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양훈도 논설위원 2026. 4. 13. 20:3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양훈도 논설위원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는 상실과 치유를 풀어낸 그림책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일본 작가 이세 히데코는 1998년 고베에서 실제로 열린 '천 명의 첼로 콘서트'에 직접 참가한 적이 있다. 당시 콘서트에는 4세에서 88세까지 세계 각국에서 모인 첼로 연주자 1013명이 참가했다. 3년 전인 1995년 고베 대지진을 위로하려는 취지로 기획된 음악회였다. 그 웅장하고 엄숙하면서도 따뜻한 광경이 보고 싶어 인터넷을 뒤져 보았으나 아쉽게도 찾지 못했다.

"인간의 모양을 한 악기, 인간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악기, 첼로. 첼로를 켜는 사람의 모습은, 사람이 자신의 그림자를 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열 살 때부터 첼로를 배웠다는 이세 히데코의 말이다. 첼로 연주자를 정말 자신의 그림자와 안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듯 보인다. 바람 소리를 닮은 첼로의 중저음 울림과 떨림이 그림책 제목과 잘 어울린다. 조심스레 귀를 기울이면 음악 소리가 들리는 그림책이 있는 법이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 제목이 떠오른다. 찾아보니 원곡은 일본 작곡가 아라이 만이 2003년에 발표했고, 아키카와 마사후미가 불러 유명해졌다 한다. 한국에서는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2009년 발표한 앨범에 실린 곡이었는데, 마침 발매 당일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자, 이 곡 추기경 추모곡으로 헌정했다. 그해 5월 노무현 대통령 추모곡으로도 쓰인 이 곡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공식 추모곡이 되어 더 유명해졌다.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의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천 명의 첼로 콘서트'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희생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열렸다. 그런데 노래 가사는 죽은 이가 산 이들을 위로하고 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돕고, 산 자도 죽은 자를 돕는 걸까.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는 다 달라도 마음을 합하면 노래는 하나가 되어 바람을 타고 흐른다. 그리고 틀림없이 누군가에게 닿는다."(이세 히데코) 고베 대지진과 세월호 참사는 맥락이 전혀 다르지만, 누군가에게 닿는 바람, 누군가에게 닿는 노래가 서로를 위로하고 비극의 크기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4·16 12주기를 맞는 한국 사회는 생명안전이 조금은 나아진 듯해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더 많은 바람이 불어야 한다.

/양훈도 논설위원

Copyright © 인천일보 All rights reserved - 무단 전재, 복사,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