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속 ‘남산 위에 저 소나무’가 죽어간다

황기환 기자 2026. 4. 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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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에너지’ 재선충병 직격탄 맞은 천년고도 경주 가보니
최근 5년 새 감염 규모 7배 ‘폭증’…2025년 4만7천본 방재 역대 최다
서악지구 등 국립공원 전역 극심기…예산·인력 등 범국가적 지원 절실
▲ 국립공원인 경주 남산지구 동남산관리소 인근 탐방로 옆 숲이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된 나무들로 붉게 물들어 있다. 황기환 기자

경주국립공원의 상징이자 '노천박물관'이라 불리는 남산.

신라의 찬란한 불교 문화재가 산자락 곳곳에 숨 쉬는 이곳이 지금 소리 없는 침략자에게 점령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두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경주국립공원이 최근 전국을 휩쓸고 있는 '소나무재선충병'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관련기사 19면

남산지구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경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푸른 기운을 잃고 누렇게 말라 죽은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것은 예삿일이다. 이미 방제 작업이 끝난 자리에는 검은색 훈증 그물망이 씌워진 나무 더미들이 마치 '공동묘지'처럼 흩어져 있다.

재선충병에 감염돼 고사한 소나무를 베어내고 약품 처리를 한 뒤 밀봉해둔 모습이지만, 그 형태가 흉물스러워 국립공원의 경관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었다.

▲ 국립공원 경주남산지구 곳곳에 소나무재선충병 감염목 훈증 그물망이 마치 '공동묘지' 처럼 흩어져 있어, 재선충병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황기환 기자

경주국립공원 사무소 관계자는 "경주는 현재 재선충병 '극심지'로 분류될 만큼 상태가 심각하다"며 "이미 시 전역으로 퍼진 상태라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경주국립공원은 토함산, 남산, 단석산 등 8개 지구로 나뉘어 있다. 현재 경주시와 국립공원 사무소는 각자의 영역에서 방제와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소나무재선충병 확산 속도는 가히 충격적이다.

경주시의 국립공원 8개 지구 소나무재서충병 방제사업 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7035본이었던 전체 방제 본수는 2025년 4만 7699본으로 폭증하며 5년 만에 감염 규모가 약 7배 가까이 치솟았다.

더욱이 경주시와 국립공원 사무소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남산지구에 방제 역량을 결집하면서 서악, 화랑, 대본 등 다른 지구들이 사실상 방역의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문제점을 낳고 있다.

실제로 남산의 방제 실적은 2020년 29본에서 2025년 3만 761본으로 급증하며 전체 방제량의 약 64%를 차지했다.

반면 서악지구의 경우 2025년 한 해 7502본, 그리고 화랑지구(송화산 일대)의 경우 2025년 5311본만을 방제해, 산 전체가 붉게 물든 고사 위기 상황으로, 등산객들 사이에서 단풍이 든 것 같다는 탄식이 나올 정도다.

여기에다 예방 나무주사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립공원 사무소도 2022년부터 2026년 예정분까지 5년 연속으로 삼릉, 용장 등 남산 일원에만 모든 사업지가 집중돼 있다.

이는 예산과 인력의 한계로 인해 남산이 보유한 국보와 보물 등 소중한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의 결과다.

국립공원 사무소 측은 "재선충 관련 예산은 주로 산림청을 통해 지자체로 내려가다 보니, 국립공원 자체 예산만으로는 전체 지구를 관리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며, "자체 예산 1~2억 원을 쪼개 삼릉 등 주요 경관지와 문화재 밀집 지역인 남산 위주로 예방 나무주사를 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사 약효가 2~4년에 불과하고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의 이동 경로를 완벽히 차단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특정 지구에만 매달리는 방식으로는 경주 전체의 소나무 멸종을 막기 어렵다고 경고한다.

문화재를 품은 남산을 지켜내기 위한 당국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더 늦기 전에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예산 지원과 체계적인 통합 방제 시스템 구축이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