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지원한 오르반 대패… 헝가리 총선에 EU가 웃었다

12일 실시된 헝가리 총선에서 ‘유럽의 트럼프’로 불린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여당 피데스가 총선에서 참패하며 2010년 이후 16년간 이어진 ‘오르반 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유럽연합(EU)의 대리전으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의 공개 지지를 받았던 오르반이 패배하고 ‘유럽 복귀’를 내건 야당이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서 유럽의 세력 균형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날 총선에서 2020년 창당한 신생 정당 티서(Tisza)는 전체 199석 중 138석을 확보하며 압승했다. 피데스는 기존 의석에서 무려 80석을 내주며 55석에 그쳤다. 티서 의석은 개헌선인 3분의 2(133석)를 넘는 규모다.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은 헝가리의 외교 노선이었다. 오르반 집권 시기 헝가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권과 밀착하며 EU와 갈등을 빚어왔다. 그는 만장일치가 필요한 EU 의사 결정에서 반복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했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제재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올해 2월에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EU 차원의 대출 논의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오르반의 헝가리는 ‘EU의 이단아’로 불렸다.

반면 오르반은 반이민 정책과 기독교 가치 등을 앞세운 트럼프와 이념적으로 밀착했다. 트럼프 역시 선거를 앞두고 “오르반은 훌륭한 일을 해낸 지도자”라며 공개적으로 지지를 보냈다. 마저르 페테르 티서 대표는 ‘유럽 복귀’를 전면에 내세우며 반(反)오르반 노선을 주창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와 유세를 통해 “이번 선거는 헝가리가 러시아 쪽으로 계속 기울 것인지, 아니면 유럽 민주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국민투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유세 현장에서 마저르가 “헝가리가 다시 유럽 국가가 되기를 원한다”고 외치면, 지지자들은 “루스키크 하자(Ruszkik haza·러시아는 떠나라)”를 외치며 호응하기도 했다.
그는 “오르반이 러시아 및 중국과 협력함으로써 성 이슈트반의 역사적 노선에서 이탈하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중세 헝가리의 국왕 성 이슈트반은 11세기 기독교로 개종해 마자르족의 나라 헝가리를 유럽 문명에 편입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지도자다. 외교관 출신인 마저르는 정권이 교체되면 EU 내에서도 반러 성향이 가장 강한 폴란드를 먼저 방문해 오르반 집권기 꼬인 관계를 풀겠다고도 공약했다. 마저르는 이날 총선 승리가 확정된 뒤 “헝가리는 EU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강력한 동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총선 결과를 좌우한 또 하나의 요인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꼽힌다. 최근 헝가리는 낮은 경제성장률(0.7%)과 높은 물가 상승률(4.5%)로 다른 EU 국가보다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다. EU가 헝가리 정권의 법치주의 훼손 등을 문제 삼아 180억유로(약 31조3311억원)의 예산 지원을 유예하면서 재정난이 심화하자 민심은 빠르게 악화했다. 선거 직전까지 낙승을 낙관했던 오르반과 집권당 피데스는 참패가 확정되자 “선거 결과가 고통스럽다”며 패배를 시인했다.
오르반의 퇴진 소식에 유럽 주요 정상들은 일제히 환영 입장을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헝가리는 유럽을 선택했다. 한 나라가 유럽으로의 길을 되찾았다”고 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헝가리 국민이 EU의 가치와 유럽에서의 헝가리의 역할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마저르에게 “강하고 안전하며 무엇보다 단결된 유럽을 위해 힘을 합치자”고 했고,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유럽의 민주주의에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유럽의 평화와 안보, 안정을 위해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며 헝가리 차기 정부를 반겼다. 트럼프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은 가운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헝가리 야당의 승리는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민주주의를 위한 승리”라고 평했다.
해외 투표까지 포함한 최종 결과가 확정된 뒤 명목상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새 국회를 소집하면 첫 의회 본회의에서 마저르 페테르가 차기 총리로 공식 선출된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EU가 유예했던 지원금을 풀면서 양측의 새로운 밀월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장기적으로 유로화 도입까지 논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면 오르반 정권과 밀착해온 트럼프 행정부를 비롯, 유럽의 강경 우파 정당들과의 관계는 소원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7개월 만에 하락 전환
- 與 김영진, 김용 출마 반대 “대법 판결 앞둔 사람 공천한 예 없어”
- 종전 기대감에 6100선 뚫은 코스피, 연초 대비 상승률 ‘세계 1위’
- 대한항공 유류할증료 역대 최고로... 5월 인천~뉴욕 왕복 112만원
- “이란, 호르무즈 개방안 제시…오만 영해 통항 시 공격 자제”
- ‘친환경’ 신발 기업 올버즈, AI 기업으로 변신 선언하자 주가 600% 폭등
- 못 말리는 대통령 SNS 애착이 부른 외교 마찰⋯ 참모들은 전전긍긍
- 7000선 뚫어낸 미 S&P500, 70년만에 700배 불어나
- 슬라이스 방지 특화된 한국 브랜드 유틸리티, 8만원대 조선몰 단독 특가
- “구준엽, 故서희원 그림 그리며 건강 회복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