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헝가리의 봄"… 16년 독재 종식에 트럼프∙푸틴 울고 EU 웃었다

정승임 2026. 4. 1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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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현지 르포]
전체 199석 중 138석 확보한 야당 압승
"국민 여러분이 헝가리 역사 새로 썼다"
16년 만의 정권교체에 거리로 나온 시민들
승리 자축하는 자동차 경적 소리  밤새 울려
헝가리 혁명 당시 "러시아는 집으로" 구호도
12일 치러진 헝가리 총선에서 16년 만에 정권교체가 확실시되자 수도 부다페스트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부다페스트=AP 연합뉴스

헝가리에 16년 만에 봄이 찾아왔다. 12일(현지시간) 실시된 총선에서 헝가리 유권자들은 오르반 빅토르(62) 총리의 16년 장기 독재를 끝낼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개표 결과 마자르 페테르(45)가 이끄는 제1야당 티서가 전체 199석 중 138석을 확보해 정권교체가 확실시되자, 시민들은 수도 부다페스트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의회 과반은 물론 개헌 요건(3분의 2 이상)을 충족하는 절대다수 의석이다. 집권 여당인 피데스는 55석에 그쳤다.

선거 5일 전 JD 밴스 부통령을 급파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르반 구하기’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여론 공작도 통하지 않았다. 부정부패를 일삼은 오르반 정권하에서 치솟은 물가, 낙후된 의료시스템, 저임금이 시민들을 투표장으로 향하게 했다. 투표율은 마감 직전 기준 77.8%로 역대 최대치다.

시민들은 거리를 도배하다시피한 오르반 정권의 흑색선전 포스터를 찢는가 하면 밤새워 승리를 자축하는 노래를 불렀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시민들은 서로의 손뼉을 마주치는 하이파이브로 반가움을 표했고 승리를 기념하는 자동차 경적 소리는 13일 새벽까지 계속 울렸다.


”부다페스트의 봄” 이끈 오르반의 퇴장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12일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부다페스트=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는 집으로 가라”는 뜻의 “루스키크 하자(Ruszkik haza)”도 거리 곳곳에서 들렸다.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소련군에 맞서 시민들이 외쳤던 상징적 구호다. 역설적이게도 소련군 진압으로 시민 3,000명이 숨지면서 좌절된 ‘부다페스트의 봄’을 완성한 건 오르반 총리였다. 1989년 청년 변호사였던 그는 영웅광장에서 ‘소련군 철수’를 공개 요구한 명연설로 국민적 영웅이 됐다. 이것이 훗날 그를 최연소이자 최장수 총리로 만들었지만, 장기 집권하며 ‘친러시아 독재자’로 돌변한 그는 이날 투표 종료 2시간여 만에 결과에 승복하는 기자회견으로 불명예 퇴장했다.


장기독재 종식한 마자르는 누구?

12일 치러진 헝가리 총선에서 승리한 티서당의 대표 마자르 페테르가 수도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변에 마련된 축하무대로 이동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부다페스트=타스 연합뉴스

마자르 대표는 이날 다뉴브 강변에 마련된 무대에서 “국민 여러분이 헝가리 역사를 새로 썼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언론과 사법부, 재계를 장악한 오르반 체제하에서 정권 교체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허약한 야당은 툭하면 분열했고 오르반은 여당에 유리하게 선거구와 선거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집권 여당에서 장기간 오르반과 한솥밥을 먹었던 마자르가 대안 세력으로 급부상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치 엘리트 집안 출신이지만 무명에 가까웠던 그는 2024년 2월, 오르반 정권의 ‘꼬리 자르기’에 반발해 탈당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르반 정권이 정치 스캔들로 번진 ‘고아원 성학대 은폐 사건’을 당내 유력 여성 정치인 책임으로 돌리자 “여성의 치마 뒤에 숨지 말라”며 공개 비판한 것. 이후 군소 정당 티서에 합류한 그는 재창당을 선언했고 그해 유럽의회 선거에서 29.6%를 득표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환호한 EU... 축하 메시지 잇달아 내놔

12일 헝가리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16년 만의 정권교체가 확실시되자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인근에서 자축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무인기(드론)가 촬영했다. 부다페스트=로이터 연합뉴스

마자르 대표는 이날 “헝가리는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강력한 동맹이 될 것”이라며 대대적 변화를 예고했다. EU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한 우크라이나의 900억 유로(약 154조 원) 대출 지원 등에서 매번 거부권을 행사한 오르반 총리와는 다른 노선을 가겠다는 선언이었다. 헝가리가 부패국가로 낙인찍히면서 끊긴 EU 지원금도 찾아오겠다고 했다.

‘유럽의 이단아’였던 오르반이 낙마하자 유럽 지도자들은 발 빠르게 환영 메시지를 내놓았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헝가리는 유럽을 선택했다”며 반겼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헝가리 국민이 EU의 가치와 유럽에서 헝가리 역할에 얼마나 애착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승리”라고 축하했다. 오르반 총리와 설전을 벌였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역시 “우크라이나는 헝가리와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체면 구긴 트럼프와 푸틴

반면 내정간섭 논란에도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AP통신은 “오르반의 패배는 트럼프가 해외 지도자를 지원할 능력뿐 아니라 해외 선거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꿀 능력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EU 내 우군이었던 오르반의 퇴장으로 유럽에서 러시아의 영향력도 줄어들게 됐다.

부다페스트= 정승임 특파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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