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올라온 전주 택시기사 ‘20m 고공 투쟁’
택시발전법 개정안 폐기 요구
인천 통신탑서 16일째 고군분투
52㎝ 새우잠 자고 새벽 6시 기상
‘사납금·월급제’ 혼용 문제 지적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는 사납금제를 2년이나 더 하라는 말입니까.”
13일 오전 건물 6층 높이 통신탑 위에서 농성 중인 택시노동자 고영기(56)씨가 아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택시발전법(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 폐기를 요구하며 지난달 29일 맹성규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의 인천 남동구 지역사무실 앞 통신탑에 그가 오른 지 16일째 되는 날이다.
“첫날 새벽 이곳에 올라오자마자 비닐이랑 밧줄로 천장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비가 많이 내리면 속수무책이더라고요. 바람이 많이 불 때는 통신탑이 심하게 흔들려서….”
고씨는 폭 52㎝의 비좁은 공간에서 새우잠을 잔다. 얼굴과 몸을 닦는 일은 통신탑 아래에서 올려 보내주는 물수건 두세 장으로 해결한다. 출근하는 차량이 늘어나는 새벽 6시면 잠에서 깬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택시들이다.
“운행 중인 택시를 보며 통신탑에 올라온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동료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아요.”
전주에서 20년차 택시기사로 일하던 그가 이 통신탑에 오른 것은 택시발전법 개정을 막기 위해서다. 이 개정안은 올해 8월 전국에서 시행될 예정이던 ‘택시월급제’를 2028년 8월로 2년 더 미루는 내용이 골자다. 월급제가 시행되더라도 노사 합의 시 법인택시의 최대 40%까지는 월급제를 적용하지 않아도 되는 조항도 포함됐다. 택시월급제는 법인택시 기사가 수입금 전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고정 월급을 받는 제도다.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기사들이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 2019년 택시발전법에 명시됐다.
“사납금을 채운 이후에야 수익을 손에 쥘 수 있는 구조라 하루에 12시간도 넘게 일을 해왔어요. 올해 월급제가 도입되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개정안 시행을 찬성하는 기사들도 있다. 고씨가 속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와 달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은 영세한 법인택시 회사들의 경우 월급제를 도입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고령층이 많아 모든 기사에게 하루 8시간 근무를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고씨는 “국토부 TF 운송 수입 자료를 보면, 택시월급제가 절반 이상 지역에서 시행 가능하다는 근거가 있다”며 “개정안이 시행되면 같은 일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월급제를, 또 어떤 사람은 사납금제를 적용받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통신탑 아래에서는 동료들이 24시간 교대로 고씨의 고공농성을 지원하고 있다. 2017년 전주시청 앞 20m 조명탑에서 510일간 고공농성 끝에 택시월급제 도입을 이끌어낸 주역인 김재주 전 택시지부장도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좁고 높은 공간에서 견딘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 동료가 또다시 높은 곳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고씨는 아직 통신탑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다고 했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여동생에게는 “서울에서 농성 중”이라고만 했단다.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묻는 어머니는 그가 20m 통신탑 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택시발전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송윤지 기자 sso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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