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박경리에게 ‘토지’가 숙명이었다면 ‘시’는 화해였으리라”

인지현 기자 2026. 4. 14. 09:1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에 사람들이 보아주었으면 하는 부분은 인간 자체로서의 박경리입니다. 많은 고통과 슬픔을 끌어안고 살아왔고, 이를 생명사상과 연민으로 체화했던 할머니의 삶이 사람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할머니의 소설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쓰여졌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로서 내면의 모순과 고통을 소설을 통해 드러내야만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할머니의 시에는 스스로 경험한 많은 것들에 대한 주도적인 이해와 수용, 연민의 태도가 녹아 있습니다. 어쩌면 할머니의 시는 현실의 삶에서는 밀어내고 멀리한 모든 상처에 대해 다시 한 번 이해하고 화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탄생 100주년… 수장고 속 47편 꺼내 엮은 손자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직 맡아
“상처 끌어안고 연민으로 체화
인간 박경리 삶을 바라봐주길”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에 사람들이 보아주었으면 하는 부분은 인간 자체로서의 박경리입니다. 많은 고통과 슬픔을 끌어안고 살아왔고, 이를 생명사상과 연민으로 체화했던 할머니의 삶이 사람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대하소설 ‘토지’로 한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박경리(1926∼2008) 작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그를 조명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작가의 외손인 김세희(사진)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각 지역 도서관·문학관의 기념행사를 지원하거나 작가의 미공개 유고시집 출간과 대표작 재출간을 이끄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작가의 외동딸인 김영주 씨와 김지하 시인의 차남으로, 영국 런던예술대(UAL)와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대에서 미술을 공부하다 어머니의 사망 후 재단 이사장직을 물려받았다.

김 이사장은 최근 문화일보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현재 ‘박경리문학공원’이 조성된 강원 원주시의 작가 생가에서 할머니인 박 작가와 함께 지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박 작가의 옛집은 주변이 개발되지 않아 사람이 살지 않는 허허벌판이었는데, 어린 나이였던 김 이사장이 밖을 보며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유령이 나타날까 두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박 작가는 “그들(유령)도 그저 가엾은 존재일 뿐”이라는 말을 건넸다. 김 이사장은 “당시에 그 말이 바로 와 닿지는 않았지만 살아가며 마주하는 선과 악의 문제, 피할 수 없는 고통의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떠올랐다”면서 “그 말은 지금까지도 삶의 많은 모순을 견딜 수 있는 한마디가 됐다”고 말했다.

삶의 고통을 연민으로 마주하고, 그 안에서도 의미를 길어내는 박 작가의 정신은 생전 남긴 문학작품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박 작가는 1969년부터 26년에 걸쳐 쓴 소설 토지에서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수난과 고통의 역사를 살아내는 인물을 조명한다. 김 이사장은 그러나 토지로만 한정할 수 없는 작가의 방대하고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소설가 박경리가 아닌 시인 박경리도 끄집어냈다고 했다. 재단 수장고에 잠들어있던 박 작가의 글이나 메모 중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시 47편을 모아 ‘산다는 슬픔’(다산책방)으로 출간하게 된 것. 시집에는 박 작가가 출간을 염두에 두고 쓰지 않은 개인적이고 내밀한 시들도 포함돼 있어, 이를 통해 ‘인간 박경리’를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다.

“할머니의 소설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쓰여졌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로서 내면의 모순과 고통을 소설을 통해 드러내야만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할머니의 시에는 스스로 경험한 많은 것들에 대한 주도적인 이해와 수용, 연민의 태도가 녹아 있습니다. 어쩌면 할머니의 시는 현실의 삶에서는 밀어내고 멀리한 모든 상처에 대해 다시 한 번 이해하고 화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번에 출간된 시들은 주로 박 작가가 토지 후반부를 작성하며 머물렀던 강원 원주 시절에 창작된 것이다. 김 이사장은 “할머니가 주로 원주 단구동 옛집에 있을 때와 마지막까지 생활하셨던 회촌으로 옮기신 이후의 작업들이 다수”라면서 “원주에서 쓰인 시들은 좀더 삶 전체를 조망하고, 개인뿐만 아니라 자연과 생명 전체를 아우르며 그것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수용의 태도를 보이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고 설명했다. 시집 중 제목 미상의 시에는 김 이사장이 할머니의 생과 작품 세계를 숙고하며 직접 가제를 붙이기도 했다.

인지현 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