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캄보디아 커넥션’이 바꾼 EDCF…업계 "시장 파이 축소" 우려

최지희 2026. 4. 14.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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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균 3조 신규승인 목표 설정
AI 내장 인프라로 사업구조 전환
장기지연 사업 취소ㆍ구조조정 단행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정부가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의 중장기 운용 방향을 전면 재편한다. 기존의 범용 인프라 지원 틀을 깨고 인공지능(AI)ㆍ문화ㆍ공급망으로 중점 분야를 압축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전면에 내걸었다. 향후 3년간 연평균 3조원, 총 9조원 규모 신규 사업을 승인한다는 목표도 명시했다.

재정경제부는 13일 제157차 EDCF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2026~2028년 EDCF 중기운용방향’을 의결했다. 주요 공여국들이 ODA 예산을 줄이고 경제ㆍ안보 이익 연계를 강화하는 흐름 속에서, 우리 정부도 EDCF를 단순 원조 수단이 아닌 산업ㆍ기업의 해외진출을 뒷받침하는 전략 자금으로 재정립하겠다는 방침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전통 인프라 사업에 AI 요소를 결합하는 ‘AI 내장(AI-embedded)’ 방식의 도입이다. 발전소ㆍ병원ㆍ송배전망 등 기존 사업에 AI를 탑재해 대표 우수사례를 창출하고 점진적으로 확산한다는 단계별 전략이다. 단순 시공 발주에서 AI 패키지형 수출로 사업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문화 인프라도 처음으로 중점 지원 분야에 올랐다. 유상 EDCF와 무상 ODA(공적개발원조)를 묶어 개도국 문화시설 건설과 K-콘텐츠 확산을 동시에 추진하는 패키지 방식이다. 핵심광물 등 전략자원 보유국에 대한 지원도 확대한다.

선택과 집중 전략은 사업심사도 바꾼다. 국익 기여도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사업 위주로만 심사ㆍ승인하며, 저금리 일변도로 운용해온 금리체계도 개편해 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장기 지연 사업은 승인 취소를 검토해 재원을 핵심 분야로 돌리고, 낙찰조건부 수혜 이익 일부는 이익 환류 체계를 통해 국내 수출 생태계 강화에 사용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산업ㆍ기업이 강점을 보유하고 개도국 수요도 높은 분야에 집중해 상징성과 파급효과가 큰 시그니처 사업을 발굴하겠다”고 강조했다.


금리 인상ㆍ심사 강화, 의혹 차단용 제도개편 …외교 마찰 불씨 될 수도



이번 EDCF 중기운용방향은 단순한 전략 재편이 아니라는 시각이 많다. ‘AIㆍ문화ㆍ공급망 선택과 집중’이라는 외양 뒤에는, 이른바 ‘캄보디아 커넥션’ 논란이 불러온 EDCF 구조 전반의 강제적 체질 개선이라는 맥락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금리 인상, 사업 심사 강화, 투명성 패키지가 한꺼번에 쏟아진 배경에 의혹 차단용 제도개편이라는 성격이 짙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정치적 논란이 EDCF 운용 방식을 통째로 뒤흔든 셈인데, 각 정책 과제마다 만만치 않은 부작용도 따라온다.

가장 주목되는 리스크는 AI 내장 인프라다. 개발도상국 발전소나 병원 사업에 AI를 탑재한다는 구상은 신선하지만, 국내에서조차 검증된 모델이 없다. AI 운영을 위한 현지 인력과 유지보수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이 완공 이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AI 탑재로 인한 사업비 증가가 수원국의 상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금리체계 개편도 양날의 검이다.

현재 EDCF 금리는 0.01~2.5%로 고(高)양허성 수준이다. 정부는 타 공여국 금리 수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인상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방침이 이른바 ‘캄보디아 커넥션’ 의혹에 대한 사실상의 제도적 대응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캄보디아의 EDCF 기본약정 한도는 윤석열 정부 출범 전 7억 달러에서 임기 중 30억 달러로 4.3배 급증했고, 0.01% 수준의 초저금리ㆍ장기 조건이 적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 과정에서 특혜성 한도 증액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가 금리를 올려 저금리 한도 제공 자체를 ‘특혜’로 활용하기 어려운 구조로 바꾸려 한다는 시각이다.

문제는 금리를 올린 순간 EDCF의 경쟁력이 흔들린다는 데 있다. 일본국제협력기구(JICA)나 세계은행, 특히 저금리 차관을 앞세운 중국과 같은 공여기관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고, 수원국이 다른 공여국으로 눈을 돌리면 연평균 3조원 승인 목표도 흔들린다. 의혹 차단을 위한 금리 인상이 오히려 목표 달성의 발목을 잡는 역설이다.

장기지연 사업 승인 취소도 외교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 EDCF 사업은 단순한 금융 거래가 아니라 양국 정부 간 약속의 성격을 띤다. 우리 기업 참여가 제한됐거나 진행이 느리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취소할 경우 수원국과의 신뢰 관계에 금이 갈 수 있고, 동남아ㆍ아프리카 중점협력국과의 관계에서 돌발 변수가 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업계가 주목하는 또 다른 리스크는 정부 내 분위기다. ‘선택과 집중’을 명분으로 중기 계획을 짜는 과정에서, 관련 부처 전반에 EDCF 집행 자체를 조이려는 기류가 흐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투명성ㆍ공정성 제고 방안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정책실명제ㆍ사업이력제ㆍ내부신고제 도입 자체는 방향이 맞지만, 담당자들이 책임 부담을 이유로 적극적인 사업 추진을 꺼리게 되는 복지부동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외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방향 자체는 옳지만, 선택과 집중이라는 기조가 결국 EDCF 전체 파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며 “수원국과의 신뢰 훼손, 상생기여금 부담, 심사 강화까지 겹치면 기업들 입장에서는 EDCF 사업이 갈수록 매력 없는 시장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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