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원 칼럼] 이 대통령 X가 쏘아올린 공

김희원 2026. 4. 1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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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관련 엑스(X) 글 논란을 두고 SNS 사용에 신중하라는 비판은 틀리진 않지만 너무 단순하다.

이 새로운 고민의 시작점이 이 대통령의 X 논란이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이 대통령이 "위안부 강제, 유태인 학살과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언급한 것에 발끈해 "강력한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했지만 세계의 정서는 더 이상 이스라엘과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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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에서 열린 이스라엘-이란 공습 관련 대통령실 경제안보 긴급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SNS 자제하라 비판이 끝 아닌 이유
인류 보편 가치 더 이상 침묵 안 돼
전략적 모호성 넘는 외교 원칙 있어야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관련 엑스(X) 글 논란을 두고 SNS 사용에 신중하라는 비판은 틀리진 않지만 너무 단순하다. 논란의 함의를 축소한다. 언제 한국의 대통령이 우리나라와 직접 관련 없는 국제 사안에 입장을 밝힌 적이 있었던가? 한국은 미국을 준거 삼아 냉전 시대를 지났고 전략적 모호함으로 지금껏 버텼다. 줄타기 외교를 해야 하는 한국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문해야 한다. 선진국이 된 한국이 언제까지 국제사회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방기할 것인가. 위안부 동원 비판에 동참해 달라고 촉구하면서 다른 문제에 입 다물고 모른 척해도 되는가. 아니라면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어떤 메시지를 낼 것인가. 이 새로운 고민의 시작점이 이 대통령의 X 논란이다.

지금 세계는 규칙도, 가치도 흔들리는 급변기다. 미국-이란 전쟁이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이 대통령이 “위안부 강제, 유태인 학살과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언급한 것에 발끈해 “강력한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했지만 세계의 정서는 더 이상 이스라엘과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레바논 공습, 장기간 가자 봉쇄·폭격 등으로 이스라엘은 침략국으로 각인되고 있다. 정당성 없는 전쟁에 유럽의 우방들은 참전을 거절했다. 몇몇 정상들은 강도 높게 비판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이 전쟁이 불법적이며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자 인류의 이익에 반한다”고 전쟁 반대를 명시한 게 대표적이다. 트럼프 지지층인 마가(MAGA) 세력 내부에서조차 찬반이 갈리고 있다. 균열은 깊어지고 미국은 고립되며 가치는 전복되는 중이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줄타기를 한들 어떤 줄을 타야 할지 그것부터 난제다.

외교적 충돌 우려와 달리 SNS에서는 국제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오래도록 무시당하고 외면받던 팔레스타인인은 이 대통령의 메시지와 영상 공유가 “응답받은 기도”라며 절절히 화답했다. 이 대통령이 “끊임없는 반인권적, 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전 세계인들의 지적을 한 번쯤은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이라고 이스라엘 외교부에 재반박한 것을 두고 “유럽 정상들도 이렇게 못했다”는 호응이 쏟아졌다. 유례없는 주목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침묵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이 대통령이 2년 전 영상을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올린 점을 보면 이번 논란은 우발적으로 시작된 게 맞을 것이다. 대통령이 SNS에 개인 견해를 밝히는 건 분명 위험이 있다. 우리에겐 약육강식이 작동하는 야만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정교한 비전이 필요하다. 어떤 가치에 지지를 표명하고 연대할 것인지 더 깊이 있는 원칙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참고할 비전을 제시한 이가 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1월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세계 질서의 균열, 좋은 이야기의 종말, 강대국의 지정학이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 거친 현실”을 진단하고는 “테이블에 앉지 못하면 메뉴판에 오를 것”이라며 중견국 연대를 촉구했다. 가치와 이해에 따라 사안별 연합을 만들어 대응하는 “원칙적이면서 실용적인” 비전을 보였다. ‘가치의 힘’을 존중하며 ‘힘의 가치’를 키우고 그럴 결심을 지닌 것이 캐나다의 길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보여준 비전의 용기, 언어의 품격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은 이제 자제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질서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국익을 지켜야 한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지하는 것으로써 명분을 얻고 내 편을 만들어야 한다. 세계가 기대하는 한국의 책임을 파악하고 부응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이미 시작한 일이다. 품격 있는 언어가 그것을 이루도록 도울 것이다.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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