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처럼, 무명천처럼… 그렇게 하얀 천사로 살다가신 어머니[그립습니다]

2026. 4. 1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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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나의 어머니 노진남(1936~2016)
나주 샛골나이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인 어머니(노진남)의 베 짜는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어머니가 저 하늘의 별이 되신 지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오늘처럼 하얀 벚꽃이 휘날리는 날이면 하얀 천사로 살다 가신 어머니가 더욱 사무치게 그립다.

전남 함평에서 7남매 장녀로 태어나 나주의 가난한 집 8남매 종손에게 시집간 어머니에겐 시할머니부터 열두 명이나 되는 시댁 식구가 감자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당신 자식도 다섯을 두셨으니 그 삶의 고단함은 끝이 없었다.

우리 집은 할머니(김만애) 때부터 국가무형문화재 나주 샛골나이(28호·1969년)로 지정됐다. 어릴 때 학교 갔다 돌아오면 항상 어머니(노진남·1990년 나주 샛골나이 보유자 지정)는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계셨다. 덜컹거리는 베 짜는 소리를 늘 듣고 자랐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자식들을 번듯하게 키우시겠다고 대학을 보내셨다. 대학교 3학년 때 나는 광주에서 자취하면서 ROTC 훈련을 받고 있었다. 훈련을 받으며 학교 다니느라 제대로 된 밥도 못 챙겨 먹고 많이 힘들 때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밥광주리가 놓여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찰밥이었다. 자식이 밥이나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걱정이 되신 어머니가 나주에서 찰밥을 해서 완행버스를 타고 오셔서 내 자취방에 두고 가신 것이었다. 반찬도 없이 그 흰 찰밥을 며칠을 먹었다. 그때의 든든함과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찰밥만 보면 그 먼 길을 자식 걱정으로 오신 어머니의 사랑 앞에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나는 식초를 무척 좋아한다. 화학 식초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옛날 부엌 부뚜막 위에 있던 천연 막걸리식초다. 내가 식초를 너무 좋아하니까 어머니는 내가 시골에 가면 식초 반찬과 함께 초장을 별도로 만들어 주셨다. 나는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이 초장 하나로 밥 한 공기를 뚝딱 먹었다. 지금도 아내가 만들어준 식초 음식을 먹을 때면 초장 그릇을 앞에 놓고 자식을 기다리시는 어머님의 주름진 모습이 겹쳐온다.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에도 늘 흐트러짐 없이 신중하고 대범하시며 단정한 모습으로 희로애락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으시는 진중한 분이셨다. 아마 말없이 하루 종일 베틀에 앉아 베를 짜시는 일상이 어머니를 더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래도 가끔 하얗고 부드러운 콘 아이스크림을 사다 드릴 때면 소녀처럼 즐거워하시며 맛있게 드셨다. 그 모습이 떠올라 더 자주 사다 드리지 못한 후회스러운 마음만 남아 있다.

경복궁에서 베 짜기 행사를 하시려고 서울에 오셨을 때 일이다. 일을 마치고 나오시는데 사람들이 자판기에서 음료를 사 먹는 것을 보셨다고 한다. 같이 온 작은어머니에게 “날씨도 더운데 저 안에 들어가 장사를 하려면 얼마나 힘들겠냐”고 하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그 순수함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지금도 지나가다 자판기를 보면 그때 일이 생각이 나서 혼자 배시시 웃곤 한다.

어머니는 폐암 초기로 증상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기침이 매우 심하고 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약물 치료를 받다가 갑자기 의식불명이 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나는 바빴던 탓에 주말에야 문병을 갔다. 그날은 내가 병간호를 하겠다고 아버지와 다른 형제들은 가서 좀 쉬라고 했는데 그날 밤 입원하신 지 일주일 만에 머나먼 하늘길을 떠나셨다. 아마도 둘째 아들 보고 가시려고 주말까지 기다리셨던 것 같다.

내가 농협에 근무할 때 서대문 본사 건물 옆에 자리한 농업박물관에 자주 들렀다. 박물관 3층에 가면 베틀을 전시해 놓고 어머니가 베를 짜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어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리움이 사무치면 그 박물관에 가서 멍하니 영상을 보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어머니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면서도 꽃을 참 좋아하셨다. 나는 어머니를 찾아뵐 때 그렇게 좋아하신 꽃인데도 제대로 사다 드린 기억이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것도 효도랍시고 천국 가시는 길 꽃으로 된 관을 만들어 드렸다. 꽃 속에 누워계신 어머니를 보고 참 많이도 울었던 기억이 새롭다. 어머니를 닮은 하얀 벚꽃이 휘날리는 오늘 같은 날이면 천국에서 꽃 구경하고 계실 그 단정하셨던 엄마가 떠올라 괜스레 벚꽃나무 아래만 서성인다.

최창수 경기도농수산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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