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사태 장기화… 호주에 휘발유-美 항공유 수출제한 딜레마
정유4사 수출 호주 16.8% ‘최대 고객’
반대로 한국은 LNG 32% 호주서 수입
전문가 “우리가 석유제품 수출 제한땐 美-호주도 원유-LNG 보복 나설수도”

13일 한국이 석유제품의 수출을 제한할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묻자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가 한 말이다. 최근 호르무즈발 원유 수급 차질이 길어지면서 국내에서 정제한 휘발유, 경유의 수출을 금지해 위기를 넘기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쉽게 결정해선 안 되는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이 휘발유, 항공유 등을 수출하는 미국, 호주가 반대로 우리에게 원자재를 공급하는 ‘글로벌 공급망 사슬’에 엮여 있기 때문이다.
● 美·호주와 얽힌 원유 공급망

석유제품 중 항공유로만 범위를 좁히면 미국이 최대 고객이다. 지난해 항공유 중 미국으로 간 물량이 전체의 44.9%에 달했다. 1년 만에 14.3% 늘었다. 미국은 산유국이지만 주로 경질유가 많아 중동산 중질유에서 많이 나오는 항공유는 상당수 수입에 의존한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란과의 전쟁 발발 이후 한국의 대미 석유제품 수출량 축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현지 시간) “호르무즈 해협이 여전히 막힌 가운데 최대 연료 공급 국가인 한국과 인도가 연료 수출량을 줄였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상황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서부인 캘리포니아주는 항공유와 휘발유의 각각 20%, 25%를 수입해서 쓰는데, 대부분 한국산이다.
한국은 반대로 미국과 호주로부터 원유, 액화천연가스(LNG)를 대거 수입한다. 한국의 미국산 원유 수입 비중은 전체의 약 17.0%로 사우디아라비아(33.6%)에 이은 2위다. LNG는 호주가 최대 수입국으로 32.8%다. 미국과 호주는 한국의 ‘탈중동’ 에너지 공급망 구축을 위한 핵심 교역국이다. 만약 한국이 이번 위기를 이유로 이들에게 휘발유, 항공유 공급을 끊는다면 미국과 호주는 원유, LNG 수출을 끊는 ‘자원 보복’에 나설 수 있다.

한국 정부와 정유업계는 여기에 비축유 문제까지 ‘딜레마’로 떠올랐다고 보고 있다. 호르무즈발 원유 공급 차질이 심화돼 한국이 비축유를 풀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릴 경우, 미국과 호주 등 각국에 대한 석유 수출을 유지할지 결정해야 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비축유는 국가적 비상 상황일 때 풀도록 돼 있는데 이 경우 비축유는 풀면서 석유 수출을 유지한다는 모순이 생긴다”며 “비축유 방출까지 가는 건 최대한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는 비축유를 간접 활용하는 ‘스와프 제도’를 운영 중이다. 민간 정유사가 해외에서 원유를 확보해 선적하면, 정부가 비축유를 먼저 공급하고 이후 실제 원유가 도착하면 교환하는 방식이다. 이는 비축유를 직접 시장에 푸는 ‘방출’과 다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4, 5월까지는 비축유를 방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프타 부족에 따라 검토 중인 화학제품 수출 제한 확대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나프타 수출을 전면 금지했고, 이를 합성수지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한국산 합성수지를 많이 수입하는 베트남 등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베트남이 지난해 수입한 플라스틱 원료 중 16.0%가 한국산으로 전체 2위였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은 “각종 석유제품 수출 제한은 파생되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아 반드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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