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핵심 수사 정보 시스템인 형사사법포털(KICS) 내 공전자기록이 사후에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단순한 수사 미진이나 법리 적용의 오류를 넘어, 국가 기관이 사법 시스템에 등록된 공문서를 특정 시점에 임의로 교체했다는 고소인의 주장은 사법 체계 전체의 신뢰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공식 바코드 있는 16쪽 vs 출처 불명 19쪽
사건의 발단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소인 회사 세종씨씨는 천모씨 등 6명을 2020년 5월 480억원 규모의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13일 고소인 등에 따르면 이 사건을 맡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이모 검사는 2023년 2월 16일, 전격적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고소인은 다음날인 17일 서울중앙지검 민원실에서 공식 바코드와 문서확인번호가 찍힌 16쪽 분량의 불기소결정서를 발급받았다.
그런데 피의자 측 변호인들은 14일 뒤인 3월 3일 서울중앙지법 주식양도대금 청구 소송 재판부에 바코드조차 없는 19쪽 분량의 문건을 불기소결정서라며 증거로 제출했다. 또 피의자 측은 3월 6일 손해배상 소송 재판부에도 증거로 냈다. 불기소결정서에는 고소인이 발급받은 공식 문서에는 없는 참고인 진술 등 핵심 증거관계가 피의자 측 문서에는 3쪽 이상 포함돼 있었다.
◇수사 요청 직후 벌어진 '전산 갈아치우기' 의혹
고소인 측은 피의자들이 제출한 19쪽 문건이 검찰의 공식 양식을 갖추지 않은 파일 형태라는 점, 문서 마지막에 실제 날인 대신 '검사 (인)'이라는 문구만 인쇄돼 있는 점을 들어 '위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고소인은 2023년 5월 8일, 서울중앙지검에 불기소결정서 위조 및 행사에 대한 엄중한 수사를 공식 요청했다.
의혹의 핵심은 이 수사 요청 직후에 벌어진 일이다. 고소인의 주장에 따르면, 검찰은 위조 여부를 수사하는 대신 2023년 5월 8일 이후 전산망에 등록돼 있던 기존 16쪽 결정서를 피의자들이 법원에 제출한 19쪽 위조 의혹 문건으로 바꿔치기했다. 세 번째 불기소결정서는 두 번째의 것과 내용은 같지만, 바코드와 문서확인번호가 찍혀 있었다.
서울고검의 재기수사명령(2023불항1072호)에 따라 사건을 배당받은 신모 검사가 수사를 진행하던 중, 전산 기록이 위·변작 의혹이 있다는 것이 고소인의 주장이다. 사실이라면 검찰이 자신들의 수사 정보 유출이나 문서 위조 정황을 덮기 위해 국가 공전자기록을 사후에 조작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된다.
◇단순한 '법 왜곡' 넘어 '국가기록 조작' 우려
법조계에서는 이번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검찰청 폐지나 법왜곡죄(형법 제123조의2) 도입 논의를 넘어선 심각한 사태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에 대해 "민원인에 따라 제공되는 정보의 양이 다를 수 있다"거나 "열람·등사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누락되었던 것 같다"며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바코드가 없는 문서가 피의자 측에서 나온 경위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고소인용과 피고소인용 결정서가 따로 있다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다"며 검찰의 주장을 반박한 뒤 "공문서에서 검은색 마스킹 처리가 아닌 내용 자체를 삭제하거나 추가해 발급하는 행위는 위조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 의혹을 해소할 유일한 방법은 검찰 전산망의 '로그기록' 공개뿐이다.
IT 전문가는 "로그기록에는 사용자 식별 ID와 접속 IP, 단말기 정보를 비롯해 수행 동작(삭제, 업로드, 업데이트), 변경 전후 데이터 크기 변화, 수정과 교체 일시 등을 보면 추후 수정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며 "로그기록 공개는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이 아니라 검찰의 투명성 의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위변조 방지를 위한 바코드가 문서 생성시점에 정상적으로 들어갔는지, 아니면 사후에 강제로 주입됐는지를 파악하는 바코드 생성로그와 문서 내용의 변화를 볼 수 있는 해시값도 중요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소인 측은 "검찰이 스스로 결백을 증명하고 싶다면 감찰 핑계를 대지 말고 즉시 로그기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철기자 leekic2@gnnews.co.kr
◎480억원대 배임 사건일지
◇2020. 05. 06 = 고소인, 천모씨 등 6명을 480억원대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
◇2023. 02. 16 = 담당 이모 검사,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분
◇2023. 02. 17 = 고소인, 검찰 민원실서 16쪽 불기소결정서를 발급받아 항고
◇2023. 03. 03. ~ 06 = 피의자들, '19페이지 불기소결정서'를 민사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
◇2023. 04. 13 = 서울고검, 무혐의처분에 대한 재기수사명령을 내림.
◇2023. 05. 08 = 고소인, '불기소결정서 위조'에 대한 수사 요청
◇2023. 05. 08 이후 = 검찰 전산망의 16페이지 문건이 피의자들이 제출한 19쪽 문건으로 교체됐다는 의혹 제기
◇2023. 05. 22 = 재기수사 담당 신모 검사, 불기소 처분
480억원대 배임 의혹 고소사건에 대해 3종류의 불기소결정서 첫 페이지. 같은 사건이지만 공식 바코드와 문서확인번호, 쪽수에서 각각 차이가 난다. 왼쪽부터 고소인이 서울중앙지검 민원실에서 2023. 2. 17. 발급 받은 16쪽 2023. 2. 16.자 불기소결정서와 고소인이 위조라고 주장하는 19쪽 불기소결정서(가운데), 고소인이 수사요청한 이후 변작한 19쪽 불기소결정서. 개인정보와 사건번호는 편집자가 모자이크 처리했다. 고소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