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은 칭찬인데 ‘암컷’은 왜 경멸의 말인가… 시몬 드 보부아르

이한수 기자 2026. 4. 1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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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1986년 4월 14일 78세
1955년 중국 베이징 톈안먼 행사에 참석한 프랑스 작가 보부아르(왼쪽)와 사르트르.

1949년 마흔한 살 프랑스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가 쓴 ‘제2의 성’은 “전후 페미니즘 운동을 이끈 경전”으로 평가된다.

책 출간 50주년을 맞은 때인 1999년 홍사중 조선일보 논설고문은 “명성의 절정에 있는 여류 작가 보봐르의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진다”라고 주장하고 나선 이 책의 ‘인류 역사 재구축 작업’은 여간 충격적인 것이 아니었다”면서 “여성의 평등한 권리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던 때에 여성이 교육, 직업 선택, 배우자 선택에 있어 완전히 자유로워야 하며 출산의 자유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보봐르의 ‘제2의 성’은 전후 세계 페미니즘 운동의 새 출발점을 획하는 것이었다”(1999년 5월 31일 자 23면)고 평가했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실존의 사랑'. 1964년 11월 26일자 4면.

‘여자란 암컷이다. 이 암컷이라는 말은 여자를 정의하기에 충분하다. 남자의 입에서 암컷이란 형용사는 경멸하는 말처럼 발음된다. 하지만 남자는 자기의 동물성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그 반대로 그를 가리켜 저건 수컷이야 하면 더욱 득의만만해진다. 이 암컷이라는 말이 경멸의 언사로 들리는 이유는 여자를 자연 속에 놓아두지 않고 그녀의 섹스(性) 속에 감금시키기 때문이다.’(보부아르 ‘제2의 성’)

출간 당시엔 성행위에 대한 직설적 표현과 남성 중심 사회를 향한 과격한 주장으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가톨릭 작가 모리악은 ‘제2의 성’을 가리켜 ‘포르노’라고 혹평하면서 반(反)보봐르 운동을 이끌었다. 교육자들은 청소년들이 직설적 성 표현을 쓴 이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고 난리를 쳤다. 좌파도 보봐르를 공격했다. 여성 해방은 노동자 해방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므로 여성들이 분파적 행동을 벌이지 말라는 것이었다.”(1999년 5월 31일 자 23면)

1974년 6월 11일자 4면.

보부아르가 1929년 사르트르와 함께한 ‘계약 결혼’은 늘 화제로 따라다녔다. 1964년 사르트르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됐을 때도 주목받았다. 둘의 관계는 ‘프랑스의 지성 사르트르와 보봐르의 실존의 사랑/ 고등사범 동창… 2년간의 계약 결혼으로 맺어져/ 변함없는 애정 근 30년/ 동서(同棲)하면서 서로 바람피는 걸 이해’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1999년 6월 문화면 기획 ‘천재들의 지성 탐험-20세기 사상을 찾아서’ 보부아르 편에서도 둘의 계약 결혼은 등장한다.

1999년 6월 17일자 19면.

“사르트르의 제안으로 2년 단기 계약으로 시작된 이들의 계약 결혼은 평생 계약으로 발전했다. 결혼식도 하지 않고 자식을 낳지 않으며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한다는 계약 결혼은 사르트르의 분방한 연애 행각으로 보부아르를 종종 고통스럽게 했지만, 보부아르에게 문학적 영감과 소재를 준 것도 사실이다.”(1999년 6월 17일 19면)

보부아르는 자신이 ‘제2의 성’에서 ‘여자는 여자로 만들어진다’고 비판한 점을 스스로도 극복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는다. 미성년 여자 제자들과 동성애를 즐기고, 그 제자들을 사르트르의 잠자리에 보내는 행각도 벌였다. 1996년 그 제자 중 하나인 비앙카 람블린이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관계를 폭로한 책이 출간됐다.

1999년 5월 31일자 23면.

“람블린이 속속이 들여다 본 그들의 내밀한 생활에 의하면 말이 계약결혼이지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사실상 아내였으며 보부아르는 올가(그녀의 소설 ‘초대받은 여자’에 등장하는 애인의 모델)나 람블린 이외에도 젊은 여제자들을 계속 사르트르에게 바치면서 한편 질투심으로 갈등과 고민에 빠졌었다는 것이다. (…) 겉으로 보기에 특이한 삶의 방법으로, 새로운 성 모랄의 창시자로서 계속해서 매스컴의 조명을 받고 인기를 누려온 이들은 쇼맨십에 능란한 프로들이었는지도 모른다.”(1996년 6월 16일 자 시론)

2015년 7월 9일자 A25면.

보부아르도 사르트르처럼 다른 상대와 사랑을 나누었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소설가 넬슨 앨그렌에게 1947년부터 1964년까지 17년간 보낸 연서가 훗날 책으로 묶여 나왔다. 보부아르는 39세 때인 1947년 3개월간 미국을 여행했다. ‘제2의 성’을 내기 2년 전이었다.

“편지는 1947년 2월 시카고 근교 앨그렌의 집에서의 단 이틀간 사랑 직후부터 시작된다. 사르트르와는 거의 남남 같을 때고 앨그렌도 이혼한 상태였다. 처음 점잖게 “친애하는”으로 시작한 편지는 5번째 편지에 이르면 “시카고의 소중한 내 사랑”으로, 7번째 편지에선 마침내 “사랑하는 나의 남편”으로 호칭이 변한다. 파리 근교 들판의 야생화를 꺾어 편지에 동봉하고, 연인의 편지가 도착했을까 봐 계단을 뛰어오르고, 우편 파업에 초조해하고, 연인에게 제발 꿈속에 좀 나타나 달라고 안달하는 보부아르의 모습은 ‘불륜’이란 단어로 몰아세우기엔 너무나 사랑스럽다.”(1999년 10월 12일 자 35면)

29세 때인 1937년부터 4년간 8세 연하 자크 로랑 보스트에게 보낸 편지가 2004년 책으로 출간되면서 둘의 연인 관계도 주목받았다.

“보부아르는 장 폴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 상태였고, 파리의 몰리에르 고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무렵 사르트르는 소설 ‘구토’를 펴내 문단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보스트는 파리의 대학생이었고, 사르트르의 제자였다. (…) 보스트와의 사랑은 비밀이 아니었다. 보부아르는 당시 사르트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엄청나게 즐거운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났다”라며 “그건 내가 보스트와 3일 전에 함께 잤다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2004년 6월 17일자 A21면)

1986년 4월 15일자 7면.

1986년 4월 15일자 부음 기사는 보부아르를 “여권 운동의 교과서적인 인물”로 평가했다.

“14일 타계한 ‘제2의 성’ 저자이며 여성 운동의 교과서적 인물인 시몬느 드 보브와르는 세 가지 점에서 우리 독자들에게 친숙한 여성이다. 첫째는 사르트르와의 계약 결혼을 했다는 특이한 사실이고, 두번째로는 ‘초대받은 여인’ ‘중국 관리들’ ‘타인의 피’ 등 실존주의 소설로 불문학도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세 번째로는 여성운동의 이론적 바탕을 제공하고 있는 그의 저서 ‘제2의 성’이다.”(1986년 4월 15일 자 7면)

보부아르는 파리 몽파르나스 사르트르 묘소에 합장됐다. 사르트르는 보부아르보다 6년 앞선 1980년 4월 15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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