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우의 풀뿌리]석유와 쓰봉, 화학산업의 전환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2026. 4. 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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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원유 가격이 오르자 난데없이 쓰봉(종량제 쓰레기봉투)을 사재기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뉴스를 접했다. 실제로 동네 하나로마트에 갔더니 1인당 1장씩만 구입할 수 있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기름값이 오를 건 예상했지만 쓰봉이나 포장재를 사재기하는 사람들이 생길 줄은 몰랐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원유 공급이 끊기거나 줄어들면 이동에 쓸 기름만이 아니라 석유를 활용하는 일상생활용품도 귀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 7일에 보건복지부와 산업통상부는 합동 브리핑을 통해 의료품 포장재나 주사기, 주사침 등을 사재기하거나 가격을 담합할 경우 엄중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의류산업계도 합성섬유의 가격과 포장재, 물류비 상승을 걱정하고 있고, 농림축산식품부는 질소를 비롯한 비료 원료의 수입 물량을 챙기느라 바쁘다. 이처럼 석유는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한국석유공사의 ‘2024년 국내 석유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원유 수입량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석유제품의 국내 소비량은 3.5% 증가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수입된 원유 중 31% 정도가 자동차나 비행기 등의 연료로 사용되고 나머지는 산업용으로 활용된다.

한국이 수입하는 것은 원유만이 아니다. 원유를 증류해서 추출하는 나프타 역시 한국이 주요 수입국이다. 나프타는 석유화학산업의 핵심 원료로 비닐이나 플라스틱, 합성섬유, 타이어, 비료와 살충제 등으로 가공된다. 국내 정유사가 사용량의 55% 정도를 생산하고 나머지는 수입한다. 한국의 월평균 나프타 사용량은 약 400만t으로 전 세계 최상위권이다.

석유문명으로 성장한 한국

지금은 대체 경로로 원유를 수입하고 러시아산 나프타를 들여와 필요한 물량을 채운다고 하지만 석유는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 석유 생산량이 빠르게 줄어드는 피크 오일(peak oil)의 시점에 대한 계산은 제각각이지만 석유가 유한한 자원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보존량과 무관하게 사용량이 빠르게 줄어들지 않으면 심각한 기후파국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도 알려진 사실이다.

기후위기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재생에너지 같은 대체 에너지원을 찾는 시도는 확산되고 있지만 그건 석유문명의 일부일 뿐이다. 태평양의 거대한 플라스틱 섬이나 미세플라스틱의 위협도 석유문명의 또 다른 모습이다. 나프타를 활용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일상용품은 무엇으로 대체될 수 있을까? 쓰봉 사재기는 다가올 위기의 징후이다.

공중보건학자 조엘 티크너 등은 ‘화학산업의 전환(Transitioning the chemical Industry)’이라는 글(2022)에서 기후위기와 관련된 담론들이 에너지 부문만 건드리고 석유화학산업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석유화학산업은 화석연료와 떼놓을 수 없는 분야로,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거대 산업이자 많은 유해 폐기물을 배출해 생태계를 파괴하는 산업이다. 그 파괴적인 영향에 비해 화학산업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부족하다.

석유화학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성장을 이끈 주요한 동력이었지만 생태계와 사회의 건강과 안전보다 경제적인 이익만을 추구해왔다. 티크너 등은 심각한 파괴를 동반하는 석유화학산업의 규모를 줄이고, 지속 가능한 제품이나 생산 공정을 연구하고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대규모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석유와 화학산업에 의존해 성장해온 한국의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화학산업의 정의로운 전환

티크너 등은 이런 전환이 가능하려면 다섯 가지 전략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에너지 전환과 함께 화석연료를 대체할 지속 가능하고 재생할 수 있는 원료의 공급망 구축, 안전하고 효율이 좋은 새로운 고분자 기술의 활용, 재생 가능한 원료를 사용하고 부정적인 효과를 줄이도록 생산 과정을 다시 설계하기, 제품 수명을 늘리고 자원순환성을 높인 제품 디자인과 소비 감축이 그 목표이다. 어렵고 복잡한 목표이지만 석유문명에서 벗어나려면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계기로 우리의 시야도 더 넓어져야 한다. 첨단산업이나 인공지능(AI) 산업이 쇠퇴하는 석유화학산업을 자동적으로 대체하거나 우리 일상을 책임지진 못한다.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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