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보단 스펙이 먼저"… '학생 자치' 사라지는 광주 대학가
취업난 속 '생존형 개인주의' 심화
학생들 "학생회는 행정 보조일 뿐"
전문가 "권익 대변 기능 상실 우려"

광주광역시 주요 대학교 학생 자치 기구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과거 선거 무산이나 탄핵 등 특수한 위기 상황에서만 꾸려지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가 이제는 대학가에서 당연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극심한 취업 경쟁 속에서 이른바 '생존형 개인주의'가 심화하면서, 학생회가 본연의 목소리를 내는 자치 기구가 아닌 단순 '행정 처리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뼈아픈 지적이 나온다.
13일 광주지역 주요대학에 따르면 2026년 현재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 단과대학 중 대다수가 학생회장 입후보자 부재나 투표율 미달로 인해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전남대는 공과대학, 사회과학대학, 생활과학대학, 예술대학, 간호대, AI융합대학, 건축학부 등 다수의 단과대가 비대위 체제로 전환됐다.
조선대도 간호학과, 경영정보학부 등 여러 학부에서 학생회 대신 비대위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반면 광주대학교, 동신대학교, 호남대학교는 모두 비대위가 아닌 학생회로 운영되며 전남대·조선대와는 대조를 이뤘다.
학생회 부재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남대의 경우 지난 2019년과 2020년 총학생회가 부재했고, 지난해에도 인문대와 사범대 등에서 입후보자가 나오지 않는 등 최근 몇 년 새 비대위 운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왔다. 이 현상이 빈번해지며 학교 구성원들조차 이를 일상적인 풍경으로 받아들이는 실정이다.
학생들의 싸늘한 무관심 기저에는 팍팍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2월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25 한국교육종단연구-초기 성인기의 생활과 성과(III)'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친 대학생들 사이에서 당장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삶을 유지하며 하루를 버텨내는 '생존형 개인주의'가 뚜렷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대학생들의 가치 지향점은 '관계 중심'에서 철저한 '성취 중심'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최우선 가치로 '명예'(4.78점)와 '자기 성장'(4.62점)을 꼽으며 학생회 같은 단체 활동보다는 개인의 성취를 중시했다.
조선대 재학생 한동우(22) 씨는 "취업으로 인한 불안정한 상황과 '공익 활동' 자체에 대한 무관심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낸 듯하다"며 "개인주의가 심화되면서 공익을 위해 스스로 나서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학생회가 학생의 권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단순 업무에 매몰되어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학생들의 외면을 부추긴다.
한 씨는 "학생회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학생이 드물다"며 "대다수가 학생회를 학교 행정 업무를 돕는 요원으로 인식해, 학교 측에 입장을 전달하고 목소리를 내는 일에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남대 재학생 이모(22) 씨의 의견도 비슷했다. 이 씨는 "지금까지 본 학생회는 그저 '행정처리 기관'이나 '정치인이 되기 위한 발판(스펙)'에 불과했다"며 "의미 있는 변화나 행사를 주도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낀다. 들이는 품에 비해 얻는 가치가 제한적이어서 동참하고 싶다는 인상을 받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학생들의 무관심이나 이기주의로 치부하며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진단한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화 운동을 이끌던 과거 학생회와 달리, 지금은 사회가 정치·경제적으로 안정화되어 학생들이 공익보다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라고 설명했다. 공 교수는 "현재 학생회에 참여하는 학생들 역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부담 속에서 스펙이나 즐거움 등 개인적 가치 실현을 위해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다만 공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대학 본부와의 관계에서 학생의 목소리를 대변할 기구가 제 역할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라며, 학생 개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역설적으로 공동체의 무력화와 '권익 대변자'의 상실로 이어지고 있는 실태를 우려했다.
한편, 학생회 구인난은 비단 지역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권 대학들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연세대는 제58대 총학생회 재선거가 입후보자 부재로 무산됐고, 서울대와 고려대 역시 거듭된 재선거에도 후보가 등록하지 않아 선거를 치르지 못하는 등 대학가 전반에 '학생회 실종' 사태가 확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