 않은 기간에 두각을 나타내었다. 독보적인 시조 세계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시조 세계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그가 보여준 개성은 남다른 데가 있었고, 독자들은 대체 이것이 뭘까 하고 조심스레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또 다른 목소리의 발현은 주목될 수밖에 없었다.

「아스팔트 위의 나비」는 이채롭다. 아픈 개인사가 짙게 배어 있다. 그것은 영영 지울 수 없는 동통이다. 쑤시고 아픈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다. 운전 중 녹색으로 직진 신호 바뀌는 바로 그때 하얀 나비 사뿐히 앞 유리에 착지한다. 그 나비는 이 세상 신호등 따위를 애당초 아랑곳하지 않는다. 뒤차들의 재촉이 송곳처럼 꽂혀서 어금니 앙다물고 가속 페달을 밟는다. 후두둑 굵어진 빗방울이 시야를 흐리게 할 때 나비가 사라졌다. 허공이 삼킨 것처럼 말이다. 그때 불현듯 오래전 서너 달쯤 자신의 몸에 살던 아이를 떠올린다. 그 아이처럼 지워도 어른거리고 자꾸만 날아오른다. 그들이 날아간 곳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를 부른다. 엄마엄마 마마 마아, 라고. 참으로 뼈아픈 순간이다. 이런 때에도 별일도 아니라는 듯 와이퍼는 춤을 춘다. 참 무심하게 느껴지지만, 와이퍼는 제 할 일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아래는 「르 클레지오를 읽는 밤」이다.
모두가 다 있으나 아무것도 없는 밤/ 조용히 그대를 만나 눈으로 대화한다/ 합법적 불륜이라 하자, 뇌세포의 오르가슴을// 바다가 사막 되고 모래가 설산되도록/ 너는 어디 있었을까, 나는 무엇이었을까/ 사상과 상사가 만나 잔을 부딪는다// 상처 난 고양이처럼 웅크린 적막 앞에/ 텅 비어 가득 찬 것들, 가벼워 무거운 것들/ 따듯한 잔치국수나 밤참으로 대접할까 봐.

2008년 노벨문학상을 받는 프랑스 소설가와 관련된 시편이다. 이렇듯 그의 시조는 거침이 없다. 끝부분에서 잔치국수가 등장하여 친밀감을 안긴다. 아울러 불륜이니 오르가슴과 같은 시어를 도입하여 긴장감을 조성한다. 사상(思想)과 상사(想思)를 병치시킨 것도 그러하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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