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영원히 품은 목포와 고하도…“평생 바라보며 그 아픔 반복해야”

기민도 기자 2026. 4. 14. 05: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우리는 이제 세월호를 평생 봐야 합니다. 일년 열두달, 그 아픔을 반복해야 합니다."

전남 목포신항 바로 맞은편 고하도에서 사는 강하성(58) 어촌계장은 지난 10일 이렇게 말하며 세월호를 품었다.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돼 있는 세월호 선체는 고하도로 옮겨져 2030년 말을 목표로 체험관·기억관으로 거듭난다.

목포는 2017년 3월31일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임시 거치되면서 '세월호'와 우연히 연결됐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12주기
지난 10일 전라남도 목포신항에 임시 거치돼 있는 세월호.

“우리는 이제 세월호를 평생 봐야 합니다. 일년 열두달, 그 아픔을 반복해야 합니다.”

전남 목포신항 바로 맞은편 고하도에서 사는 강하성(58) 어촌계장은 지난 10일 이렇게 말하며 세월호를 품었다.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돼 있는 세월호 선체는 고하도로 옮겨져 2030년 말을 목표로 체험관·기억관으로 거듭난다. 이와 관련해 2023년 12월에 열린 주민설명회가 열렸을 때 강 계장은 주민들과 함께 ‘결사반대’라고 쓴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르고 나타나 이전에 반대했다. 강 계장은 “그 자리에 유가족들도 왔는데, 솔직히 서운했을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제 딸이 ‘이게 나라냐’고 묻는데,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렸다”는 강 계장이 반대 활동에 나선 것은 ‘속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고하도에 선체를 거치한다는 설문조사를 하면서도 정작 고하도 주민들에게 미리 설명하지 않은 것에 분노했습니다.” 앞서 목포시는 2020년 7월 시민 설문조사(시 인구의 5.8%인 1만3092명 참여)를 실시해 세월호 선체를 고하도에 거치하는 안에 74%가 찬성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2020년 8월 고하도를 거치 장소로 결정했다.

강호성 고하도 어촌계장이 지난 10일 전남 목포 고하도 매립부지 예정지에서 세월호 선체가 옮겨올 곳을 가리키고 있다.

2024년부터 유가족, 해양수산부, 지방자치단체 등과 함께 지역상생협의회를 하면서 고하도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었다. 해수부 세월호후속대책추진단 관계자는 “한 공간에 있는 것도 불편해하던 유가족과 고하도 주민들이 지역상생협의회를 통해 서로의 아픔과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김봉남(78) 고하도 전 통장은 “유가족과 우리가 서로를 동정하는 마음이 똑같다”고 했다. “정부를 이길 수는 없다”는 현실론도 ‘결사반대’ 대신 ‘지역 발전’을 요구한 이유다.

목포는 2017년 3월31일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임시 거치되면서 ‘세월호’와 우연히 연결됐다. 2014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이 목포한국병원에 이송되면서 목포가 초기부터 추모의 공간이 됐던 점,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이 비교적 활발했던 점은 목포가 세월호를 품을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10년째 목포에서 세월호 펼침막(현수막)을 제작한 김환석씨는 “가장 아픈 유가족들을 또 논쟁의 공간에 세워둘 수는 없었다”며 “목포에서 논쟁 없이 세월호를 품어보자고 했던 것”이라고 했다.

세월호잊지않기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 회원들이 지난 10일 전라남도 목포시 안산동에서 세월호를 추모하는 현수막을 걸고 있다.

이런 흐름에는 묵묵히 세월호와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다. 지난 10일 오전 11시 목포시 연산동 고하대로변. ‘외지’에서 오는 차들이 세월호 선체가 있는 목포신항이나 진도 팽목항으로 갈 때 지나가야 하는 길목. 아픈 4월이 왔음을 알리고, ‘세월호’를 찾는 이들을 다독이는 펼침막이 이날 이곳을 노랗게 물들였다.

이날 펼침막 작업을 총괄한 김재혁 세월호잊지않기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실천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은 “매년 4월 현수막을 게시하면서 이곳이 ‘추모의 거리’ 비슷하게 됐다”고 했다. 이날 달아야 할 펼침막은 84개였다. 이날 2시간20분 동안 3차선 도로에서 3차로를 막고 펼침막을 거는 동안 자동차 경적은 한번도 울리지 않았다. 3차로를 이용하던 차들이 차로를 변경하는 동안 교통 체증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단 한명의 시민도 항의하지 않았다. 최응재 실천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은 “예로부터 정권으로부터 소외받았던 목포는 시대적 아픔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글·사진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