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파는건데…” 마약류 진통제, 전통시장서 버젓이 거래
보따리상들, 과자 사이에 약 끼워
선박 통해 시장 곳곳으로 들여와
관세청 “소량은 엑스레이 안잡혀”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A시장.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비타민 같은 건강보조제와 타이레놀 등을 가판대에 쌓아 놓고 파는 상인이 여럿 있었다. 그중 한 상인에게 “진통제 ‘이브(EVE)’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상인은 귓속말로 “숨겨놨는데 하나 꺼내줄까요?”라고 은밀히 제안하듯 말했다.
서울 중구의 B시장에서도 기자가 확인한 것만 점포 8곳에서 이브를 팔고 있었다. 이 시장 상인들은 “우리가 제일 싸게 판다” “어디서도 이 가격에는 못 구한다”며 사가길 권했다. 시장에서 팔리는 이브 가격은 40정 기준 1만3000~1만9000원. 이는 일본 현지 판매가(7000~1만4000원대)보다 2배 가까이 비싼 가격이다.
이브는 일본산 진통제다. 생리통과 두통에 효과가 좋다고 소문이 나 한때 일본을 찾는 한국인 여행객 사이에서 ‘필수 구매 상품’으로 꼽혔다.
하지만 이브에 포함된 ‘알릴이소프로필아세틸우레아(AIAU)’ 성분이 마약류관리법에서 정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면서, 작년 4월부터 국내 반입이 전면 금지됐다. 그런데 본지가 전통시장을 돌아봤더니 버젓이 거래되고 있었다. 시장 상인들은 “단속에 걸릴까 봐 몰래 숨겨놓고 팔고 있다”고 했다.

이브에 들어 있는 AIAU는 갈수록 더 많은 양을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나는 내성을 유발한다. 내성이 생겨 과다 복용하면 환각과 몽롱한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 또한 혈액 내 혈소판을 감소시켜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고 출혈이 멈추지 않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의사 처방 없이 사고파는 것은 물론 소지하는 것도 불법이다. 세계적으로 퇴출되거나 엄격히 제한되는 추세다.
현행 마약류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마약류는 크게 마약과 대마,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나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지 않은 코카인 등 마약, 뇌전증 치료용이 아닌 대마는 의사 처방에 관계없이 소지·투약·흡입하는 게 불법이다. 향정신성의약품은 반드시 마약류 취급 자격이 있는 의사가 처방하고 환자는 그 처방에 따라 정해진 용도로만 사용해야 한다. 이브에 포함된 AIAU를 비롯해 필로폰, 케타민, 프로포폴 등이 모두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성분마다 처벌 수위는 다르지만, AIAU의 경우 소지하거나 판매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상습적일 경우 최대 15년 이하의 징역으로 가중 처벌될 수 있는 중죄다.
이처럼 처벌 수위가 높은데도 향정신성의약품 성분이 들어간 약품이 전통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단속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른바 ‘보따리상’이 선박 등을 통해 약을 들여올 때 과자 같은 식품 사이에 소량을 끼워 넣기 때문에 세관에서 적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비행기나 선박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하물을 최대한 검사하고 있지만, 약이 소량일 경우 엑스레이만으로는 발견하기 어렵다”고 했다.
당국은 단속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 불법 의약품 판매 관련 단속 의무는 식약처에 있으나, 식약처 측은 “‘의약품 제조·유통 관리 기본 계획’에 따라 불법 판매에 대한 상시 감시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서울 중구 관계자는 “민원이 접수돼야 단속을 나갈 수 있고, 행정 처분 권한이 경찰에 있어 지자체 차원의 독자적인 단속은 어렵다”고 했다. 경찰 또한 신고나 첩보, 혹은 식약처의 수사 의뢰가 있어야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라 단속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당국이 사실상 손을 놓은 사이 향정신성의약품 적발 건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향정신성의약품 관련 사범은 1만9212명으로 2024년(1만7751명)보다 약 8% 증가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지난해 8월부터 올 1월까지 단속을 벌여 검거한 마약류 사범 6648명 중 향정신성의약품 관련 사범이 5666명(85%)으로 가장 많았다. 올해 1~3월 불법 의약품 적발 중량도 2만7768g으로, 전년 같은 기간(1만9551g)보다 42% 증가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명예교수는 “공급자 검거 위주의 방식에서 벗어나 구매를 차단하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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