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천 칼럼] 이란전에서 드러난 美 군사력의 한계

2026. 4. 14. 05: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첨단 공중전력에도 이란 굴복 못시켜
피해 수반하는 지상전 못하는 美 약점 탓
동북아 긴장지역선 ‘한계’ 극복할지 의문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는 ‘미군의 희생 없이 공중전만으로 전쟁에 이길 수 있다’라는 믿음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인식의 출발점은 1991년 제1차 걸프전이다. 이들은 이 전쟁을 공중전으로 이미 승부가 결정된 사례로 평가해 왔다. 정밀유도무기를 활용한 ‘외과수술식(surgical precision)’ 공중타격으로 지상전이 시작되기 전에 전쟁은 사실상 끝났으며, 이후의 지상전은 ‘포로 수용 작전’에 가까웠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과는 달리 공중전이 종료된 이후에도 이라크군 지도부는 상당한 수준의 지휘·통제·통신 체계(C3I)를 유지하고 있었고, 주요 부대들은 무기와 장비, 보급 능력 역시 크게 훼손되지 않은 상태였다.

공중폭격으로 최전선에 배치된 보병들이 큰 피해를 본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것이 곧 이라크군 전체의 전투 능력 붕괴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지상전 개시 당시 이라크군은 공화국수비대를 중심으로 비교적 높은 사기와 응집력을 유지한 채 미군과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제1차 걸프전이 단기간에 끝난 것은, 미군의 지상전력이 압도적인 전투 수행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광활한 사막이라는 전장 환경 속에서 최고의 훈련과 첨단무기로 무장한 미 지상군 앞에 이라크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제1차 걸프전은 공중전이 아니라, 지상전으로 이긴 전쟁이었다.

미국이 1990년대 이후 수행한 모든 대규모 전쟁은 예외 없이 공중전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언제나 지상군의 투입이 뒤따랐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공중폭격이 시작되기 훨씬 전인 9월 26일, CIA 정예 요원들로 구성된 ‘조 브레이커(Jawbreaker)’ 팀이 이미 아프가니스탄에 침투했다. 이들은 탈레반 정권을 전복하고자 했던 ‘북부동맹’ 지도부와 접촉해 정치적·군사적 협력을 이끌어냈고, 자금과 무기, 정보 지원을 제공했다. 미국 주도의 지상전이 수월하게 전개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공중폭격이 아니라, 험준한 아프가니스탄 지형에 익숙하고 실전 경험이 풍부한 북부동맹의 게릴라 전사들을 활용한 대리전(代理戰)에 있었다.

2003년 제2차 걸프전, 즉 이라크 전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는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로 상징되는 공중전의 결과라기보다, 미군 지상군의 신속한 진격과 정권 내부의 균열이 결합된 결과였다. 전쟁 이전부터 CIA는 이라크 군·관료 엘리트 일부를 포섭하고, 정권의 핵심을 지탱하던 지휘·통제 구조를 약화시키는 비밀공작을 수행해 왔다. 이러한 사전 작업이 있었기에 바그다드에서 시가전은 상대적으로 쉽게 전개될 수 있었다. 후세인 정권은 공중폭격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지상군의 진입과 내부 붕괴로 사라졌다.

그렇다고 공중전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공중전은 전통적인 핵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첫째, 제공권을 확보함으로써 지상군이 안전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둘째, 광범위한 정찰·감시·정보 수집(ISR)을 통해 적의 배치와 이동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지상전 계획 수립의 기초 자료를 제공했다. 셋째, 근접항공지원(CAS)을 통해 지상군의 돌파와 기동을 직접적으로 지원했다. 다시 말해 공중전은 지상전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지상전이 승리할 수 있도록 조건을 조성하는 기능을 담당해 왔다.

이란 전쟁에서 미국은 ‘세계 최강 군사력’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인공지능(AI)이 결합된 정밀 타격, 압도적인 공중·해상 전력, 그리고 전 지구적 작전 능력은 이전의 어떤 전쟁보다도 진화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란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장대한 분노(Epic Fury)’ 작전은 이란의 주요 군사 자산과 방공망, 군수 인프라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그러나 핵능력은 물론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 지하화된 미사일 기지, 드론 운용망, 분산형 무기 체계는 공중전만으로는 제거되지 않았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압도적인 전략적 거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바레인에는 미 해군 제5함대 사령부가 자리하고 있고, 카타르의 ‘알우데이드’ 공군기지는 중동 지역 최대의 미군 전진기지로서 공중작전의 허브 역할을 수행했다. UAE에는 ‘알다프라’ 공군기지가 있어 정찰·감시·정밀타격 임무를 뒷받침했고, 인도양 한가운데에 있는 ‘디에고 가르시아’ 섬은 장거리 폭격기와 원양 해·공군 전력의 핵심 거점이었다. 이 기지들은 ‘페르시아만–호르무즈 해협–인도양’을 하나의 작전 공간으로 연결하는 미국의 압도적인 원양작전 능력을 상징한다.

그럼에도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열지’ 못하고 휴전에 돌입했다. 이는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호르무즈 해협을 장악할 수 있다’라는 오래된 믿음이 깨진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제공권을 장악하고, 해군력을 전개하고, 광범위한 정찰과 타격을 수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협을 둘러싼 소모적이고 위험한 국지전 국면으로의 진입을 미국은 끝내 회피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제2차 걸프전 이후 누적된 전쟁 피로감 속에서, 미군의 상당한 희생이 예상되는 지상전은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감내 불가능한 선택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약점을 이란은 정확히 간파했고, 비대칭 전력과 소모전을 통해 미국의 군사력을 ‘제압’하기보다는 ‘묶어두는’ 전략을 구사했다.

결국 이번 전쟁은 미국이 여전히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 질문은 결코 이란에서 끝나지 않는다. 만약 중국이 말라카 해협을 실질적으로 장악한다면, 미국은 열 수 있을까.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에서는 과연 다른 결말이 가능할까.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