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6년 만에 다시 다는 노란 리본

허경주 2026. 4. 1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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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닷새 앞둔 11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서 한 어린이가 노란 리본에 쓰인 추모 메시지를 읽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세월호 타령 좀 그만해라. 재수 없게 교통사고에 왜 자꾸 의미를 보태나.”

A는 지난 2020년, 4년 가까이 달고 다니던 노란 리본을 가방에서 뗐다. 걸을 때마다 고리에 매달린 채 흔들리던, 까만 가방과 대비돼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던 샛노란 리본이었다.

자발적 선택은 아니었다. 길에서, 지하철에서 낯선 이들로부터 “아직도 세월호 염불이냐”며 시비가 반복되자 가족이 "봉변당할 수 있다”며 몰래 떼어냈다고 했다. A는 “납득이 되진 않지만 혐오에 맞서기엔 의지가 부족했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참사 12년, 그 잔인했던 봄날을 기억하는 일은 때론 위험하고, 외롭고, 피로한 일이 됐다. ‘잊지 않겠다’던 다짐은 시간과 정쟁 속에서 조금씩 닳아갔다. 누군가는 지겹다며 귀를 막았고, 누군가는 아픈 기억을 들추기 두려워 고개를 돌렸다. 계절이 돌아와야 비로소 그날을 떠올리는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기억을 놓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한국일보가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앞두고 만난 시민들은 여전히 가방에, 손목에, 옷깃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에 각자의 방식으로 노란 리본을 지켜내고 있었다.

거창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다. 참사 당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기억이 마음의 빚으로 남아서, ‘왜 구조하지 못했는가’ ‘왜 침몰했는가’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아서, 유가족이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지 않길 바라서, 그리고 기억하지 않으면 또다시 반복될 것 같아서.

재난 앞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사회를 향한 항의와, 다시는 비극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는 염원이 뒤섞인 다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안전한 세상을 바라는 가장 낮은 곳에서의 연대이기도 했다. 단순히 ‘잊지 않겠다’가 아니라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노란 리본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이 기억은 현재진행형이다. 망각이 무관심을 넘어 다음 참사의 불씨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목격해왔다. 세월호 이후 최대 인명사고로 기록된 이태원 참사,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까지,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 되풀이됐다. 세월호의 교훈을 외면하고 기억을 지우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 사회 안전망도 그만큼 속절없이 마모됐다.

참사 12년째, 노란 리본은 그때의 슬픔과 아픔 그리고 각오를 잊지 말라고 우리 사회에 끊임없이 말을 건다. “우리 사회가 정말 안전해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때 리본을 뗄 수 있을 것 같다”는 한 시민의 말처럼,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이 기억을 내려놓을 수 없다. 이마저 외면하는 한, 우리 사회는 같은 비극을 다른 이름으로 반복하는 위태로운 항해를 멈출 수 없다.

A의 이야기는 사실 나의 경험담이다. 리본을 떼어냈던 비겁한 기억을 고백하는 이 글은, 내가 6년 만에 다는 또 다른 노란 리본이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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